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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연애의 의리

                                                                                                                                                                                                                                                                                                                 

세월호 사건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불신이 팽배한 이 시대에 

김보성의 의리 시리즈가 웃음을 주고 있다.

풉-하고 웃을만한

70년대나 유행했던 촌스러운 헤어스타일과 선글라스룩을 하고

자나깨나 '의리'를 외치는 그의 캐릭터에 대중들이 호응을 하고 있다.

B급 감성시대가 먹히는 이 유연해진 문화에 웃음이 절로 나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의리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소위 '의리'라 하면 친구간의 지켜야 할 끈끈한 책임감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남자들 세계에서 뭉쳐야 산다_라는 의식을 심게 만드는

마초 성향 짙은 단어라는 편견도 솔직히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의리. 의리 계속 듣다보니 뭔가 다른 느낌이 온다.

의리(義理)는 사람으로서,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마땅히 지켜야 할 옳은 행위를 말한단다.

내 느낌이지만.. '마땅히'라는 단어가 들어간 걸 보니

우리가 지켜야하는 '최소한'의 옳은 행위를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문득 궁금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 있어 최소한 지켜야 하는 옳은 행위는 무엇일까.

의리는 동성 친구간의 '최소한의 옳은 행위'만을 말하는 것일까.

연애를 하는데 이어 최소한은 해야 하는 행위는 무엇일까.

 

지연은 34세 서울의 혼자녀.

그녀는 20대 후반에 만나 햇수로 5년을 만난 남자친구 도준이 있었다.

남자친구 도준은 그녀보다 1살이 많은 오빠였는데 

심성이 착하고 그녀와 모든 면이 잘 맞는 사람이었다.

 

도준의 한 가지 단점은 의지가 약하다는 점.

무언가 결심하고 도전한 것이 있으면 오래 가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회사를 옮겼다.

회사마다 경력이 짧아 이직을 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지연은 그때마다 도준을 격려했다. 잘 할 수 있다고.

잘 맞는 회사에 들어가면 이제 정착하고 결혼하자며 토닥이며.

도준이 1년을 넘게 일을 하지 않고 노는 동안

지연은 그와 데이트를 하면서 비용을 거의 부담했고

그에게 구인정보를 카톡으로 계속 보내주었으며

인적성 검사를 함께 풀어주었고

면접이 잡히면 예상질문을 뽑아 연습을 함께 했다.

도준이 대부분 그녀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자 주말엔 따뜻한 밥도 해먹이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그를 위해 새운동화나 티셔츠 정도를

사주기도 했다.

도준은 연거푸 이직 실패를 경험했지만, 

결국 한 대학의 교직원 포지션에 최종합격을 하게 되었다.

교직원은 칼퇴근, 유연한 조직문화, 꽤 괜찮은 복리후생으로

경쟁률이 치열한 자리였다.

약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합격을 하게 된 도준.

지연은 본인 일처럼 기뻐하며 친구들과 

축하 파티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도준도 오랫만에 일을 하게 된 설렘에

이번에는 꼭 오랫동안 열심해 해보리라 다짐을 했다.

출근하기 전 주말, 도준은 출근을 하는데 입을 옷이 없다며

지연과 서울근교 아울렛 매장에 가자고 얘기했다.

지연은 흔쾌히 승낙했고 

6시간 동안 지연은 도준의 바지. 자켓. 신발. 등을 열심히 골라주었다.

약 100만원치의 옷을 산 도준은 살짝 미안했던지

지연에게 3만원짜리 모자를 하나 선물했다.

지연은 오랫만에 남자친구에게 받는 선물이라 기뻤다.

그렇게 도준은 출근을 하게 되었고

지연은 이제 평화가 오나했다.

하지만 도준은 하루가 멀다하고 회식을 하며

술을 마셔 연락이 두절되었고

그녀와 자주 싸우기 시작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도준은 화를 자주 냈고

잔소리가 늘기 시작했다.

결국 도준과 지연은 이별하게 되었고

지연은 지금 34살에 다시 혼자가 되었다.

헤어지고 몇개월동안 도준은 술만 마시면 지연에게 전화했다.

새벽 2시. 3시..

지연은 씹을 때도 있었고 받을 때도 있었다.

그때 그때 그녀의 감정에 따랐다.

그런데 최근 어느 날, 그녀의 집에 술이 떡이 된 도준이 찾아왔다.

자고 가면 안되겠냐고..

헤어진 건 헤어진거고

그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기에

꾹꾹 눌러참고 있던 지연은 그날 폭발하고 말았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다시 한번 잘해보고 싶으면 맨 정신에 정식으로 말하던가.

술 마시고 전화와서 쓸데없는 얘기만 하고.

이젠 마음대로 새벽에 집까지 찾아와서 자고 가겠다고?

나랑 섹스하고 싶어서 왔냐. 

5년동안 노력해서 결국 안된건 쌍방과실이라 치더라도

여자 나이 34살에 이렇게 됐으면 

지금이라도 빨리 다른 사람 만나게끔 배려해줘야 하는거 아니냐..

지연과 5년이라는 시간을 만나면서

여자가 34살이 된 시점에 혼자 되게 한

도준의 무책임함을 나는 의리없다 말하고 싶지 않다.

지연은 또 좋은 사람을 충분히 만날 수 있고

쌍방의 한계가 있기에 헤어진 둘만의 사연이 있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여자가 30대가 훌쩍 넘으면 가치가 떨어진다는 편견이 팽배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그녀가 초조해하고 견디고 초월해야 할 또 한번의 시간은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도준도 도준의 입장이 있겠지.

하지만 도준은 3가지 의리가 필요했다.

 

헤어진 건 헤어진 거고..

도준은 그동안의 그녀의 도움에 고마워할 줄 아는 최소한의 의리가 필요했다.

월급탄 돈으로 대단한 밥까지 사주지 못하더라도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고.

너 덕분에 내가 다시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리고 서로 노력했지만 결국 잘 안된 것에 대한 미안해할 줄 아는

최소한의 의리가 필요했다.

결국 여자나이 30대 중반이 되기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5년이란 시간동안 붙들고 있어 미안해할 줄 아는 의리.

그리고 한때 사랑했던 여자이기에

지금이라도 더 잘 맞고 좋은 사람 만나기를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의리 말이다.

만약 도준이 이 최소한의 의리를 보였다면

지연이 34살이 아닌 44살이라 하더라도

자기가 꽤 괜찮은 사람을 만나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후회없이 아름답게 새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도준에게 괜찮다고. 나이 상관없이 이 또한 나의 선택이라며

도준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의리를 보여줬을지 모르겠다.

 

남녀간에도 의리가 있다.

아니, 남녀를 떠나 연인관계도 

인간과 인간이기에 당연히 지켜야할 도리가 있다.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켜야 할 의리도 중요하지만

헤어질 때 지켜야 할 의리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어차피 이별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인 건

어쩔수 없지만..

적어도 함께 했던 시간 통째로 후회하지 않도록

추억마저 고통으로 만들지 않도록

남자 대 여자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리.

그것을 조금만 생각이라도 해본다면

새롭게 나타날 사람에게도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김보성의 의리타령이 유머로나마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리를 되새기게 되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

최소한의 지켜야 할 의리,

아무리 강조해도  

지겹지 않 으ㅣ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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