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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민 BrandArchitect Jan 14. 2016

02화 - 가난한者(?)가 풍요롭게 하는 세상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몸을 담으면 어느 정도 전문가의 반열에 들어선다고 한다.

엔터테인먼트社에서 한류아티스트와 기업에서 소비자에게 친숙한 상품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브랜드마케팅 전문가로서 보람도 많았지만 어딘가 모를 허전함은 늘 있었다.


난 늘 행복해요

Everything OK!


난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남이 원하는 것을 더 잘 만드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나보다는 내 물건을 사줄 사람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일상이 일로 알게 된 예술가(Artist)들로 하여금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다.



불과 5년전만해도 한국 기업들에게 문화예술은 상업적으로 동떨어진 한 분야일 뿐이었다.

심지어는 전혀 연관성 없는 상품을 예술작품에 붙혀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다.

필자도 그런 트렌드에 이끌려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게 됐다. 


일로 시작된 이들과의 만남이 서서히 나자신을 변화시키고 나의 자아를 찾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아티스트들과의 소통은 온전한 나를 만드는 큰 계기가 됐고 지금의 내가 '브랜드건축가(Brand Architect)'로 활동하는 배경이 됐다. 


브랜드건축가로 활동을 시작하다

브랜드건축가는 건축가가 가치를 담은 집을 짓듯이 가치가 담긴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을 의미한다.

상업적인 상품을 만들고 알리는 일에 많은 회의를 느끼고 있을때 날 잘 헤아려준 아티스트들은 나의 일에 대해 창작자의 한사람으로서 인정하고 싶다고 위로해 주었다. 

대중들의 니즈를 잘알고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이니 훌륭한 예술가들이 온전하게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 달라고 주문을 했다.

이런 계기들이 모여 우리 일상속에 숨겨진 히든챔피언을 찾는 나의 여정이 시작 됐다.

세상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 예술하면 굶어 죽는다’는 말을 하곤 한다.

비단 대한민국만 그럴까만은 예술가의 삶은 그만큼 고되고 가난(?)하다. 

현실적으로 수많은 예술가들은 그들의 창작열정만큼 올바른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다. 

종종 일부 아티스트들은 창작의 고통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안타까운 결말을 맺기도 한다.


어찌보면 이런 불행한 결과는 소통의 부조화가 낳은 자연스런 현상일지도 모른다.

창작을 하는 예술가(Artist)들은 우리와 다른 뇌와 감성을 갖고 있다. 혹자들은 미술과 음악으로 대변되는 예술가들을 두고 고집이 너무 쎄거나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비관적인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와 다른것이지 틀린것은 아니다.


이른바 예술가들은 우리와 다른 채널의 주파수를 갖고 있다. 라디오와 무전기의 채널이 맞아야 서로 소통을 하듯이 아티스트와 대중은 서로 다른 채널을 갖고 있다. 이를 모르고 소통 하려 하니 될리가 없다. 처음엔 필자도 소통엔 일각연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술가들과의 소통은 녹녹치 않았다.

왜 이들과 대화하면 답답할까? 

왜 이들은 자기것만 추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하지 않을까? 

제발 세상과 조금이라도 타협 좀 하세요!!!


물론 아티스트들도 대중만큼이나 대중들이 매우 물질적이고 속물적인 것에 반감을 갖고 있긴 하다. 하지만 서로가 다른 주파수를 갖고 있다고 인정하면 소통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된다.

아티스트들은 남을 위해 살지 못한다. 올곧게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담아 세상에 내놓는다.

이것이 트렌드이니깐 이런류의 작품을 해야 한다던가, 유망한 작품을 따라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그들에게는 원죄와 같을 정도로 터부시 된다. 

이런 이들의 강한 성향이 이 시대에 다양한 예술작품들을 세상에 내놓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비록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이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들의 작품이 훌륭한 영감과 감동을 준다. 한국의 이름 모를 서울숲, 연희동, 연남돔, 이태원 계단장에 자리잡은 다양한 창작자들의 작품 등은 우리를 설레게도 한다. 예술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듯이 이들 작품은 각자 고유한 감성과 가치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유명화가의 작품을 구입하는 이는 부유한 콜렉터일지 모르지만 예술을 만들고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신분과 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다.   

에술가들의 영혼이 담긴 작품이 단박에 다수의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기는 힘들지만 이들의 다양한 작품들은 우리의 감성을 살찌운다. 

또한, 어떤 아티스트들은  에술과 대중과의 거리를 가깝게 하기 위해 대중의 소리에 귀기울이기도 한다. 혹자들은 이들을 두고 현실에 타협한 비겁한 예술가라고 비아냥 거리기도 하지만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그들의 노력은 참으로 아름답다. 


필자가 소통한 아티스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반려동물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하고 있는 펫토그래퍼(Pettographer) 

옵택핸즈(OPTEK, HANDS)이다. 


펫토그래퍼 (Pet과 Photographer의 조화)

옵택핸즈는 반려동물과 인간 사이의 애뜻한 감정을 사진으로 담아 내는 반려동물 사진가이다. 그는 동물에게 감정이 있다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미묘한 감정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 동물에게 거의 말을 하지 않아요. 개들은 인간의 말을 못하잖아요. 동물의 언어가 분명히 있어요.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라면 한국말을 잘하는 것처럼 동물과 오래 있다 보니 저도 동물의 언어를 알게 된거 같아요.” 

그는 전문적으로 사진을 공부한 적이 없다. 

하지만 반려견과 함께한 시간은 수십 년이다. 어릴 때 동생을 낳아달라고 졸랐다가 부모님이 데려온 강아지 한 마리에 처음 카메라를 들었다. 동생을 찍어주고 싶은 마음이 시작이었다. 좋아서, 취미 생활로 시작했지만 점점 더 많은 동물과 사람을 만나게 됐고 이런 활동은 결국엔 반려문화를 만드는 데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사진은 MP3 음원과 같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음악을 즐겨 듣지만 사진을 즐겨 보진 않잖아요. 귀를 즐겁게 해주는 것과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건 맥락이 같은데 그런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은게 안타까웠어요. 반드시 동물이 아니더라도, ‘반려’가 느껴지는 장면에 사진을 찍게 되는 거 같아요. 아스팔트에 찍힌 개 발자국 같은 모습들도 좋죠.” 

펫토그래퍼 옵택핸즈는 그저 자신과 오랫동안 생활했던 가족같은 반려동물의 일상을 촬영하면서 느낀 사진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행복을 느끼고 이런 그의 행동에 수많은 반려인들은 공감이라는 호응을 보내주고 있다.


작년에 개봉한 천재뮤지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다큐멘타리영화에 나오는 한 구절이 있다.

“나는 스타가 되려고 노래하는게 아니예요”

“단지 노래를 좋아하는 소녀죠”



그녀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을뿐 처음부터 대중들의 스타가 되고자 노래를 부른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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