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수도 없었다.
동생이 태어난 그 이듬해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날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고, 그 이후 몇 년간은 자주 봤다. 엄마가 울면 어린 나는 같이 울었다. 엄마는 엄마가 우는데 왜 내가 우냐며 울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엄마가 울어서 운 거였다. 그게 사실이란 걸 알아버린 엄마는 이제 나를 등에 지느라 편하게 울지도 못한다.
내 동생 그리고 부모님의 아들이 서류상으로도 장애인이 된 날의 기억은 버스에 있다. 행선지를 모를 버스에 엄마는 아빠와 앞뒤로 앉아 두 눈의 눈물을 도저히 제어하지 못하고 있고, 나는 그저 풍경에만 눈을 두고 있다. 어딘가에 내렸을 텐데, 어디였을까? 그건 기억 안 난다.
그 전날, 엄마는 어디선가 거하게 울고 온 얼굴을 해놓고 울지 않은 척하며 나에게 미리 말했다.
“동생이 장애인이래. 엄마는 믿고 싶지 않았는데, 장애인이래. 근데 잠깐이고 괜찮아. 엄마가 1년 안에 고치면 되니까 너는 그냥 알고만 있어.”
눈물이 나오는 게 무서워 힘을 주는 듯 꽤 엄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는데 엄마는 울고 있었다. 거기에 나는 속은 척하며 울지 않았다. 이제부터 씩씩해져야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아들을 끌어안고 “꼭 낫게 해 주겠다”라고 말하는 엄마였다. 동생에게는 더 힘을 주어 말하는 엄마였다.
말은 아무 힘도 없었다. 동생은 나아지길커녕 위로 뛰고, 가로질러도 뛰고, 뛰어다니는 걸 주특기로 키워가며 점점 더 천방지축으로만 자랐다. 그렇게 거부할 수 없이 동생이 장애인인 삶에 자연스레 스며갈 때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핸드폰도 없어서 한 번씩 학교에 설치된 콜렉트콜 전화기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곤 했었는데 그날은 엄마목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분명 숨이 찬 소리인데 애써 가라앉힌 듯했다.
“지금 동생이 없어졌어. 그래서 엄마가 찾고 있거든? 너는…”
쿵 하고 내려앉은 심장이 수습이 안된 채로 통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당황스러웠다. 통화 끝에 “걱정하지 말고 학교 끝나고 곧장 와.”라고 한 엄마의 목소리조차 그래 보였다. 혼자 놓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역시 걱정뿐이었다. 소식을 전해 듣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내가 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는지, 선생님께 말했는지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동생이 죽으면, 나랑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렇게 최악은 아닐 것 같은데......'
다만, 선택이 아닌 기억은 내 머릿속을 스쳐간 아주 이상한 상상만을 남겨 버렸다.
다행히 동생은 어느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에서 발견되었다. 반갑게도 아빠도 그날은 회사에서 중간에 나와 동생을 찾으러 와있었고, 이미 많이 운 얼굴을 한 엄마가 웃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격앙돼 있는 줄도 모르고 동생이 사라진 위치에서 발견된 주차장까지 몇 개의 건널목이 있었는지를 헤아리며 '이 놈이 자동차를 좋아해서 주차장에 있었나' 하고 같이 웃었다.
엄마는 동생이 그동안 꾀죄죄해졌다고 안쓰러워하고 있었지만 그날 내 눈에는 차마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지도 못하고 수습만 하고 있는 엄마의 얼굴만 보였다. 그래서 나는 동생이 돌아와 다행이라고 더 많이 기뻐하고 좋아하며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동생에게 엄마가 하는 애틋한 눈을 하고 있던 3학년짜리 아이는 사실 동생이 정말 미웠다.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전혀 알지 못하고, 그저 돌만 던지는 내 동생이 정말 없었음 했다. 그런데 이렇게 잔뜩 이상해진 마음을 가지게 된 게 가장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