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제조를 결심한 이유
브런치 매거진 <결국엔 김대표>에서도 설명했지만, 나는 경영학과를 졸업한 헬스케어 Product Manager 였다. (모든 마케터의 업무는 거지 같은가요? 에서 어떤 일을 했었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제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 대략적인 흐름 전반은 알고 있었으나, 개발은 아주 간단한 코딩 수준만 이해하고 있는 "비개발자"였고, 대부분 개발에서 시작되는 요즘 스타트업 트렌드를 생각했을 때 주류는 아닌 셈이었다.
그렇지만 개발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와 상관없이, 내 창업이니 내가 납득 가능해야 했고, 나는 반드시 팔리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
일단 내가 계속 직접 운영을 하든, 다른 회사에서 사가든, 어쨌든 현금흐름이 되는 비즈니스여야 했다. 아무리 큰 비전을 꿈꾸더라도 돈이 돌지 않는 회사는 오래가기 힘들다.
물론 처음엔 돈이 되지 않는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굉장히 많은 유저를 모아서 결국 꿈을 이루어내고, 엄청난 장악력을 만들어낸 "당근마켓"이나 "오늘의집" 같은 회사들도 당연히 있다.
그렇지만 회사가 작을수록 대표의 성향을 따르게 되는데, '내가 과연 그런 시간들을 잘 견딜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을 땐 '쉽지 않겠다'라는 답을 내렸다. 나는 지금까지 제품을 파는 일을 해왔고 그걸 잘하는 사람이기에, 일단 그 길을 가보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조>는 필수적이었다. 그렇지만 강아지 관련 식품이나 영양제를 사기만 했지, 어디에서 만드는지 어디가 제일 큰지는 전혀 몰랐다. 그럼 이제부터 알아가면 되지!
일단 자주 가던 반려동물 오프라인 샵들에서, 제품들의 뒷면을 먼저 참고해보았다. 그리고 구글링! 반려동물 사료 제조, 반려동물 영양제 제조 등 키워드를 바꿔가며 계속 서치 하다 보면, 홈페이지 내 정보와 제품 포트폴리오를 통해 공장의 규모를 대강 파악할 수 있다. 만들고 싶은 형태의 제품을 사서, 그걸 어디에서 제조하는지 보는 것도 방법이다.
어쨌든 그렇게 시장조사를 마치고, 여러 군데에 메일을 보냈다. 물론 그중 가장 잘 만들어줄 것 같은 국내 1위 업체에도 연락했다. 우리는 아직 걸음마 단계 일진 몰라도 결국엔 성공할 비즈니스였고, 당연히 잘 만드는 곳과 계약하고 싶었다.
"우리 이런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하고 있고, 이런 제품 만들고 싶은데 미팅 가능하실지요?"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고 2시간도 채 안되어서 전화가 왔다. (나중에 미팅하러 가보니 전화 주신 분은 제조업체의 대표님이었고, 이제 막 만들어진 회사가 제품 컨셉을 이야기하면서 아무튼 만들어달라고 하니 재밌었다고 한다. 마치 스타트업에서 삼성전자에 제품 만들어달라 하는 모양새였다며..)
이유야 어찌 되었든 간에 미팅을 잡았고, 덕분에 반려동물 식품의 종류와 모양, 제조 과정까지 굉장히 자세하게 설명을 듣고 방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주식과 간식, 건식과 반습식, 습식의 차이는 어떻게 되는지, 포장 용기는 어떤 게 가능한지 등 절대 현장의 목소리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까지 상세하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남양주의 공장을 4번째 방문한 날, 생산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반려동물 업계에서는 잘 없는 친환경 포장 형태로, 알레르기 유발을 최소화한 단백질원만을 사용하여, 30년 현업 수의사가 효과를 본 유효성분을 배합한 우리 제품은, 그로부터 3달 후 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신기한 건 '1위 제조업체에서 생산했다'는 사실이, 의외로 M&A를 진행할 때 내 가치를 높게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업계에 몸 담은 사람들은 그 제조업체가 까다롭게 심사하여 생산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는 신생 브랜드'의 대표가 어떻게 하면 그 업체와 첫 계약을 맺을 수 있었는지 매우 궁금해했고, 4번씩 찾아가서 결국 만들어 낸 근성과 목표 달성 의식을 아주 높게 샀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이 만들어낸 또 다른 효과였던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