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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Jul 12. 2024

10대 버릇 40 간다.

61 걸음

[40대도 특별하진 않아요.]


매거진 제목을 지었을 때만 해도 40대에 들어선 평범한 남자의 생각을 정리해 볼 생각이었다. 하나 쓰다 보니 점점 40대와는 크게 상관없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있었네?"


중간에 40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면 40대 이야기가 되는 매직. 내용의 흐름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순간 40이 들어가면 그 글은 40대 카테고리에 들어가는구나.


나름의 할 말은 있다.


'40대의 삶이라고 해봤자 정말로 특별한 게 갑자기 생기지는 않는데. 지금처럼 쓰면 안 되려나?'


되고 안되고 가 어디 있겠어. 그냥 쓰면 쓰는 거지.


그런데. 살면서 어느 때고 특별한 순간이 있기는 했나?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5분이 지났다. 10분이 훌쩍. 어느새 20분.


"침대에 누워 잠이나 자세요."


잔 것이 아니다. 잠시 사유하느라 몰입했을 뿐. 입가에 묻은 건 결코 침과 같은 성질의 것은 아니나 단지 내가 인지하지 못한 어떠한 연고로 묻게 된 것뿐. 세상엔 원래 설명하기 힘든 초자연적인 현상도 일어나는 법이니까. 마치 자동차 사고의 급발진과 같은 현상이랄까.


'그래도 매거진의 제목에는 나름 부합하는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같은데. 차라리 [40대 시간부자의 특별하진 않지만 소소하지도 않은 하루]라고 할 걸 그랬나.'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제목을 참 못 짓는다.


"제목만 못 지으면 다행이게요?"


제목'도' 못 짓는 건가?


제목 또는 주제가 주는 기대감이라는 게 분명 있을 텐데. 특별하지 않은 40대 남자의 일상이 어떤 기대감을 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건 없을 거 같은데..'


어떻게 보면 읽어주는 분이 더 대단할지도 모르겠다. 마치 "이렇게 써도 읽어?"라며 괴식 한상 차림을 만들어 온 듯한 취향의 내 글을 읽어주시다니.


다시 한번 나를 살펴보자. 그래도 뭐라도 있으니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거 아니냐 이 말이다. 평범 속에서도 따스한 휴머니즘을 전달한다거나 깊은 감성을 표현해 본다거나.


'Nothing.'


애석하게도 예술에 조예가 깊지도 않고 그렇다고 인문학적으로 뛰어난 지식을 전파할 수도 없는 상태. 누군가에게 알려줄 만한 것을 애초에 가지고 있지도 않고 그럴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은 없는 거 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지향하는 걸까?

나의 글이 어디에 있는 누군가에게 어떻게 닿기를 바라는 걸까?




이제는 나름 오래돼서 먼지가 쌓여 기억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친구와의 수다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그날도 특별할 건 없었다.


여느 때처럼 쉬는 시간 종소리가 울렸고 난 싸 온 도시락을 허겁지겁 퍼먹었다. 고작 2교시가 끝났을 뿐인데도 난 상당히 허기가 져있었나 보다.


- 야. 점심시간에 뭐 먹게?

- 놀아야지.


인싸도 아니었으면서 점심시간에 뭘 그렇게 논다고. 인싸는 아니었지만 가끔 농구를 했던 기억은 난다. 물론 주전은 아니었다. 아무리 근본 없는 동네 농구계에도 엄연히 레벨은 정해지는 법. 내 위치는 딱 식스맨이었다.


누군가 휴식이 필요하거나 부상을 당했을 때 숫자를 맞추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 반대로 말하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구경꾼 1이 되는 사람. 선수와 관중 그 어딘가에서 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 짓도 매일 하다 보니 못해먹겠더라. 멍하니 구경하다 보면 어느샌가 애타게 기다렸던 점심시간은 예외 없이 끝나있었다.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점심시간이 끝났을 때의 허전함이 밀려왔다.


- 잠이라도 자면 좋았을 걸.

- 책이라도 볼 걸.


