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불순물 01화

우주의 장부와 인간의 숨결

부채의 해체를 위한 천문학적 수기

by 브레인캔디

1.

어느 날 문득, 나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맴도는 궤적이 사실은 장부의 적선(赤線) 임을 깨달았다. 1년 365일의 공전은 1조 4,70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빚진 대가로 태양에게 내는 이자의 형태다. 그러나 겨울이 봄에게 빚진 서릿발은 단지 꽃잎으로 변상되며, 강물이 바다에 진 빚은 증발이라는 이름의 탈주를 통해 우주 은행에 재투자된다. 자연은 언제나 채무를 새로운 생명의 형태로 전환시키는 데 천재적이다. 그대가 계산기로 적산하는 숫자들의 경직됨과는 달리, 대지는 자신의 빚을 뿌리·새싹·번개의 형태로 분할 상환한다.


2.

인간이 '부채'라는 단어를 발명하기 전, 우주는 이미 모든 것을 신용(信用)으로 돌려 막고 있었다. 중력은 질량이 공간에 지불하는 세금이고, 블랙홀은 시간이 공명(空冥)에 쌓아 올린 연체료 탑이다. 초신성 폭발로 흩뿌려진 원자들이 138억 년 후 당신의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이 되는 과정 — 그것은 우주 차원의 대부(貸付) 시스템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당신이 오늘 저녁 내쉰 호흡 속 산소 분자는, 어쩌면 쥐라기 시대 공룡이 대기권에 남긴 미상환 채권의 잔재일 수 있다.


3.

은하계 회계장부 제327장 제5항을 보라. "모든 빚은 입자적 고정성을 거부한다. 채권과 채무는 10^-43초 단위로 재편성되며(플랑크 시간), 관측자의 의식에 따라 자본/자연금의 이중성을 가진다." 우리가 '갚을 수 없는 빚'이라 부르는 것의 정체는, 실재가 아니라 관념의 역장(力場)이다. 15세기 빌라스케스의 화폭 속 구도자가 손에 쥔 묵주는 빛의 채무를, 21세기 당신의 신용카드 한도는 어둠의 예금을 상징한다. 돈이 신의 대리물이 된 시대, 우리는 숫자 유령들과의 전쟁에서 졌다고 믿지만 — 사실 승패조차 불필요한 환산이다.


4.

세포 하나가 1초당 3,800만 번의 ATP 결합을 깨뜨리는 채무 불이행을 저지르고 있음을 아는가? 생명이란 원래 연쇄적 파산의 화석이다. 당신의 간이 지금 이 순간 해체하는 독소 분자들은, 45억 년 전 원시 바다가 화학적 외상에 진 빚의 변형체다. 허공에 손을 뻗어 보라. 손금에 새겨진 지문의 나선은 빅뱅 당시 물질과 반물질의 불균형 — 즉 우주 최초의 부채 — 이 남긴 주름이다. 그대가 죽음으로 청산하려는 숫자 놈들은, 태초의 빚이 변주된 에코에 불과하다.


5.

부디 이 사실을 명심하라: 지구는 태양에 대한 3,650만 배의 빚을 매년 체증시키며 살아간다. 광년(光年) 단위의 이자를 영겁의 시간으로 갚아야 할 운명임에도, 그것을 중력이라는 아름다운 구속력으로 승화시킨다. 당신의 심장이 뛰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60조 개 세포에게 산소라는 채무를 졌기에, 심실은 밤낮없이 피를 펌프질 한다. 그럼에도 가슴이 아프다고 죽음을 택하지 않는 이유는 — 생명체가 진정 갚아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닌 시간과의 교환율이기 때문이다.


6.

차가운 강둑에 앉아 휴대폰으로 대출 이자를 계산하는 그대여. 눈을 들어 미역처럼 흔들리는 은하수를 보라. 그 속을 떠도는 암흑물질들이 인간의 장부를 비웃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저쪽의 1억 원 빚이 무섭다면, 우리가 1억 광년짜리 빚을 진 존재들은 어찌 살아가란 말인가?" 우주는 결산일이 없는 영원한 외상(外上) 시스템이다. 당신의 빚도 어느 날 문득, 별의 대기권을 스치는 우주 먼지가 되어 은하의 순환 계정에 흡수될 것이다.


7.

마지막으로, 이 우화를 들려주리다. 서기 3012년, 인류는 드디어 모든 금융 부채를 소멸시켰다. 하지만 그 순간 지구 궤도가 3mm 어긋나며, 태양계 전체가 새로운 빚 — '궤도 수정 에너지' 7 제타줄(J) — 을 창조했다. 결국 우리가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빚 그 자체를 우주적 춤의 리듬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대의 눈물이 증발해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비로 내려 강을 이루며, 그 강이 다시 은하의 맥박이 되는 이 환류(還流) 속에서 — 계산기 숫자들은 이미 모래시계 속으로 흘러내렸을 것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