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걸음
똑똑하게 일하는 사람이 부럽다. 같은 시간 동안 일을 해도 유독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는 사람과 난, 근본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SNS를 접하며 좀 더 나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성과의 등급을 매기자면 난 [저성과자]에 가깝다.
"다크 하고 암울한 얘기라면 듣고 싶지 않은데.."
그런 조짐이 보이더라도 최대한 티를 안 내도록 써볼 테니 이탈만은 제발 하지 말아 주시길.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처음 SNS에 도전해 봐야겠다 마음먹었을 땐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많이 보였다. 그중에는 나보다 팔로워 수에서 앞선 사람도 있었고 양질의 콘텐츠를 정성스레 올리는 분도 있었다.
그런 사람 중에서도 난 특히 하위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콘텐츠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콘셉트는 이렇게 정했다.
- 퇴사한 40대의 이야기라면 모두가 궁금해하겠지?
- 직장 생활하며 겪었던 내용 풀어서 쓰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인사이트는 보장이지!
호기롭게 카드뉴스의 형태로 열심히 만들었다. 디자인 감각이 0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레이아웃 하나 잡는 것도 왜 이리 힘들던지.
낑낑거리기를 1시간.
'이건 아닌데? 다시!'
낑낑거리기를 2시간.
'... 처음 게 더 나은 거 같아.'
낑낑거리기를 3시간.
'... 그냥 처음걸로 올리자.'
잘 모를 땐 처음 찍었던 답을 밀고 나가는 게 속 편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고작 처음 피드 하나 발행하는 게 전부인 행위였는데 뭐가 이리 긴장되던지. 솔직히 말하면 기대감이 너무 컸다고 밖엔 말 못 하겠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침내 업로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네. 일상 그대로야.'
그런데 계속 올린 피드를 살펴보며 눈치를 봤다. 그렇게 쳐다본다고 안 좋은 내용이 갑자기 좋아질 리도 없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처음이 어려웠지 두 번째, 세 번째 업로드는 좀 더 편해졌다는 거다. 내용은 음.. 당시 내 수준에 맞게 올렸다. (지금이라 해서 크게 변한 건 없어 보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앞서서 노력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스타그램의 알고리듬이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키워드 등을 분석해 가며 듣고 싶어 하는 또는 배우고 싶어 하는 콘텐츠를 생산했다. 그리고 그 성장 과정을 솔직, 담백하게 보여줬다.
일 년이 지나자 나와 그들 사이엔 뚜렷한 차이점이 생겼다.
1. 눈으로 보이는 지표가 달라졌다.
2.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나와 달리 프로페셔널함이 보였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과 시대가 원하는 걸 만들어 보여주는 것의 차이는 대단했다.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건 거북이의 걸음처럼 굉~장히 느린 속도로 0.00001% 정도는 성장했다는 것. 그마저도 현재는 정체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아마 회사였다면 비상회의로 난리가 났을 일이다.
"지금 우리 회사 상품이 안 팔리고 침몰해 가는 중인데 해결책 좀 내놓으세요!"
'77ㅓ억.. 아무 생각 안 하고 하는 일만 하면서 월급 받고 싶다. 퇴근까진 얼마나 남았지?'
회사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비상사태에도 누군가한테 책임을 떠넘기려면 떠넘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가 되자 떠넘길 곳이 없어졌네?
뒤를 돌아보면 내 검은 그림자가 "뭘 봐?" 하며 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 어째서 난 저성과자가 되었을까?
답을 몰라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앞서서 보여준 이들을 따라가면 중간은 가지 않을까?
이상한 오기도 생겼던 거 같다. 40대의 빠르지 않은 나이에 창작을 하려는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 할 [예술혼]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렇다고 예술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 흥. 내가 쓰는 이야기의 가치도 몰라주고 말이야.
- 나처럼 솔직하게 오픈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 이래도 안 읽어?
"노잼이라 안 읽음."
- 흘러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한데 내 만족을 추구하느라 허비 중인 건 아닐까?
이미 벌어진 격차를 인정하고 다른 방향을 찾아야 했다. 지금에서야 털어놓지만 난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나는 솔로의 남 PD가 출연자에게 일갈하던 말이 떠올랐다.
"솔직하지 못한 선택입니다."
무엇이 그리 솔직하지 못했을까?
