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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l 17. 2024

40대도 성장 가능성이 있을까?

63 걸음

똑똑하게 일하는 사람이 부럽다. 같은 시간 동안 일을 해도 유독 두드러지는 성과를 내는 사람과 난, 근본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SNS를 접하며 좀 더 나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성과의 등급을 매기자면 난 [저성과자]에 가깝다.


"다크 하고 암울한 얘기라면 듣고 싶지 않은데.."


그런 조짐이 보이더라도 최대한 티를 안 내도록 써볼 테니 이탈만은 제발 하지 말아 주시길.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처음 SNS에 도전해 봐야겠다 마음먹었을 땐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많이 보였다. 그중에는 나보다 팔로워 수에서 앞선 사람도 있었고 양질의 콘텐츠를 정성스레 올리는 분도 있었다.


그런 사람 중에서도 난 특히 하위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콘텐츠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콘셉트는 이렇게 정했다.


- 퇴사한 40대의 이야기라면 모두가 궁금해하겠지?

- 직장 생활하며 겪었던 내용 풀어서 쓰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인사이트는 보장이지!


호기롭게 카드뉴스의 형태로 열심히 만들었다. 디자인 감각이 0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레이아웃 하나 잡는 것도 왜 이리 힘들던지.


낑낑거리기를 1시간.

'이건 아닌데? 다시!'


낑낑거리기를 2시간.

'... 처음 게 더 나은 거 같아.'


낑낑거리기를 3시간.

'... 그냥 처음걸로 올리자.'


잘 모를 땐 처음 찍었던 답을 밀고 나가는 게 속 편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고작 처음 피드 하나 발행하는 게 전부인 행위였는데 뭐가 이리 긴장되던지. 솔직히 말하면 기대감이 너무 컸다고 밖엔 말 못 하겠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침내 업로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네. 일상 그대로야.'


그런데 계속 올린 피드를 살펴보며 눈치를 봤다. 그렇게 쳐다본다고 안 좋은 내용이 갑자기 좋아질 리도 없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처음이 어려웠지 두 번째, 세 번째 업로드는 좀 더 편해졌다는 거다. 내용은 음.. 당시 내 수준에 맞게 올렸다. (지금이라 해서 크게 변한 건 없어 보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앞서서 노력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스타그램의 알고리듬이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키워드 등을 분석해 가며 듣고 싶어 하는 또는 배우고 싶어 하는 콘텐츠를 생산했다. 그리고 그 성장 과정을 솔직, 담백하게 보여줬다.




일 년이 지나자 나와 그들 사이엔 뚜렷한 차이점이 생겼다.


1. 눈으로 보이는 지표가 달라졌다.
2. 아마추어처럼 보이는 나와 달리 프로페셔널함이 보였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과 시대가 원하는 걸 만들어 보여주는 것의 차이는 대단했다.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건 거북이의 걸음처럼 굉~장히 느린 속도로 0.00001% 정도는 성장했다는 것. 그마저도 현재는 정체기를 겪고 있는 중이다.


아마 회사였다면 비상회의로 난리가 났을 일이다.


"지금 우리 회사 상품이 안 팔리고 침몰해 가는 중인데 해결책 좀 내놓으세요!"

'77ㅓ억.. 아무 생각 안 하고 하는 일만 하면서 월급 받고 싶다. 퇴근까진 얼마나 남았지?'


회사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비상사태에도 누군가한테 책임을 떠넘기려면 떠넘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가 되자 떠넘길 곳이 없어졌네?


뒤를 돌아보면 내 검은 그림자가 "뭘 봐?" 하며 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 어째서 난 저성과자가 되었을까?


답을 몰라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앞서서 보여준 이들을 따라가면 중간은 가지 않을까?


이상한 오기도 생겼던 거 같다. 40대의 빠르지 않은 나이에 창작을 하려는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 할 [예술혼]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렇다고 예술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 흥. 내가 쓰는 이야기의 가치도 몰라주고 말이야.

- 나처럼 솔직하게 오픈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 이래도 안 읽어?


"노잼이라 안 읽음."


- 흘러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한데 내 만족을 추구하느라 허비 중인 건 아닐까?


이미 벌어진 격차를 인정하고 다른 방향을 찾아야 했다. 지금에서야 털어놓지만 난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나는 솔로의 남 PD가 출연자에게 일갈하던 말이 떠올랐다.


"솔직하지 못한 선택입니다."




