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소란했던 작은 집

엄마의 마음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by 아가미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기 직전 우리 집은 이사를 갔다. 가끔씩 영화관이나 마트에 올 때 들르던 지역이지만 우리 동네가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한 곳이었다. 아파트에 살다 옮겨 온 20평이 채 안 되어 보이는 허름한 빌라는 처음 이사 올 때부터 쎄한 느낌을 주었다. 엘리베이터도 없이 4층까지 겨우 올라가 본 집은 예전 가구를 욱여넣고나니 침대 놓을 공간이 부족해져 보였다. 결국 가족들은 안방이라고 불리던 방에 장롱과 수납장에 둘러싸여 이불을 깔고 자게 되었고 다행히 엄마가 내 침대만은 사수해 주어서 나는 냉장고 앞에 놓인 침대 하나만으로 그 집에 마음을 붙여보기로 했다.


집이 작아진 만큼 집안의 모든 분위기가 내 살갗을 그대로 타고 지나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동생의 몸집은 제법 커져있는 때였다. 세 살이 된 동생은 여전히 단어 하나 따라 하지 못하고 내 책상과 침대를 점프로 오가며 뛰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온갖 수선을 떨었다. 그런 동생을 진정시키는 건 TV광고를 엮어 녹화한 비디오뿐이었고, 그 덕에 집에서는 녹화한 광고 소리가 반복해서 흘러나왔다. 동생이 잠깐씩 조용해지면 엄마는 다시 집안일을 했다. 서럽고 화나는 일이 많은 엄마의 설거지 소리,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고, 여전히 피할 일이 많은 아빠는 이불속으로 몸을 파고들고 있었다. 언제나 소란했던 작은 집은 모든 것이 한눈에 보였다.


그 무렵 사람들은 동생을 보며 이렇게 느린 아이도 있다며 엄마를 위로했다. 동네 사람들도 그랬고, 동생의 가정학습 선생님도 그랬다. 동생을 봐주러 오신 외할머니 역시 아들은 원래 느리다며 말이 늦게 트인 과거의 사례들을 엄마에게 자주 늘어놓곤 했다. 그 말이 엄마를 얼마나 찔렀던 말인지 그 사람들은 지금껏 모를 거다. 외할머니는 몇 달 만에 넉다운이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고 동생은 다시 온전한 엄마의 몫이 되었다.

동생은 점점 더 뛰어다녔고, 나는 학교에 갔고, 아빠는 회사에 갔다. 엄마가 새로 사귀어 마음을 나눌 만한 앞집 친구는 하필, 동생과 동갑의 아기 엄마였다. 엄마는 동생과 계속 혼자였다. 그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모든 걸 보고 있는 나조차 뒤늦게 알았다. 그땐 몰랐고, 지금은 안다. 나는 매일 엄마의 마음이 부딪히는 소란한 소리를 들으며 커갔다.


그런데 그걸 안다는 게

나를 지금껏 울게 할 줄 알았다면…

모르고 지나는 쪽이 더 나았을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1. 결국 아이였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