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에게 물어봐

경제냐, 정의냐. 그것이 문제라면

by 신애진








'천문학적'이라는 표현. 그 자체로 참 아름답다. 인간의 겸허함이 묻어 있다. 지구가 세상의 전부라 믿었던 시절, 사람들이 눈앞의 것들을 헤아리는 과정에서 수, 그리고 단위가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우주는 늘 투명하게 거대했고, 이내 몸집을 드러내며 기성의 수와 단위들을 납작하게 눌러버렸다. 그래도 우리가 발딛고 사는 세상까지 우주의 발밑에 깔려버린 것은 아니라, 여전히 동일한 수와 단위들이 쓰인다. 다만 이들로 포괄할 수 있는 경계를 넘어서는 무언가와 마주할 때, 우리는 그 무언가를 '천문학적'이라고 형용한다.


2017년 1월 18일자 조선일보 A3면 상단에는 삼성이 '해외부패방지법'에 발목을 잡혀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금으로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실려 있다. 바로 밑에 자리한 기사에서는 '불기소 협약'을 운운하며 경제 관련 범죄를 기소하는 사례가 줄고 있는 추세임을 강조한다. 풍기는 뉘앙스가 어쩐지 이상하다. '천문학적'인 수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녕 '정의'니 '평등'이니 하는 가치는 잠시 내려두고 비껴가는 것밖에 없다는 걸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천문학적'인 시야로 앞을 내다본다면, 아름답고 겸허한 표현 앞에서 참 부끄러워지는 모양새라고 말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