곧 죽어도 '공부라도 할걸.'이란 생각은 안 떠오르는 과거의 나. 어차피 공부는 계속해야 하니까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그래. 그랬을 거라고 믿자.


다음날부터는 더 이상 농구장 한편에 서서 멀뚱히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짓을 하지 않았다. 물론 2교시가 끝나고 점심 까먹는 행동은 여전히 지속됐다. 무슨 이유에선지 점심시간을 온전히 확보하는 건 내게 큰 만족감을 주는 행위였다.


띵동댕동-


"끼야앗! 점심 먹자!"


굶주렸던 아이들이 환호하며 밥 먹는 시간.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서관으로 갔다. 그냥 잠을 잘 수도 있었지만 기왕이면 있어 보이게 책을 펼쳐놓고 도서관에서 자는 꿀잠의 매력을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참고로 내가 속한 곳은 남고였다.


"설마..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은 거 보면 알겠지만 내 노선은 확고하다.


안 하던 짓을 하려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도서관에 오긴 왔으니 읽을 책 하나는 찾아봐야겠는데. 잘 정리된 도서관 카테고리를 무시하고 문학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식을 전달해 주는 책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졸린 게 아닌 이상 그런 책은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으니까.


그러다 표지가 너덜너덜해져 있는 책을 하나 발견했다. 제목이.. [개미]?


- 파브르의 곤충기 같은 책인가? 패스..


일단 너덜 거리고 바래져 있는 책을 보자마자 정이 뚝 떨어져 그냥 지나쳤다. 솔직히 두꺼워서 지나친 것도 있었지만.


한참을 서성여도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나마 두 번째로 내 눈을 사로잡았던 제목이 있다면.. [람세스]?


- 두껍고 권수가 많은 거 보니. 재미없는 이집트 왕조물인가. 패스..


"아.. 읽을 책이 없네."


그러다 다시 [개미]를 꺼냈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잘 거면 두툼한 베개 역할을 해줄 책이 필요하기도 했다.


- 재미없기만 해 봐라. 바로 자 줄 테니.


죄 없이 너덜거리는 불쌍한 책에게 협박을 가하며 첫 장을 펼쳤다. 


정신을 차렸을 땐 밤새워가며 개미를 읽었던 기억만 남아있었다. 정확히 모든 내용이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충격적이었다. 수업 시간엔 자고 쉬는 시간에 읽었다. 야자가 끝나면 다시 또 새벽동안 읽었다. 그리고 학교에 와서 잠을 잤다.


'참된 학생이었구나 나.'




이렇듯 10대 끝자락의 내 모습도 별로 특별하진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떠올려 보는 예전 모습 덕에 알게 된 사실.


'그때 좀 더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좀 더 나은 어른이 되었을 거 같은데.'


그 결과 40대의 내가 탄생했다. 10대 때 베짱이 짓을 하면 40대에도 베짱이가 될 수 있다는 교훈. 살아있는 증거가 여기 있다.


한번 습관을 들인 한량짓은 세월이 흘러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반복하게 되는 것일까.


장난.. 아니 진담이다. 정말로 한번 맛 들인 취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바쁨 속에 잊고 지내며 산지 오래되다 보니 몰랐을 뿐이다.


애초부터 나란 사람은 이런 걸 좋아하고 저런 걸 싫어하는 등 취향이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10대, 20대, 30대, 40대. 세월은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흘러가는 세월은 분명 나를 참 많이도 바꿔 놓았다. 더 이상은 내게서 볼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모습. 다시는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과거 속의 나는 다행스럽게도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은 복잡했던 머릿속이 명쾌해졌다.


'여전히 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구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이런 날 옆에서 지켜봐야할 가족은 많이 괴롭겠지만.


과거의 내가 공부는 접고 소설을 읽어줬기에, 40대가 되어서도 소설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공부를 등한시하고 책만 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뿌듯하다.


"또... 또.. 이러네. 밥이나 먹어 오빠."


벌써 밥시간인가.


"오늘의 메뉴는?"

"니가 해야지. 내가 하라고?"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죠."


그럼 밥 지으러 이만.

매거진의 이전글 필사.. 거 되게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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