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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l 14. 2024

40대에 잃지 말아야 할 것.

62 걸음

모든 이야기에는 주인이 있다. 지금 이야기의 주인은 나다.


40대 초. 무직. 아니지. 자영업. 또 다른 희망직업 작가. 현재는 작가지망생 레벨. 기혼이며 자녀가 있다.


40대의 기혼남이 잃지 말아야 할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많기도 하고 적은 것도 같은데. 그중에서 한 가지를 굳이 꼽자면..


[가족과의 시간]이다.




그렇다 해서 엄청나게 가정적인 사람은 또 아니다. 그래도 귀촌해서 살겠다고 마음먹은 덴 가족에 대한 생각이 컸다.


진지하게 말해서 도시 사람으로 태어나 도시를 떠나 살겠다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집 밖을 나서서 얼마 걷지 않아도 생활편의와 관련된 각종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곳은 내게 천국이었고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귀촌 생활은 남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30대 이후부터는 일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능력이 부족하다 생각해 성장에 목말랐었고 잘 돼있거나 잘 나가는 동료의 뒤를 쫓아 개선해 가는 삶이야말로 궁극적인 목표였다.


기술 숙련도의 성장도 있었을 테고 연봉 상승에 대한 욕구, 직급을 올리겠다는 욕망이 한데 버무려졌던 시기였다. 하지만 현실적인 벽은 늘 높았다. 내 기준으로 보자면 잘하는 사람은 항상 치이게 많았고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두각을 나타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한 직장인에게 아무 이유 없이 연봉을 높여주거나 직급을 부여해 주는 꿈같은 회사는 없을 테니까.


모든 일엔 당연하게도 이유가 붙는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이유를 명확히 만들어 낼수록 나라는 상품의 부가가치가 높아지게 설계돼 있다.


인생을 돌아보게 만든 몇 마디 문장이 떠오른다. 이 모든 말은 다녔던 회사에서 들었던 말이다.


- 참 어리석다. 어리석어. 회사가 그럼 뭐 평생 책임져 줄 줄 알았어? 회사는 그런 데가 아니야. 평생 책임져줄 수 있는 건 그 어디에도 없어.

- 하고 싶은 것만 하려면 능력이 특출 나거나. 뭐 내세울 게 없잖아.

- (권고사직 당한 선배가 인사를 끝으로 엘리베이터를 탔다.) 저 봐라. 저게 현실이야. 그래도 저 사람은 50대까지라도 일했지. 넌 다를 거 같아?


참 다크한 세계 아닌가. 반대로 보면 본인이 잘릴 걱정 없는 회사를 차리거나, 특출 난 능력을 가졌거나, 어린 나이를 유지하면 되려나.


"그냥 잘리지 않게 가늘고 길게 다니면 돼. 욕심을 다 내려놓고. 그러면 어느 정도까진 다닐 수 있다니까. 다들 뭘 그리 열심히들 사나 몰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주변인들은 약해졌다. 나도 약해졌기에 누굴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사실 뭐라고 할 일도 아니지 않나.


원피스 같은 애니 속 주인공처럼 해적왕이 되겠다며 "너 내 동료가 돼라!"를 읍소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선택이 필요했다. 엘리트 코스를 살아갈 수 없다면 니치마켓을 공략해야 한다.


"니치마켓?"

"캬하핫.. 제가 알려드릴게요~!"


niche = 틈새. 남이 모르는 좋은 낚시터를 뜻하는 은유를 포함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틈새시장?


"아는 척하고 싶었구나?"

"한 번만 눈감아 주세요 :)"


그래서 선택한 길은 바로 [스타트업]. 그거 알려나. 용어를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면 생각보다 뽕에 취하기 쉽다는 거.


벤처기업이라 하면 올드해 보이는데 스타트업 하니까 좀 있어 보였다. 실상을 알고 보면 10인 미만. 작게는 5인 미만의 기업이 태반이다. 물론 몸집이 거대한 신화 속 존재 같은 유니콘도 있지만 원래 꿈과 이상엔 괴리가 존재하는 법이지. 어느 순간 취해버렸다.


"난 시장을 선도하는 엔지니어가 될 거야."


대기업을 다니면 시장을 선도하는 게 아니란 말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지만 오랜 전통의 프로세스를 구축해 수많은 인재를 거느린 회사들을 비웃었다.


"저 구태의연한 인습에 둘러싸인 회사를 다니는 불쌍한 사람들을 보라. 안타깝다 안타까워."


사실 그들은 나처럼 스타트업 신을 돌아다니는 개미를 크게 의식하지도 않았을 텐데. 자격지심이 다소 공격적이게 만들었다. 원래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던데. 겪어보고 알았다.




스타트업은 그럼 어떤 장점이 있길래?


스타트업도 제각각이라 좋은 문화를 가진 곳도 있는 반면 가'족같은' 기업도 있기 마련이다. 복불복이다. 솔직히 말하면 취향이라고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도 내게 몇 가지 의미 있는 이유는 있었는데 듣고 나면 어이없어할 거 같다.


1. 반존대문화 => 괜찮지만 가끔 열받을 때는 생겼다.

