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반데르발스 거리
학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내 번호를 가르쳐줘도 될까, 사사로운 연락을 주고받아도 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해선 아직까지 나만의 확실한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 내가 답을 내렸는지와는 관계없이 똑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반복해야만 하는 순간들은 언제나 나를 찾아오고, 또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이유도 없이 유독 마음이 가는 사람이 언제 어디에서나 한 명쯤은 있다. 그때 그 학원에서도, 내게 그런 친구가 있었다. 엄마의 차별로 다퉜던 일들을 늘 부풀려서 얘기하는 듯 하면서도, '그런 일이 있어봤자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상처를 감추려던 얼굴. 친구들에겐 욕을 섞어가며 사납게 말을 하는 데도 혼자 서 있는 모습은 왠지 여렸던. 그 친구의 과장스러운 말투와 무덤덤한 가면 사이로 자꾸 내 관심이, 마음이 흘러들어가곤 했다.
언젠가 내 번호를 물어오는 한 아이와 별 고민없이 연락을 시작해버리고 난 후, 도미노 쓰러지듯 자연스럽게 여러 아이들이 내 번호를 알아갔다. 그 친구도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나와 카톡을 시작했었던 것 같다. 서로 겹치는 일상이 학원 말고는 없으니, 그 친구에겐 따분한 학원이 그다지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아니었을 테니, 우리는 딱히 카톡으로 나눌 말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친구와의 연락이 실없이 끊기는 것이 아쉬웠고, 남들에게 숨기는 듯한 그 속마음을 더 알아보고 싶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혹시 있다면 그 말들을 찾아서 해주고 싶었다.
착각이고 오만이었을까. 내 마음이 흘러들어갔다던 그 틈은 어쩌면 그저 헛것에 불과했을까. 카톡이 길어질수록, 늘어질수록, 나는 그 친구에게서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애초에 연락을 시작하지 않는 게 좋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연락을 하더라도 내 쪽에서 명확한 선을 긋는 게 맞았을지도 모른다. 왜 괜히 시작해서… 왜 쓸데없이 그런 말들을 해서……. 생각해보면 볼수록 그 친구에게 나는 단지 짧게 지나가는 인연, 인연이라 부르기에도 가벼운, 우연에 지나지 않는 학원 아르바이트생일 뿐이었다. 결국, 어두운 소나기가 쏟아져내리고 그 친구가 잘리다시피 마지막으로 학원 문턱을 나서던 그 날, 우리의 연락은 싱겁게 끊어지고 말았다.
그 해 내 생일에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었던 기억이 난다. 그 연락을 받고 참 기뻤었다. 기억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 돌아온 그 친구의 생일에 내가 축하의 말을 건냈을 때엔, 민망하게도 "누구세요?"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뭐, 당연한 전개였을지도 모른다. 누구든 한 쪽이 학원을 영영 나서는 순간 남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 이상을 기대한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그래도 가끔 생각이 난다. 사실 가끔보단 조금 더 자주. 갑작스레 학원을 그만둔 아이들이든, 내가 두고 나와버린 아이들이든. 3일 전엔 내가 몇달 전 그만둔 학원에서 내 수업을 참 열심히 들어준, 문제풀이도 탄력을 받아 나날이 늘어가던, 다른 한 친구의 생일이었다. 하루종일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문자를 보냈다. 생일이냐고. 축하한다고. 좋은 하루였기를 바란다고. 문자를 보낸지 2시간 쯤 뒤에 답이 돌아왔다. 오랜만이라고. 잘 지내시냐고. 감사하다고. 예전같았으면 반가운 마음에 속도 없이 또 헛소리들로 가득 채운 답을 다시 보냈을 텐데. 몇 번이고 문자를 읽어보다가 그냥 화면을 꺼버렸다. 그 이상을 기대한다는 게 너무 이상한 일 같아서. 너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야될 것만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