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up

by 고성프리맨

삼촌 가게에서 일할 때면 쉽게 우울해지곤 했었다. 정신없이 손님이 몰아치고 응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점심시간도 훌쩍 지나갈 때가 많았는데, 딱히 밥 생각도 나지 않고 한 없이 우울해지곤 했다. 물론 그런 것치곤 매 끼니를 거른 적 없이 잘 먹었지만.


아마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삼촌도 그리 속히 편하진 않으셨을 거 같다. 그래서인지 어쩔 땐 삼촌이 용돈을 주기도 했다.


"가서 운동화 하나 사 신어라."


그러면 무뚝뚝하게 "네. 감사합니다."하고 대화는 종료되었다. 솔직히 감사했지만, 감정 기복이 심하던 상태라 제2의 사춘기라도 겪는 것 마냥 틱틱거리기만 했었다. 당시 서른이나 먹은 성인치고는 행동이 좀.. 별로였던 걸 인정한다.


나름 할 말은 있다. 분명 일은 하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마음이 늘 공허했다. 마치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숨 막히고. 그런 상황과 반대로 손님 응대는 또 재밌었다. 늘 내향적으로 살아왔던 것 치고는, 신기할 정도로 손님과 시간을 보내는 건 흥미로웠다. 그들의 여유롭게 식사하는 모습, 팁을 챙겨주는 모습 등을 보며 마치 TV속 드라마를 보듯 손님의 삶을 지켜봤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쉬는 날이 되거나, 가게 문을 닫고 난 뒤에는 항상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었다.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걸어 다녔다.


'의미 없이 계속 걷고 또 걷다 보면 갑갑한 마음도 사라지지 않을까?'


바늘구멍 같이 작았던 허한 마음은 어느새 주먹이 들락날락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조금씩 무기력해졌고, 사는 의미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걸었다. 우울한 생각만 하다 보면 이대로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가 벽에 붙어 있던 포스터를 발견하고는 우뚝 멈춰 섰다.


내 눈에 띈 문장은 [Meet up], 목적은 [영어 공부 + 만남]에 대해 쓰여 있었다. 영어도 맨날 쓰는 것만 쓰고 있고, 아는 사람도 없는 상태였기에 가보기로 마음먹고, 포스터를 사진 찍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용감하게 밋업 장소로 들어갔다. 꽤 자리가 넓은 카페였는데 이미 삼삼오오 짝을 이뤄 대화 중이었다.


'아.. 잘못 왔네. 돌아가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찾아왔던 용기를 뒤로하고 황급히 카페를 빠져나가려 하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말을 걸었다.


"Hi there. @#$@#$@#$"


'뭐라는 거야?'


정신을 차렸을 땐 테이블에 앉아 멀뚱히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엔 일본인들만 3명 정도 앉아 있었다. 다 같이 영어를 잘 못하는 동양인으로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익숙한 외형 탓에 긴장이 살짝 풀어졌다. 일단 다 같이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 덕에 우리는 부쩍 마음을 놓았다. (아니.. 나만 그렇게 생각했을까?)


이런 어색한 자리가 늘 그렇듯 일단 각자의 소개시간이 시작되었다.


'음.. 저 형은 음악 한다고 멋지네.'

'응?? 치과의사...? 근데 왜 여기에 와 있지..'


그리고 치과의사라고 소개한 동갑내기 친구의 옆자리에 앉은 여자는 여자친구라고 소개했다.


'뭐야 지금. 기만하는거얏?! 나도 여자친구 있다고‼️'


당시 여자친구(현 아내)는 애석하게도 한국에서 날 저주하며 흑화 되어가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주변 친구들이 남친 군대 간 것도 아닌데 지금 뭐 하고 사는 거냐며, 날 버리고 소개팅 받으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었다고 한다.


다음 일본인의 소개가 이어졌다.


"음.. 난 후쿠시마에서 왔어. 알지? 원자력 사고 났던 도시."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난 가족을 전부 잃었어. 결혼한 아내도.. 삶의 의미를 한 순간에 잃어버린 거야. 캐나다로 오게 된 건 있는 돈 다 쓰고 마지막에 죽으려고 왔어."


나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았던 일본인 형의 잔혹한 과거사와 담담한 심경 고백은 계속 이어졌다. 차분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 때문에 오히려 그의 상황이 더 절절하게 다가왔었다.


"여기서 일단 날마다 뛰었어. 나 빼고 모두가 행복해 보이더라고? 그렇게 날마다 뛰면서 부러워하고 또 부러워했어. 그리고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에 대해 생각해 봤어. 내가 얻은 결론은.."


그는 덤덤히 말했다.


"살아내자. 후회해 본들 이미 생겨버린 일이잖아.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어. 평생 처음 떠나온 해외여행, 아무도 날 알지 못하는 이곳이라면.. 어쩌면 새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그는 바리스타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며 캐나다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넌 뭐 해? 말 좀 해봐 코리안가이."


잠시 그의 말을 곱씹어 보려 했는데 바로 내 차례가 되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시선에 부끄러움과 긴장이 동시에 느껴졌다.


"난 프로그래머였고 지금은 삼촌 가게에서 일하는 중이야. 저기 시내에 위치한 곳인데 나중에 방문해. 내가 서비스 줄게."


지금도 그렇지만 저때도 난 입버릇처럼 [프로그래머]였음을 강조했다. 단순히 현재 일하는 것과 행동만 말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알 수 없는 자격지심 때문에 현재 하지 않는 일을 끌어다 이야기를 해버리고는 괜히 또 후회했다. 그렇게 소개를 끝으로 밋업은 끝났다.


"술 마실까? 편하게 대화하는데 술이 최고야."


기타리스트라는 형의 제안에 마음 맞는 사람끼리 장소를 옮겼다. 외국에 나가면 일본인과 한국인이 금세 친해진다는 걸 몸소 느끼는 순간이었다.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잠자리는 거실이었고, 삼촌과 함께 바닥에 이불을 깔고 그 위에서 생활했다. 삼촌은 잠이 안 오는지 자리만 펴놓고는 나간 상태였다. 아무래도 장사 걱정 때문이겠지.


씻고 자리에 눕자 문득 아까의 만남 자리에 있던 바리스타 형이 떠올랐다.


'만약 나였으면..'


그렇게 생각하자 처지에 불만이 가득한 나를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조금은 기뻤다. 적적할 때 만나서 얘기할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기쁜 일이니까.


'나도 살아내자. 최대한 후회를 남기지 말고 캐나다에서의 삶을 살아보자.'


우연히 나간 밋업을 통해 다시금 살아갈 원동력을 조금은 얻었던 거 같다.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은지 10년 이상 훌쩍 넘어버렸는데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여전히 어제의 일처럼 그때의 모습이 떠오르건만, 시간의 속도는 어찌 이리 빠른 것인지. 그래도 지금껏 잘 살고 있으니 그거면 된 거다. 멀리서나마 연이 닿았던 이들의 삶이 무탈하기를 괜스레 빌어본다.


[이미치 출처 - https://www.fnnews.com/news/20230412142159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