2. 영어호칭 => 한국인이지만 외국인에 빙의된 이명을 하나 써보고 싶었다.

3. 수평조직 => 말투는 평등해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묘한 계급갈등이 존재한다.

4. 연봉 => 어떻게 측정되느냐에 따라 연봉상한선이 결정될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위에 쓴 이유는 정말 개인적인 것이기에 절대로 스타트업의 상황과 맞지 않음을 아셔야겠다. MSG 첨가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필수요소 아니겠나. (아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건 회사가 돈을 지불할 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적게 받으면 적게 받은 만큼 미친 듯이 일하고 많이 받으면 많이 받았으니 미친 듯이 일하면 된다.


?????


직원이 적기 때문에 좋은 점은 뭐가 있을까? 평생 해볼 수 없던 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장점이라고요?? 진심으로??"

"아.."


다닐 땐 욕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장점으로 느껴지는 경험도 꽤 있긴 하다. 물론 욕 나오는 경우도 상당하지만.


그리고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창업자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큰 기업에서는 창업자나 경영진과 말을 길게 섞을 일이 잘 없었는데 스타트업에선 회사의 규모가 아기자기하다 보니 고개만 돌리면 싱긋 웃는 창업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잘됐네요. 할 얘기가 있었는데 진실의 방으로."

"..."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오늘은 운도 없지. 1시간이 넘게 창업주의 고충을 들어주는 시간이었다. 듣다 보니 그의 상황이 안되었다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내 현실이 더 눈물 나게 슬펐다는 점.


아무튼 내가 알던 절대권력의 창업주와는 거리가 있었다.


"자.. 그런 연유로 앞으로는 좀 더 개인 시간을 갈아 넣어서 미친 듯이 일해주셔야겠네요! 가능하시겠죠!? 물론 연봉은 동결입니다. 대신 우리는 미래 성장 동력이-"

"당연하죠! 전 사실 일을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쉽게 망언을 내뱉었다. 과거의 나로 돌아간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후회하진 않으니 괜찮다.




초창기 스타트업일수록 혼돈의 크기가 거대하다. 모두가 떠밀리는 파도에 나무토막하나 붙잡고 휩쓸리는 상태기 때문이다.


"이 산도 맞는 거 같고 저 산도 맞는 거 같은데? 그렇다면 동시에 등반하면 되잖습니까아아!"

"와아아~"


조져지는 건 나였다. 미처 몰랐다. 육체나 정신이나 한정된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걸. 무한하리라 생각했건만 내 목과 허리는 굽어갔고 늘 아픔을 호소했다. 아픔호소인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아팠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착하게 말을 건네줬다.


"직장인은 원래 다 아파. 내가 애 낳고 손목도 시큰 거리고. 종아리에 쥐도 나고 휴.. 야! 네가 나한테 뭘 해줬냐! 독박육아 시키려고 나랑 결혼했어?"


말이 더 많아지기 전에 전화 온 것처럼 수화기를 들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정신적인 문제도 점점 심해졌는데. 매사가 귀찮고 생각하는 것도 고통이었다. 그저 일만 생각하며 일에 숨어 지내는 게 최선이라 여겼다.


아내의 불만 어린 목소리도, 아이들의 놀아달라는 소리에도 언제나 난 한결같았다.


"미안. 이것만 끝내고."


점점 일에 파묻혔다. 스스로 파묻히기를 선택했기에 딱히 변명할 수도 없는 일. 그렇게 난 가족과의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 나 왜 이러고 살고 있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40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 먹고살아야 했고 일이 필요했고 성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늘 예민하고 화만 내던 내게 아이들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아내도 일과 육아의 병행 속에 허덕이고 있었다. 행복하려고 열심히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역설적으로 행복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행복이란 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거 아시잖아요?"


부인하지 않는다. 무일푼으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은 나의 바람이 아니니까.


당연하겠지만 갑자기 도시 생활을 접고 귀촌을 한다 해서 멀어졌던 가족 사이가 한순간에 가까워지진 않는다. 멀어지게 된 시간만큼 가까워질 시간이 필요하달까. 세상 모든 일은 신기할 정도로 인과가 존재하는구나.




한때는 늦었다고 생각했다. 이번 생은 가족과 오순도순 사는 삶이 쉽지 않겠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느꼈다. 그것 또한 내 착각이었음을.


40대에 잃지 말아야 할 것들 중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요소는 상당히 많겠지만..


그래도 딱 한 가지만 뽑아보자면.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이라고 답하고 싶다. 아직 이뤄지진 않았다. 이뤄가고 싶기에 선택했다.


어린 시절부터 늘 꿈꾸던 단란한 가정. 그 가정을 이뤘음에도 어찌하여 난 그토록 불만에 가득했던 것일까? 어렵게 일궈냈으면서도 손에 쥐었다고 생각하니 쉽게 생각했던 건 아닐지.


40대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 가족과의 오붓한 시간을 가지는 방법이 반드시 정해져 있진 않다. 다만 나라는 사람은 그 방법 중 하나로 귀촌을 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삶에서 더욱더 좋은 시간을 함께하며 이번 생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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