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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02. 2016

월세시대

                                                                                                                                                                                                                                                                                                                 

최근에 첫 방영을 한 <마녀의 연애>라는 드라마에서 20대 중반의 남자 주인공 박서준이 

아르바이트비를 받지 못해 월세집에서 쫓겨나는 장면이 나온다.

70-80년대 단칸방 월세를 내지 못해 온 가족이 주인집의 눈치를 보는 옛날 드라마식 설정이

재구성되는 요즈음.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요즘 핫한 허지웅(작가.기자)은 월세를 내기 위해 방송에 출연한다-라고도 말했고

탤런트 남궁민은 오랜 연예계 활동으로 번 돈은 부모님 집을 사드리고 본인은 월세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작년에는 전세가 폭등으로 인한 전세대란이 이슈였고, 이로 인해 굳이 주택을 사서 소유하지 않더라도

들어가 살 수만 있다면 된다는 향유지향적 사고가 추세라는 이야기도 있다.

낮은 금리와 맞물려 내 주변에는 월세. 또는 반전세 형태로 거주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올해는 임대소득 과세가 강화되면서 전국의 입주자들은 행여나 집주인의 변덕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자영은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와 직장을 다니고 있는 32세 지방 여성.

서울로 올라올 당시 그녀의 집안형편이 좋지 않아 서울에 거주지를 얻을 상황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서울에 자취하는 한 친구의 원룸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좁디 좁은 원룸이지만 보증금도 없던차라 친구가 OK해준것만도 다행.

그래도 아직은 20대니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잖아ㅡ라고 위안하며 어찌어찌 직장생활을 했다.

첫 직장의 월급은 세금 떼고 124만원.

돈을 모으려면 꽤 걸리겠다 하던 차에 친구가 갑자기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야 한단다.

결국 자영은 보증금 없이 월 25만원을 내는 고시원 월드에 입성.

1평도 채 안되는 공간에 그녀의 짐들을 줄줄이 걸어놓고 그녀는 다시 한번 심기일전했다.

적은 월급이었지만 꼬장꼬장 돈을 모아 300만원을 마련했다.

그녀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 30만원을 내는 대학가 하우스쉐어로 옮기게 되었다.

방 3개를 한명씩 나눠쓰고 화장실과 주방은 공용하는 시스템.

그래도 고시원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으로 조금 넓어진 방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사는 그녀.

어느 날 출근을 하려고 나오는데 그녀의 방문 앞에 포스트잇 한장이 붙어 있다.

- 옆방 사는 학생인데요. 

   화장실 너무 오래 쓰시는 거 같아서요.

   아침에 다들 바쁜데 15분씩만 사용하는 걸로 해요.

자영은 민망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모닝똥도 자유롭게 샤워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그날을 기약하며 다시 힘을 냈다.

자영은 곧 보증금 500만원을 채웠고, 대학가를 벗어나 주택가 반지하로 입주했다.

눅눅해서 곰팡이도 자주 피고 햇빛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지만 화장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어느날 밤 집에서 샤워를 하고 벗은 채로 나와 수건으로 몸을 탈탈 닦는데 마루 벽위쪽 창문에 뭔가 있는 듯 하다. 

콘택트렌즈를 뺀 상황이라 눈도 잘 안보여 고양인가....하며 창문쪽으로 가까이 가서보니

거기서 마주친건 고양이가 아닌 한 남자의 눈.

너무 놀라 비명이 목구멍 밖으로 안나온다.

남자는 후다닥 도망을 갔고, 혼자 자리에 주저 앉아 한참을 펑펑 울다가

근처 후배를 불러 겨우 잠이 들었다.

또 시간은 흐르고 그녀는 직장 때문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

절대 반지하는 가지 않으리라.

오래된 주택의 2층집 원룸. 1층에는 작은 우동집이 있었는데 늦은 시간이라도 위험하지 않고

자영은 새로운 집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이 집에서는 꽤 오래 살면서 돈 열심히 모아야지..

이사를 한 봄이 지나 무더운 여름이 되고 어느날 집에 들어가 불을 딱 켰는데

엄지 손가락만한 바퀴벌레 4바리가 우글우글.

