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생각을 하면서 웃다
오후 4시, 찰리 푸스 음악을 들으면서 재작년 여름의 햇살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
극심한 피로, 줄어든 일조량 게다가 독감까지 걸린 채로 일을 한 후, 극심한 권태가 찾아왔다. 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삶에 대한 권태랄까. 재미도 없고, 다 때려치고 싶은 부정적인 사고가 무한 반복 노래처럼 재생되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래서 일을 하기가 너무도 싫었다. 주문을 받는 것도, 식기류를 정리하는 것도, 레스토랑을 쓸고 닦는 것도, 똑같은 설명을 반복하는 것도 지겨웠다. 동남아나 제주도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한 달을 보내고 싶었다. 쳇지피티한테 왜 나는 이렇게 끈기가 없는 거냐고 푸념도 했다. (쳇지피티는 그저 휴식이 필요한 것뿐이라며 위로해 줬다.) 캐나다 위니펙 워킹홀리데이라는 특별한 일상과 경험이 지겨운 일상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어김없이 식기류 냅킨을 접어 가지런히 바구니에 쌓아놓고 있을 때, 레스토랑에서 찰리 푸스 노래가 흘러나왔다. 재작년 여름, 나는 찰리 푸스의 목소리에 빠져 찰리 푸스 모음집을 매일 반복 재생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햇살이 온종일 비추던 남향 창이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주로 저녁에 일을 할 때여서 낮에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햇살을 한가득 즐겼었다.
그때의 평화와 환한 햇살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오래간만에 가슴 가득 번져가는 행복감. 그간 메말라 잔뜩 갈라져 있던 가슴 한쪽이 촉촉하게 젖어 땅 속까지 스며드는 기분. 청량하지만 따뜻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감촉.
음악이 당시의 상황을 눈앞으로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된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감정까지 다시 꺼내볼 수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그러다가 건너편에 서 있던 호텔 안전요원과 눈이 마주쳤다. 혼자 피식피식 웃고 있다는 걸 들킨 게 머쓱해서 와하하 웃어버렸다. 이 웃음이 마지막 고삐라도 되는 것처럼, 저기압을 털어버리고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