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마지막 연애가 끝난 지 6개월에 접어들었다.
책을 읽어도, 친구와 술을 마셔도 해소되지 않던 이 갈증.
이유는 연애가 필요하다는 자가진단 끝에 여자는 소개팅을 했다.
남자는 2살 많은 공무원. 일단 집이 가깝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연락처를 받고 저장을 했더니 카톡이 뜬다.
프로필 사진을 냅다 보려 했는데 남자 열명이 엉켜서 농구하는 풀샷이다.
여자는 살짝 실망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어머 운동을 좋아하나봐…’
얼굴이 궁금한 나머지 우측상단에 카카오스토리를 클릭해 본다.
조카랑 찍은 듯한 사진이 두어장 있는 게 다다. 외모는 맘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내가 외모 볼 나이는 아니지 뭐…’
저녁 6시 46분. 남자에게서 카톡이 왔다.
남 : 안녕하세요. OO소개로 연락드립니다. OOO라고 합니다.
여 : 네 안녕하세요 OOO이에요
남 ; 가까우신거 같은데 시간되실 때 식사한번 해요^^
여 : 네. 전 군자동 근처 살구요. 구의동 근처 사신다고 들었어요.
남 : 네 ㅋ 맞아요.
여 : 괜찮은 일자 두 개 알려주시면 제가 맞출께요.
남 : 주말에 보는 게 좋지만 내일이나 모레도 좋아요.
여 : 편하게 주말에 보시죠. 그럼 토요일 어떠세요
남 : 넵^^ 토욜에 봐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여자는 갑자기 생각이 난 자신의 프로필 사진이 뭐였는지 클릭해본다.
'그래. 좀 오래된 사진이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나름 귀여우니까.'
이미 외모를 본 터라 기대감이 없었지만
여자는 본인의 나이, 소개를 해준 지인의 성의, 사진만 보고 외모를 판단하는 것에 대한 오류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남자에게서 밤 11시 반에 와있는 카톡을 발견했다.
남 : 피곤하더라도 낼 퇴근하고 보실래요?
여 : 이제 봤네요. 주말에 일 생기신거?
남 : 빨리 뵙고 싶어서요 ㅋㅋ
여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지 이새끼…내 프로필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었나.
여튼 여자는 퇴근을 하고 남자를 만났다.
삼성동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남자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너무 기대를 안했었던 이유였는지 사진보다는 실물이 꽤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인사를 하고 앉은 여자.
스테이크도 있었지만 여자는 첫 만남에 너무 비싼 것을 주문하는 것은 센스없다 생각하고
먹물 리조또를 주문했다. 그리곤 이내 속으로 ‘먹다가 먹물이 입가에 묻으면 어쩌지’하는 생각을 했으나
뭐 그 정도로 남자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여자와 남자는 1시간 정도 식사를 했고
야외 테라스가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셨다.
생각보다 대화가 잘 통했고 하하호호 유쾌하게 대화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가족얘기까지 두런두런 하게 되었다.
남자가 질문했다.
남 : 혹시 담배 피우세요?
여 : 네. 한대 같이 피우실래요?
남 : 초면에…괜찮을까요?
여 : 뭐 어때요. 같이 피죠 뭐
그들은 담배를 한대 같이 폈고 40여 분을 더 이야기 하다가 남자는 여자를 택시 타는 곳까지 바래다 주었다.
여자는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생각했다.
'그래도 대화가 통하니까 많이 친해진 느낌이야..
역시 사람은 만나봐야 해. 두세 번은 더 만나봐도 되겠어'
집으로 와서 잘 들어갔냐, 담엔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는 남자의 문자에
짤막한 답을 보내고 여자는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
여자는 일 때문에 정신 없다가 문득 그 남자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다.
‘뭐지…바쁜가...'라는 생각은 결국 연락이 3일째 오지 않자 자책으로 연결되었다.
'첫 만남에 너무 가정사를 오픈 했나.
담배 피는 여자를 싫어하나. 아니...같이 폈잖아.
아님 내 외모가 본인 스타일이 아니었나...그럼 왜 빨리 만나고 싶어했지...’
먼저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여자는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냥 서로 인연이 아닌가 보다. 쿨하게 인정하고 싶었다.
‘그래 뭐 어차피 오래 만날 것 같은 스타일은 아니었어.’
하지만...괜히 신경질이 났다. 자존심도 상했다.
‘참나 웃기는 사람이야. 맘에 안 들면 데려다 주지를 말던가. 여지를 주는 문자를 하지 말던가.’
그렇게 여자의 봄날의 기억은 미세먼지와 함께 저 멀리 사라져갔다.
남자들은 말한다. 여자는 알 수 없는 동물이라고.
남자들은 속이 다 보이고 얼굴에 티가 난다던데 눈치 백단 그 여자는 남자의 속을 알 수 없었다.
남자들도 이제 이제 알 수 없는 동물이 되어 가는 것일까?
남자들도 이제 여자처럼 싫어도 좋은 척 좋아도 싫은 척 연기의 고수들이 되어 가는 것일까?
직장생활을 통해 연기력을 열심히 연마한 30대 중후반 남성들의 노련미에
여자들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사회성으로 탄탄하게 뒷받침된 매너와 친절함에 여자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따뜻하고 차분한 커뮤니케이션 스킬 때문에 대화가 통한다고 착각을 한다.
진실은 사실 남자 외에 아무도 모른다.
여자의 실물에 실망했을 수도 있고.
결혼 상대자를 찾고 있었는데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고.
그날 여자가 감정적으로 헤프게 굴어서 매력이 떨어졌을 수도 있고.
혹은 여자의 당돌한 스타일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고.
썸을 타고 있던 여자가 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걸 심플하게 종합한다면 영화의 제목 정도가 될 수 있겠다.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게 중요하다.
당신이 절세 미인이나 최고의 매력을 가진 여자라 할지라도
당신이 모든 남자에게 반하지 않듯이 모든 남자가 당신에게 반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것만 인정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은 때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서 자신을 좋아해주기 바라는 욕심을 부린다.
우리는 자신이 대단한 호감을 갖지 않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쁘지 않은 정도면 상대가 다가와 주기를 은근히 바란다.
못이기는 척 받아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 욕심을 좀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마치 나 가지기는 싫은 걸 남 주기 아까워하는 심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마치 사놓고 입지도 않는 옷이나 쓰지도 않는 가방을 여동생이 달라고 하면,
언젠가는 입을거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욕심을 버리는 게 쉽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해야 하듯
우리에게 불필요한 관계에 욕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당장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야 한다.
더욱이 피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에게 문제점을 찾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여자가 첫 만남에
가족사를 소상히 얘기했다 하더라도.
담배 때문이다 하더라도.
외모가 그 남자의 스타일이 아니다 하더라도.
자책을 하면서 하루를 망칠 필요는 없다.
한번 보고 그 사람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정도의 판단을 하거나
지키지 못할 멘트를 내뱉는 깊이의 남자와는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오랜 시간 동안 여자들의 알쏭달쏭한 태도를 해석하느라 고생했을 남자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그들의 알쏭달쏭한 태도를 해석하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자.
대부분 남자들의 해석이 틀렸던 것처럼 여자들 또한 남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해석할 수는 없다.
아니, 누군가의 마음을 100% 알 수는 없다.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마음 속 비밀 코드의 뜻을 해석하느라
머리에 쥐나지 말고,
이제 그 에너지를 다른데로 돌려보자. 나의 마음은 진정 어떠했는지 말이다.
사람의 마음은 알기 힘들지만,
당신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한가지 사실이 있다.
당신은.
그에게.
반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