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와동 아이들 1

연호

by 고성프리맨

어슴푸레하게 저녁이 가까워지는 때. 동네 놀이터에 모인 아이들이 서로 손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 느린 속도에서 점점 속도를 올려가는 중이다. 아이들은 속도에 맞춰 부르는 노래의 속도도 올린다. 다들 재미있는지 큰 소리로 웃고 떠든다. 연호도 아이들 무리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옆에 애가 신경이 쓰인다. 물어볼까 말까 망설이다 용기를 내본다.


”얘? 넌 누구야? 동네로 이사 왔어? 오늘 첨 보는데.”


우울한 느낌의 아이는 말이 없다.


’기분이 나쁜 건가?’


”저기? 대화하기 싫어?”


여전히 아이는 말이 없다. 고개를 살짝 떨군 채 둥실둥실 움직일 뿐이다. 연호는 민망함에 애써 그 아이를 무시하고 바닥으로 시선이 향한다. 그런데 아이의 발이 보이지 않았다.


’어? 발이 없는 아이구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연호는 놀이에 집중한다.


”으악!”

”꺄아아!”


갑자기 두 세명의 아이가 비명을 지르더니 황급히 도망간다.


”뭐야? 뭐야? 엄마!”


나머지 아이도 도망가고 결국 연호와 발이 없는 아이만 남았다. 연호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뭐야? 다들 왜 저러지.. 에이 나도 집이나 가야겠다.”

”저기..”

”응?”


아까는 말도 없던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서서히 고개를 드는데 얼굴이 다소 창백해 보인다.


’얼굴이 많이 흰 편이네.’


”너.. 이상하다?”

”뭐가?”


말을 걸며 아이는 똑바로 연호를 쳐다본다. 하얗게 질린 얼굴에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얼굴. 누가 봐도 사람이 아닌 모습이다. 하지만 연호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는다.


”아.. 너 발이 없어서? 근데 그게 뭐?”

”넌 죽은 사람을 보는구나..”

”죽었어? 누가?”


이상하리만치 순수한 연호였다.


”나 이제 집에 가야 해. 늦게 들어가면 형이 화내거든.”

”으.. 응.”


집에 돌아가는 길이 즐거운지 연호는 노래를 부른다.


’형이 맛있는 거 사 왔을까? 배고프다. 저 아이도 배가 고플 텐데. 미안하네.’


집으로 가는 길은 미로 같다. 무분별하게 지어진 주택과 빌라가 뒤섞여 있어 더 정신이 없다. 미로 같은 길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연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길에 문득 3층 집 옥상을 바라봤다. 거기엔 여자 한 명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누나!”


초점 없는 눈 그리고 목에는 보랏빛의 자국이 있다. 얼굴이 푸르스름한 색이다. 연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씩씩하게 인사를 끝마치고 손을 흔든다. 옥상에 있는 여자는 그리 강하지도 않은 바람에 몸이 여기저기 흩날리며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다.


’저 누나도 볼 때마다 저러고 있단 말이야. 옥상은 추울 텐데.’


연호는 배가 많이 고팠다. 빨리 집에 가서 형하고 저녁밥이 먹고 싶다. 아직도 집까지는 좀 더 가야 한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며 컴컴한 집의 풍경이 보인다.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서는 치지직 거리는 TV소리도 들린다. 걷다가 평상에 나와 앉아 있는 할아버지 두 분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연호냐. 왜 이리 늦게 다녀 위험하게.”

”형이 늦게 오니까 어쩔 수 없어요.”

”그래 조심해서 다니고.”

”네. 아참 할아버지 저 쪽 집 옥상에 사는 누나는 왜 맨날 나와 있어요?”

”누가 있다고?”

”저기 3층 집 보이시죠?”

”응 그래.”

”옥상에 맨날 서 있는 누나가 한 명 있어요. 집에 돌아갈 때마다 인사하는데 말이 없네요.”

”뭐? 뭐라고?”

”저 갈게요. 형이 기다려요.”

”그.. 그래 잘 가라."


연호가 사라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고 나서 몸을 쓰다듬으며 오싹하다는 듯 3층집을 한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집에 들어가신다. 어느새 걷다 보니 집 앞에 도착했다. 집에 불이 켜져 있다.


”형! 나 배고파!”

”어 연호야 좀만 기다려.”


다부진 체격에 눈썹이 유달리 짙은 연호의 형 준호다. 준호는 연호하고 나이차가 꽤 많이 난다. 띠동갑의 나이차가 나는 만큼 연호에겐 부모님과 같은 존재이다. 준호는 몸이 크고 두꺼운 편이다. 팔에는 싸움의 상처가 많아 여기저기 다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오늘 재밌게 놀았어? 형이 맨날 늦게 와서 미안하다.”

”응 재밌었어. 오늘 놀이터에서 노는데 이상한 애 한 명 봤어.”

”이상한 애?”

”응!”

”왜 이상한데?”

”음.. 발이 없었어.”

”뭐?”


준호는 연호의 말에 깜짝 놀라며 잠시 움직임을 멈춘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지..’


동생 연호가 다른 아이와는 좀 다른 특별한 아이라는 걸 준호는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