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 May 02. 2016

들이대는 여자

                                                                                                                                                                                                                                                                                                                 

2년 째 회사 동료 하준을 짝사랑 하고 있는 31세 지연. 

하지만 하준은 지연을 여자로 보지 않는다.

늘 주변 다른 곳에서만 여자를 찾았으며 지연은 술 마시며 고민 털어놓기 좋은 편한 동료로 보고 있다.

그 사실을 지연도 잘 알기에 하준에게 여자로서 다가가지 못했다.

그저 하준이 소개팅에 나갔던 얘기, 옛 여자친구에 대한 넋두리 등을 들어주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했다.

미스박 : 아, 시간이 흘러도 그 사람이 자꾸 좋으면 고백이나 시원하게 해봐

지연 : 안돼..괜히 얘기했다가 지금 관계도 어색해지잖아.

미스박 : 뭐 어때.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낫지

지연 : 아니야. 말해봤자야. 거절 당할 게 분명해

         지난번에 나한테 넌 여자로 안보여서 정말 편하다는 말까지 했다니까.

미스박 : 그건 그거고.

            거절 당하더라도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면 나중에 후회는 안하잖아.

지연 : 그런가..

혼자 생각을 거듭한 며칠 뒤, 

지연은 하준과 이자카야에서 술을 한잔 한다.

적절하고 자연스러운 타이밍을 노리던 지연은 술이 취한 용기를 빌어 말을 꺼낸다.

지연 : 하준아..내가 뭐 너한테 바라고 얘기하는 건 아니고

         그냥 내 감정을 솔직히 얘기하고 싶다.

하준 : ...뭔데.. 이렇게 분위기를 잡냐??

지연 : 너..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지?

하준 : ........

지연 : 다 티났겠지. 너랑 동료 관계 유지하고 싶어서 그동안 말 안했는데

         말이라도 해야되겠다 싶어서..

하준 : ...엄...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는데 그러다 말겠지 했어..

지연 : 어떻게 생각해..?

하준 : ㅎㅏㅇㅏ...지연아. 너 정말 좋은 사람이야.

         근데 나한테 너 여자 아니야. 친구로 너 잃고 싶지 않아

         미안한데 그냥 이대로 지내면 안되냐..

  

거절 당하더라도 속은 시원할꺼라는 나의 오지랖 넓은 예상과는 달리

지연은 민망함과 좌절감에 한동안 방황했다.

고백해서 거절을 당해서 그 사람에 대한 정리를 빨리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님 고백은 안하더라도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는게 

옳은 선택이었는지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를 유부녀 친구에게 하였더니 그녀는 단칼에 잘라 얘기한다.

"야!! 여자는 무조건 자기를 좋아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야돼!!

남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행복하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야 행복하다는 말, 모르니?"

남자란 정복심리가 있어서 자신이 얻기 어려운 것에 자극과 열정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 더욱 노력과 공을 들인다.

나는 궁금했다.

그게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인 것이라면 여성의 선택권은 어디 있는 것일까.

여자는 누군가를 정복하기보다 그저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기 위해 뽀샤시 화장을 하고

쉽게 얻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적당히 튕기는 스킬을 다듬으며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남자가 사랑을 호소하면 진심인거고, 여자가 사랑을 호소하면 구질구질한 것인가.

성공률이 높은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는 것은 남자만의 권리일까?

들이대는 여자.

남자들은 속으로 정말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얼마 전 나는 대학동기놈과 한 모임을 주선했다.

남자 셋, 여자 셋.

싱글 남녀로 구성된 각자의 지인들을 불러 술자리를 가지는 것처럼 매력적인 것도 없다.

어느 정도 나이도 있는 지라 서로 금새 친해지고

자리가 자리인만큼 여러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여자들의 대쉬' 였다.

남자 1호 : 요즘은 적극적이고 대시하는 여자가 더 매력적이지 않나?

여자 1호 : 그래요..?

남자 2호 : 맞아요. 선택 받기 기다리는 여성을 별로던데..

여자 2호 : 그래도 남자들은 결국 여성스럽고 수동적인 여자한테 끌리는 것 같던데..

남자 2호 : 아니에요. 저나 제 주변을 봐도 여성상이 많이 바뀌고 있어요.

남자 1호 : 맞아 맞아. 

여자 2호 : 왜왜?? 왜 그런걸까요..?

남자 1호 :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시대가..

여자 3호 (미스박) : 어떻게요? 좀더 자세히 얘기해봐요 (칼럼 소재를 위한 나의 노력)

남자 3호 (내 동창) :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기가 많이 힘들어진 배경에서

                            여성의 경제력과 사회적 위치가 많이 강해졌고

남자 1호 : 의학기술로 여성의 외모도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남자 2호 : 즉, 여성들의 힘이 커지면서 역할의 수위에 변동이 생긴거죠.

