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하면 1507, 1507하면 양말. 제품력으로 브랜딩하는 1507
도착한 상품을 열어보는 순간은 언제나 설렙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브랜드의 언박싱이라면 더욱 기분이 좋죠. 브랜드 언박싱은 우리 주위에 빛나는 브랜드를 소개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브랜드를 대하는 태도, 제품에 대한 철학 등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유한 생각을 나눕니다. 여러분의 언박싱을 더욱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어 드릴게요. 브랜드 언박싱이 제안하는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멋진 브랜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브랜드 색을 뚜렷하게 드러내야 눈에 띄는 요즘, 맹물 같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1507(일오공칠) 박진현 대표를 만났다. 브랜드를 시작할 때 타깃을 좁고 명확하게 설정해 깊게 침투하는 방법도 있지만, 1507처럼 시작부터 넓은 타깃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곳도 있다. 후자의 경우 누구나 만족할 만한 좋은 품질, 합리적인 가격 등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1507은 그 부분에 자신감을 보인다. 섬유 도시 대구에서 2대째 양말을 생산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근거 있는 자부심이다. 그래서 그들의 무지의 하얀 양말에서도 힘이 느껴진다. 제품력이 곧 브랜딩이 된 1507의 진한 맹물 같은 브랜드 스토리를 지금 바로 언박싱해보자.
강세영 작가(이하 강): 대표님 안녕하세요. 1507 브랜드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진현 대표(이하 박): 안녕하세요. 1507(일오공칠) 대표 박진현입니다. 1507은 양말의 대명사가 되고 싶은 양말 전문 브랜드입니다.
강: 양말 브랜드인데 이름이 숫자로 이뤄져 있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숫자인가요?
박: 아버지가 대구에서 오랫동안 양말 공장을 하셨는데 그때 일하셨던 공장 주소가 1507-42번지였어요. 지금은 재개발로 없어졌긴 하지만요.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이어 간다는 의미에서 그 숫자를 가져왔어요.
강: 섬유 도시 대구에서 2대째 양말을 제작하고 계신 거네요. 아버지가 하던 일을 이어가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박: 아버지를 따라 대구 지역의 양말 공장을 돌아다녀 보니,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 제품을 많이 제작하더라고요. 품질이 좋으니까 캘빈 클라인, 랄프 로렌, 유니클로 등의 큰 브랜드에서 의뢰가 들어오는 거예요. 이 정도 실력이면 유명 브랜드에 제품을 납품만 할 게 아니라 우리가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도 되겠다 싶었어요.
강: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첫마디가 뭐였나요?
박: “함 해봐라”
강: 굉장히 쿨한 반응이셨네요?
박: 브랜드, 브랜딩 이런 개념을 잘 모르셨어요. 제품 몇 개 주면 되겠다는 느낌으로 이해하셨던 것 같아요. (웃음)
강: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아버지께 많이 배우셨을 것 같은데요. 부딪치는 부분은 없었나요?
박: 처음에는 제 행동을 이해 못 하셨어요. 예를 들어 양말 배송할 때 브랜드 이름이 새겨진 띠지를 두는 것도 ‘이게 무슨 의미냐’며 ‘그냥 고무줄로 감으면 되지 돈 들여 이걸 왜 하냐’고 물으셨어요 (웃음) 점점 매출이 늘어나니까 이해해주시더라고요.
강: 반대로 뚜렷한 장점도 있을 것 같아요.
박: 일단 존재만으로 너무 든든해요. 그리고 더 잘해야겠다는 목표 의식도 뚜렷해지고요.
강: 아버지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거래처 분들도 양말 제조를 오랫동안 해오셨던 장인분들이잖아요. 함께 일하기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박: 처음에는 소통이 어려웠었어요. 양말 생산만 2~30년 하신 분들이라서 본인들의 생각이 굳건하게 있으셔요. 제가 의뢰한 그대로 제품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아무 색깔 없는 하얀 양말을 누가 사냐고, 양말에는 무늬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하셨죠. 그럼 저는 또 젊은 사람들은 깔끔한 흰 양말을 좋아한다고 맞받아치고요 (웃음) 팔리든 안 팔리든 우리가 다 책임지겠다고 설득하면서 제작했어요.
