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의 또다른 가치
종이와 펜이 사라지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 글씨체만으로도 서로의 정체를 알던 학창시절의 기억. 주인을 쏙 빼닮은 글씨체들은 테마를 공유하던 우리의 소나타에 몇 안 되는 변주 중 하나였다. 간간히 튀는 그 음들을 알아채는 것으로 우린 다시 같은 테마 안에 발을 들이곤 했다. 이젠 합주보다 독주에 익숙하지만, 가끔 그때 그 기억들이 꿈틀댄다.
나는 언제나 '친하다', '가깝다'와 같은 말들의 의미를 헤아리는 게 참 힘들었다.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았다. 친하다는 것? 가깝다는 것? 머릿속을 스쳐가는 얼굴들에서 무언가를 찾아보려 말꼬리만 늘여대곤 했는데. 무슨 일인지 오늘 갑자기 안개가 걷힌다.
나는 떠오르는 그들의 글씨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