1. 내 욕망에 솔직하지 못했다.
2. 포장하기 급급했다.
3. 나의 노력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우선,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를 숨겼다. 교양 수준이나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하며 사는 건 내가 원하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 속 내 모습은 마치 성인군자를 연상케 했다. 욕심 없는 척했지만 누구보다 큰 야망을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능력이 못 따라줄 뿐.
둘째로는 남이 나를 보는 모습에 신경 썼다.
"40대 백수라고 왜 말을 못 해!"
말을 못 하겠더라.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그렇다 해서 당당하지도 않고. 포장지가 필요했다.
"저 이런 일 하는 사람입니다 하핫."
명함이 필요했다. 회사에선 만들어서 줬었는데 대체할 명함은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어차피 명함 뒤에 숨겨진 내 본모습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
마지막으로 내가 쓰고 있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난 가치를 가졌다고 믿고 싶었다.
- 회사 다닐 땐 시간이 없어서 못했지만 시간이 많아진 지금은 분명 다른 결과물이 나오겠지?
메타인지가 부족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서라도 똑똑하게, 스마트하게 일을 해나가면 되는 거 아닐까?
- 뭔가를 이룬 누군가처럼 당당해지기 위해 노력하면 되잖아.
매일 다짐하긴 한다. 오늘은 좀 더 특별해지자고. 오늘부터는 변화하자고.
- 당장 하던 일 다 접어!
속에서 유혹의 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다 접고 새로 시작한다 생각하니 설레기도 했다. 회사 이직할 때도 하는 일이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환경이 주는 설렘이 있었다.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넌 멍청하지 않아. 지금 하던 걸 계속해도 괜찮아.]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들려오던 목소리가 하나 더 있었다.
"이거 이거.. 뻔하게 다짐하고 잘하고 있어! 이러면서 하던 거 계속 잘하자. 뭐 이런 엔딩인가요??"
...
- 어쩜 제 마음을 딱 알아맞..
"으휴. 난 또 뭐 새로운 내용일 줄 알았네."
40대에 이런 말 하자니 참 부끄러운데.. 난 아직도 내가 초식동물인지 육식동물인지도 잘 모르겠다. 송충이면 송충이답게 풀잎만 먹고살면 될 텐데. 어떤 때는 초식인 것처럼 풀만 뜯기도 하고 어느 날은 육식동물에 빙의돼 피와 살을 취하기도 한다.
지금의 과정은 어쩌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이전까지 뭐 하다 이제야 알아가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은 없다. 단지 지금은 그 과정이 내게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앞서서 소중한 경험과 지표를 보여주던 사람처럼 못하고 있다 해서 움츠러들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지나고 나서 그의 말이 맞고 지름길이 아닌 먼 길을 돌아서 왔구나라고 느낄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게는 내게 맞는 방법과 길이 있고 다른 이에게도 그에 맞는 길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소 뻔하게 다짐하며 잘해보자는 엔딩으로 글을 끝내면 좀 어떤가. 그토록 뻔해 보이는 것도 막상 유지하려면 쉬운 일은 아닌 것을. 오히려 잘 못하고 있을 때 스스로를 격려해 보는 것도 필요하진 않을까?
- 괜찮아. 지금 엉망진창인 모습이 어쩌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 중 가장 정상인 모습 일지도 몰라. 그러니 하루라도 덜 망가져 있을 때 최선을 다하렴. 앞으로도 계속 망가지고 망가져서 결국 나중엔..
???
"아휴! 비켜! 청소하는 데 걸리적거리고 말이야. 멍 때릴 시간에 청소나해! 이게 집이야? 돼지우리야? 내가 안 하면 손하나도 까딱을 안 하지? 버릇을 잘 못 들였어 후."
불호령에 다행히 정신을 차렸다.
"이곳이 내가 속한 현생인가?"
"열받게 만들지 마라?"
"헤헷. 연기가 안 통하네. 청소할게 이리 줘."
스마트하지 않으면 좀 어떠한가. 그런 모습도 품으며 같이 살아주는 사람도 있는데. 똑똑하게 살지 못하는 40대 남자에게 생활력 있는 아내만 있다면 그런 것쯤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안심하고 앞으로도 내 갈길을 쭉 걸어가야겠다. 비록 따가운 시선은 많이 받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