인터넷에서 바퀴벌레약을 사서 30개를 붙여놓고도 그녀는 잠이 오지 않았다.

바퀴벌레는 보이는 것보다 몇배수는 더 많은 거라던데..

자는데 침대 위로 올라오는 건 아닐까. 베개 밑으로 기어다니는건 아닐까.

그녀는 그날 양 한마리, 양 두마리..가 아닌 바퀴벌레를 상상하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그녀의 20대 거주지의 흑역사는 지나갔고 지금 32살인인 그녀는

서울에서도 가장 비싸다는 강남 반포동 분리형 원룸에 살고 있다.

언덕이 심하게 있기는 하지만 신식 건물에다 회사의 야근이 많아 최대한 가까운데로 이사를 온 것.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70만원. 관리비 5만원은 별도다.

세금 떼인 월급 210만원에서 월세. 관리비. 휴대폰비. 인터넷. 가스비. 전기세. 수도세로 100만원을 날린다.

남은 돈에서 적금, 보험료 내고 나면 솔직히 부모님 용돈 드리기도 빠듯하다.

며칠 전 자영과 커피 한잔을 하고 있는데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나보다.

월세 10만원을 올려달라고.

그녀는 월세 80만원은 너무 부담스럽다며 이사를 가겠다고 말을 하곤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달 동안 부동산 3군데, 인터넷 직거래(피터팬)를 암만 뒤져봐도 생각보다 이사갈만한 곳을 찾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월세 10만원을 더 올리고 2년 추가계약을 하되 2년동안은 월세를 올리지 않는걸로

집주인과 결론을 냈다고 한다. 집주인이 원하던 대로 말이다.

월급의 절반이 월세로 빠져나가니 언제 돈 모으고 언제 내 집 마련하나..생각하면 참 막막하다.

집은 고사하고 시집갈 자금도 문제다.(남자친구 없어서 다행인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의 사람들이 서울에서 혼자 살아가기란 만만치가 않다.

심지어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님께 다달이 용돈도 못드리는 내 모습이 이기적이지는 아닐까 하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애써 20대가 넘으면 성인이니, 당연히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합리화해보지만

변화가 없는 삶의 초라함에 많은 사람들은 서글퍼 한다.

그러다보니 화려하고 드높이 서있는 아파트들을 보며 '저 많은 집 중에 내 집 하나 없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고...

명품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가끔은 친구들과 저렴한 고기 집을 찾아 소주 한잔 하고 싶고,

해외 여행은 못가더라도 일년에 한두번은 친구들과 놀러도 가고 싶은 이 젊은 날,

어디까지 허리띠를 졸라야 하나. 이렇게 허리띠를 조른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까. 하는 좌절감이 찾아올 때가 있다.

괜찮다. 그럴 때가 있다..

힘들겠지만 우리는 이런 날들을 버텨야 한다.

사람 심리라는게 나보다 나은 상황의 사람들을 보지 않을 수 없고,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으며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보다 나은 상황의 사람들을 보며 좌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세우고 꿈을 계획해야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세상은 원래 공평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분노를 삼키고 애를 쓰고 다시 한번 노력하는 것이다.

괜찮은 척. 하고 말이다.

포기하고 좌절할 것이냐. 이대로 살다 죽을 것이냐.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ㅡ극복할 것이냐.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다.

어차피 나이를 먹을 수록 외부나 환경의 핑계를 댈 수 있는 상황은 오지 않을테니까.

그 분노의 대상을 부모님이나 팔자나 신의 핑계를 대는 어리석음 중에 가장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기를.

세상은 공평하지 않지만

누구나 공평하지 않다는 점은 공평하기 때문이다.

자영은 10만원의 월세를 더 내서 짜증이 나겠지만 그만큼 더 노력할 것이다.

지금 20대의 고시원과 변태남, 바퀴벌레가 추억이 되었듯이

또 시간이 흐르면

"그때 너랑 커피 마실 때 집주인이 10만원 올려달라고 해서 졸라 짜증났었잖아~"라고 

웃으며 말할 날이 반드시 올것이다.

이 놈의 지긋지긋한 월세.

가끔 짜증나고 답답하고 막막하더라도

괜찮다.괜찮다.

이렇게 좌절하는 오늘 하루도 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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