남자 3호 : 옛날에는 여자를 자신의 힘과 경제력으로 보호해줘야 하는 대상으로 보았다면

               이제는 함께 공생하는 파트너십의 관계로 업그레이드 된거지.

남자 1호 : 그러다보니 남자들도 여성의 사회적 위치, 경제력 등을 많이 따지게 되는 거 같고..

남자 2호 : 연애를 시작하는 것에 있어서도 꼭 남자가 먼저 들이대야 할 필요있나 하는 편견의 분열이 시작된거지.

               오히려 남자들이 점점 더 소심해지고 있다니까요?

남자 1호 : 맞아. 여성들이 힘도 있고 돈도 있고 미모도 있으니까..

               내가 대시했다가 상처받지는 않으까..하는 소심한 생각을 하게 된다니까요.

남자 3호 : 그래서 이제는 적극적인 여자들이 오히려 더 멋있고 매력적이란 생각도 하게 되는거지..

이 날 남자 셋의 이야기는 나의 흥미를 상당히 끌었다.

이러한 분석력과 인싸이트를 남자란 동물이 보여주다니...하는 놀라움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자신의 몇몇 의견을 주고 받으며 토요일 밤 즐거운 술자리를 가졌고

그날 가장 인기가 좋았던 남자 2호는 자신에게 들이대는 여자 2호를 생까고

얌전하고 새침하게 앉아있던 여자 1호의 번호를 따갔다.

뭐 물론 남자 2호는 여자 1호의 수동적이고 여성스러운 태도보다 

외모나 분위기에 더 끌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시대가 변하고 편견이 무너지고는 있지만

본질적인 것은 그대로이지 않을까..

남자 셋의 말대로 자신과 공생할 수 있는 파트너십을 찾고

자신감 넘치는 적극적인 여성이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하는 말을 나는 믿는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보완해 줄 수 있는 여성의 약점도 원하는 것 아닐까.

자신의 존재 의미 즉, 자신이 이 관계에서 필요한 점, 우위에 설 수 있는 점이 하나라도

있다는 것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다.

꼭 남자들 뿐만 아니라 인간은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때론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

경제력이든, 정서적이든 그 무언가 사람은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고 힘이 될 수 있을 때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한다. 그때 삶의 의미와 큰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결핍된 부분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도 하면서

때론 내가 도움 줄 수 있는 결핍된 사람을 찾기도 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야 행복하다는 그 말.

어릴 때는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사랑을 해보고 관계를 맺어보니,

내가 좋아한 사람과의 관계는 너무 좋은 만큼 힘들었고

나를 좋아해준 사람과의 관계는 힘든 일 없이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편하고 받는 사랑을 하며 정이 들고 의리를 지키는 정도의 사랑을 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설레이는 두근거리는 감정에 대한 갈망을 숨기고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의 욕심과 감정이란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준 만큼 받고 싶어하는 게 본능이니까.

그래서 결국 더 사랑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힘든 거다.

자기가 사랑한 만큼 나를 사랑해주기 바라는데 그게 뜻대로 안되니까 힘든거다.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 노동이 더 심하니까.

그 주체가 여자가 되면 뭔가 그게 더 자존심 상하고 더 비참한 느낌이 드는 것.

그래서 여자가 무조건 사랑받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룰도

어쩌면 우리의 편견 아닐까.

그 동안의 역사에서 여자의 지고지순함. 남자에게 의존하는 모습들. 일방적 희생들

이런 것들에 대한 발끈함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여성상을 바꾸고 싶어하고

그래서 여자는 이래선 안돼-하는 룰을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은 아닐까.

그동안의 성차별적인 관계에 대한 역차별적 모순 말이다.

결국 사랑은 상처에 대한 용기이자 자유 의지.

사랑한다고 나 자신까지 버리는 바보 같은 짓은 현대 사회에서 어리석다는 평가매김을 받는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고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더더욱 바보 같은 짓 아닐까.

어렵겠지만 받는 것을 기대하지 말고 사랑을 할 때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경험하고 배운다.

물론 나는 기대하지 않고 주는 사랑을 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나를 사랑해주기 보다 자신이 더욱 사랑하는 관계를 용기있게 지켜내는

많은 여성들이 미련해보이기보다는 

꽤 용감했던 거였구나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물론 남자들의 관심이 있다는 전제하에 여성의 적극성이 어필된다고도 하고

최고의 고수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대시하지 않고 자신에게 대시하게 만드는

스킬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조건들을 어찌 모두 따지고 앉아있을 수 있겠나.

과한 것도 좋지 않겠지만 자신감이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들이대도 괜찮을 것 같다.

그 안에서 각자의 노하우와 스킬, 경험이 쌓일테니 말이다.

좀더 들이대고 좀더 쿨해지자.

못 먹는 감 남자만 찌르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지 않나. 

여자의 찌를 권리, 우리가 지켜보는 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월세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