(아버지) 존재만으로 너무 든든해요.
그리고 더 잘해야겠다는 목표 의식도 뚜렷해지고요.
강: 지금은 1507 브랜드가 잘 돼서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겠어요
박: 직접적으로 표현은 잘 안 하시는데 뿌듯해하시는 것 같아요. 그걸 언제 느꼈느냐면요. 지난 3월에 무신사TV팀에서 영상 촬영을 하고 가셨는데, 그걸 가족 단톡방에 공유하셨어요. 아버지가 내심 자랑스러워하시는구나 싶었죠. 아마 브랜드 언박싱 인터뷰도 나가면 좋아하실 거예요. (바로가기: 브랜드 다큐멘터리 ㅣ양말에 진심인 브랜드 1507(일오공칠) [더브랜드])
강: 1507만의 브랜딩에 관해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요. 제겐 하얀 양말은 필요할 때 간판 없이 운영되는 가게에서 사서 신는 아이템 중 하나였는데요. 하얀 양말을 시그니처로 브랜드를 전개하시는 모습이 흥미로워요. 처음부터 브랜딩 전략을 구상하셨나요?
박: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브랜드 포지셔닝이 된 것 같아요. 처음부터 하얀 양말로 브랜딩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국내 양말 브랜드를 꾸준히 살펴보니 독보적으로 디자인을 멋있게 하는 브랜드만 살아남더라고요. 제가 그런 곳을 디자인으로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다 보니 튼튼하고 질 좋은 양말만 만들어도 승산이 있겠더라고요. 몇 달 신다 보면 쉽게 헤지는 양말 대신 기본에 충실한 양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강: 기본에 충실한 양말 브랜드, 이 사업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으셨나요?
박: 양말 안 신고 다니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특히 흰 양말은 나이, 연령 가리지 않고 누구나 신을 수 있죠. 모든 사람에게 양말 하나씩만 팔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겠다 싶었어요. 디자인을 멋지게 해서 가치를 높여 파는 것보다 기본을 잘해서 많이 팔아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강: 컬래버레이션 제안도 많이 들어올 것 같아요. 진행하신다면 어떤 방식의 협업을 구상하고 계신가요?
박: 저는 1507을 아무 색깔이 없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요. 대신 특별한 색을 입혀야 할 때는 컬래버레이션 형식을 활용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죠.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다른 브랜드와 협업을 하기보다는, 아트워크나 특정한 인물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요.
방법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브랜드 포지셔닝이 된 것 같아요.
기본에 충실한 양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강: 수많은 양말 중에 1507 양말의 다른 점을 꼽아보자면요?
박: 1507 양말은 정직하게 만들어요. 전 정말 저희 양말에 자신이 있거든요. 사실 원가를 낮추고 마진을 높이는 것도 가능하고, 저희 규모라면 해외에서 저렴하게 제작하는 것도 가능해요. 그런데 저는 정도(正道)를 걸으려고 해요. 제대로 된 실과 부자재 활용해 100% 대구에서 만든다는 자부심을 지키고 싶어요. 지금 이 사무실에서 20분 반경이면 완제품을 완성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됐거든요. 제품에 자신이 있으니 1년 안에 헌 양말은 새 양말로 돌려주는 ‘양말 수명 보증 제도'도 운영하고 있어요.
강: 신다가 구멍이 난 양말을 다시 새것으로 바꿔준다는 생각이 너무 재미있어요. ‘양말 수명 보증 제도'는 어떻게 탄생한 아이디어인가요?