무엇이 그리 솔직하지 못했을까?


1. 내 욕망에 솔직하지 못했다.
2. 포장하기 급급했다.
3. 나의 노력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다.


우선,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를 숨겼다. 교양 수준이나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하며 사는 건 내가 원하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 속 내 모습은 마치 성인군자를 연상케 했다. 욕심 없는 척했지만 누구보다 큰 야망을 숨기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능력이 못 따라줄 뿐.


둘째로는 남이 나를 보는 모습에 신경 썼다.


"40대 백수라고 왜 말을 못 해!"


말을 못 하겠더라. 부끄러운 일이 아닌데 그렇다 해서 당당하지도 않고. 포장지가 필요했다.


"저 이런 일 하는 사람입니다 하핫."


명함이 필요했다. 회사에선 만들어서 줬었는데 대체할 명함은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다. 어차피 명함 뒤에 숨겨진 내 본모습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


마지막으로 내가 쓰고 있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난 가치를 가졌다고 믿고 싶었다.


- 회사 다닐 땐 시간이 없어서 못했지만 시간이 많아진 지금은 분명 다른 결과물이 나오겠지?


메타인지가 부족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제서라도 똑똑하게, 스마트하게 일을 해나가면 되는 거 아닐까?


- 뭔가를 이룬 누군가처럼 당당해지기 위해 노력하면 되잖아.


매일 다짐하긴 한다. 오늘은 좀 더 특별해지자고. 오늘부터는 변화하자고.


- 당장 하던 일 다 접어!


속에서 유혹의 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다 접고 새로 시작한다 생각하니 설레기도 했다. 회사 이직할 때도 하는 일이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새로운 환경이 주는 설렘이 있었다.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넌 멍청하지 않아. 지금 하던 걸 계속해도 괜찮아.]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히 들려오던 목소리가 하나 더 있었다.


"이거 이거.. 뻔하게 다짐하고 잘하고 있어! 이러면서 하던 거 계속 잘하자. 뭐 이런 엔딩인가요??"


...


- 어쩜 제 마음을 딱 알아맞..


"으휴. 난 또 뭐 새로운 내용일 줄 알았네."


40대에 이런 말 하자니 참 부끄러운데.. 난 아직도 내가 초식동물인지 육식동물인지도 잘 모르겠다. 송충이면 송충이답게 풀잎만 먹고살면 될 텐데. 어떤 때는 초식인 것처럼 풀만 뜯기도 하고 어느 날은 육식동물에 빙의돼 피와 살을 취하기도 한다.


지금의 과정은 어쩌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이전까지 뭐 하다 이제야 알아가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은 없다. 단지 지금은 그 과정이 내게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앞서서 소중한 경험과 지표를 보여주던 사람처럼 못하고 있다 해서 움츠러들 필요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지나고 나서 그의 말이 맞고 지름길이 아닌 먼 길을 돌아서 왔구나라고 느낄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게는 내게 맞는 방법과 길이 있고 다른 이에게도 그에 맞는 길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소 뻔하게 다짐하며 잘해보자는 엔딩으로 글을 끝내면 좀 어떤가. 그토록 뻔해 보이는 것도 막상 유지하려면 쉬운 일은 아닌 것을. 오히려 잘 못하고 있을 때 스스로를 격려해 보는 것도 필요하진 않을까?


- 괜찮아. 지금 엉망진창인 모습이 어쩌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 중 가장 정상인 모습 일지도 몰라. 그러니 하루라도 덜 망가져 있을 때 최선을 다하렴. 앞으로도 계속 망가지고 망가져서 결국 나중엔..


???


"아휴! 비켜! 청소하는 데 걸리적거리고 말이야. 멍 때릴 시간에 청소나해! 이게 집이야? 돼지우리야? 내가 안 하면 손하나도 까딱을 안 하지? 버릇을 잘 못 들였어 후."


불호령에 다행히 정신을 차렸다.


"이곳이 내가 속한 현생인가?"

"열받게 만들지 마라?"

"헤헷. 연기가 안 통하네. 청소할게 이리 줘."


스마트하지 않으면 좀 어떠한가. 그런 모습도 품으며 같이 살아주는 사람도 있는데. 똑똑하게 살지 못하는 40대 남자에게 생활력 있는 아내만 있다면 그런 것쯤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안심하고 앞으로도 내 갈길을 쭉 걸어가야겠다. 비록 따가운 시선은 많이 받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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