박: 같이 일하던 친구와 술 먹으면서 나오게 된 아이디어예요. 저는 원래 ‘농수산물 추적 이력’ 같은 걸 하고 싶었어요. 포도 박스에 적힌 QR코드를 인식하면 농부 얼굴과 어디서 생산됐는지 볼 수 있는 거요. 양말에도 그걸 대입해서 제작하신 분들 얼굴도 넣고 스토리도 넣고 싶었죠. 그런데 어르신들이 싫어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럼 뭘 해볼까?’ 하다가 떠올랐어요.
강: ‘양말 수명 보증 제도'를 한다고 했을 때, 아버님이나 생산처 어르신, 직원분들 반응은 어땠나요?
박: 아버지를 비롯한 공장 분들이 “양말이 빵꾸나야 다시 사지. 그걸 바꿔주면 어떻게 한다는 건데?”라는 반응이셨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제도를 이용하신 고객분들이 다음에 더 많이 주문하세요. 1507에 대한 신뢰가 생기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더 많은 분들이 양말 수명 보증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강: 실제로 들어오는 양말이 많이 있나요?
박: 요즘은 좀 늘었어요. 초반에는 다들 안 믿으셨던 것 같아요. 온라인 모니터링해보니 ‘혹시나 해서 보내봤는데 진짜로 새것 보내주네’라는 반응이시더라고요. (웃음) 저희가 소비자분들 절대 손해 안 보게 보내드리니 믿고 이용하셔도 돼요. 10개를 샀는데 7개가 구멍이 났다 하면 그냥 10개 다 새것으로 보내드리거든요.
강: 접수된 양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박: 완전히 닳을 때까지 신고 보내주신 양말이 있었어요. 그런 고객분께는 너무 감사하죠. 다른 양말 안 신고 우리 제품만 신어주셨구나 하면서요.
전 정말 저희 양말에 자신이 있거든요.
저는 정도(正道)를 걸으려고 해요.
제대로 된 실과 부자재 활용해 100% 대구에서 만든다는 자부심을 지키고 싶어요.
강: 보통 로고는 잘 보이는 발목 쪽에 적는 경우가 많은데 왜 발바닥 쪽에 넣으셨어요?
박: 아직 1507이 나이키 같은 브랜드는 아니잖아요. 브랜드명이 노출되면 반감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처음에는 발바닥에도 안 넣었는데요. ‘양말 보증 제도'를 하다 보니 필요성을 느껴 최소한으로 넣은 거예요. 지금은 딱 한 제품만 상징적으로 발목에 로고가 적힌 제품이 있는데요. 나중에 좀 더 멋있는 브랜드가 되면 다양하게 만들어 보고 싶어요.
강: 러닝 크루에 협찬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이유로 협찬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박: 레드불이 익스트림 스포츠에 후원하잖아요. 그것처럼 우리도 발로 하는 스포츠에 협찬해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마침 회사에 러닝 크루를 하는 친구가 있어 연결됐죠. 그랬더니 신어보고 피드백을 주시더라고요. 니삭스를 전부 면으로 만들면 종아리에 땀 차고 안 좋다라던가, 발목이 좀 더 타이트하면 좋겠다는 의견이요. 그 피드백을 바탕으로 일부분을 나일론으로 하고 발목엔 고무를 더 넣는 등의 개선을 했어요. 저희에게도 도움이 많이 됐죠. 브랜드가 좀 더 성장하면 발을 쓰는 모든 곳에 후원해보고 싶어요.
강: 브랜딩 공부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대표님은 브랜딩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박: 전공자는 아니지만 여러 브랜드 사례를 찾아보는 걸 좋아해요. 제 생각에 브랜딩은 카테고리를 생각할 때 가장 처음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게 하는 일련의 활동 같아요. 양말 하면 바로 1507이 떠오르게끔요. 많은 분이 양말을 어디서 사야 하나 싶을 때 고민 없이 1507이 생각나면 좋겠어요. 브랜드 색깔을 멋있고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저희는 카테고리에서 대표가 되는 게 목표예요.
강: 온라인에서 구매 후기도 많이 찾아보시나요?
박: 많이 보는데요. 매일 보지는 않아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불만족한 후기를 보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왜 이분은 만족 못 시켰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요. 그래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마음먹고 들어가서 봐요.
강: 대표님을 가장 기분 좋게 하는 피드백이 있다면요?
박: 가끔 메일로 의견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정말 좋아하는 브랜드인데 이런 점은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메일을 써주세요. 대단한 애정을 보내주시는 거로 생각해요. 댓글 하나 남기는 것도 정성인데 메일까지 보내주시는 마음은 정말 고맙죠. 그런 피드백을 받으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 싶어요.
강: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최고의 양말은 어떤 양말인가요?
박: 고민 없이 그냥 신을 수 있는 양말이요. 거리낌 없이 툭툭 신을 수 있는 게 베스트라고 생각해요. 1507을 색깔 없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은 이유예요. 저는 1507이 맹물 같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됐을 때 진짜 대체 불가하다고 생각해요. 예전 인터뷰에서는 코카콜라처럼 팔고 싶다고 그랬어요. 콜라는 한 병에 1천 원인데 세계에서 1등 브랜드잖아요.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콜라는 향이 있어서 아닌 것 같고 삼다수 같은 브랜드가 더 맞겠네요 (웃음)
양말 하면 바로 1507이 떠오르게끔요.
양말을 어디서 사야 하나 싶을 때 고민 없이 1507이 생각나면 좋겠어요.
강: 사업을 하면서 꼭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 있으신가요?
박: 제품을 만들어 팔면서 ‘소비자들이 돈 아깝다고 느끼게 하지 말자’가 제 원칙이에요. 제가 소비자인 경우에도 그래요. 어떤 걸 돈 주고 샀을 때 만족감이 크면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잖아요. 100을 지불하고 200의 만족감을 얻으면 되거든요. 식당도 싸고 맛있고 양 많으면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기본만 잘해도 비즈니스는 지속할 수 있어요.
강: 1507은 주요 판매 플랫폼을 무신사 스토어로 운영하시더라고요.
박: 패션 브랜드를 좋아해서 무신사 스토어에서 구매를 자주 했어요. 제게 무신사가 익숙하다 보니 판매 채널로도 가장 처음 떠올랐어요. 그리고 무신사 스토어 규모가 커져서 무신사 스토어 안에서만 잘 돼도 그 브랜드는 어디를 가나 다 알아줘요. 그 점이 좋더라고요. 무신사가 잘 될수록 저희도 잘되는 구조요. 계속 함께 동반 성장하는 것 같아요.
‘소비자들이 돈 아깝다고 느끼게 하지 말자’가 제 원칙이에요.
기본만 잘해도 비즈니스는 지속할 수 있어요.
강: 브랜드가 3대째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있으신가요?
박: 제 딸이 초등학생인데요. 벌써 하고 싶어 해요. (웃음) 딸들을 위해서 키즈 양말을 만들어서 선물했는데 그 양말을 신고 찍은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해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1507 이어받으려면 공부 잘해야 한다고요. 그럼 딸이 아빠는 공부 잘했냐고 물어봐요. 그럼 저는 처음 시작할 때는 공부 못해도 되는데 하는 거 받으려면 공부 잘해야 한다고 해요(웃음)
강: 30년 뒤 1507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네요! 마지막으로 1507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 양말 생각나실 때마다 1507 이용해주세요. ‘이 돈 주고 이걸 왜 사’ 하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돈 쓰신 거 이상으로 만족감 드릴 테니 앞으로도 저희 믿고 구매해주세요.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인터뷰어 강세영
9년 차 브랜드 마케터. 한국, 베트남, 일본에서 브랜드를 키우며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소속된 브랜드에 대한 애착만큼이나 다른 수많은 브랜드를 애정 한다. 저마다의 뚜렷한 색을 가진 브랜드들의 이야기에 쉽게 매료되고, 브랜드를 가꿔가는 사람들에게 동질감과 동경심을 동시에 느끼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