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스카툰, 나의 노스탤지어

by 고성프리맨

'-35도, 이게 정녕 실존하는 날씨란 말인가?'


피부가 약한 사람은 바깥 활동을 하다 보면 까맣게 동상 초기 증상을 보이기도 하는 날씨.

추워도 너무 춥다.


그렇다고 바깥 활동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미처 두꺼운 바지는 준비하지 못해서 그나마 기모가 들어간 청바지를 입었다.

패딩은 두 개를 껴입는다. 전부 다 모자가 달린 패딩인데, 따로 모자를 챙겨 쓰는 대신 패딩 모자를 두 개 쓰고 꽉 동여매면 모자를 쓴 것과 동일한 보온효과가 생긴다.


'외출 준비를 이렇게나 해야 하다니.'


[새스카툰]이라는 생소한 지역에 살고 있는 이 순간도 실감이 나질 않지만, 정말로 내게 주어진 현실이 맞다.

선뜻 내키지 않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바깥으로 나갔다.


"더럽게 추워!"


실내의 후끈했던 열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바깥의 찬 공기를 들이마시자 온몸의 장기가 얼어붙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목도리를 챙겼다. 얼굴 노출을 하고 돌아다니다간 큰일 날 거 같아서다.


결국 나름의 [완전 무장]을 하고서야 겨우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다.




오늘도 겨우, 지겨운 ESL 수업이 끝났다. 학비를 생각하면 허투루 보낼 수 없겠지만, 처음의 결심과 달리 너무 지겹다. 처음에는 영어로만 진행하는 수업이 걱정되었는데, 갈수록 Writing이 사람을 잡는다.


국어 문법도 잘 모르는 나로선, 영문법은 특히나 어려웠다. 게다가 어휘력도 부족하니 Essay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계속해서 바꿔 쓸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 들어서 영어 공부를 할 때 중요한 점 중 하나는 [모국어] 실력이 좋을수록 유리하다는 것. 그동안 국어와 영어의 상관관계가 크게 없을 거라 여겼던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느끼게 한 순간이다.


생각보다 Speaking은 어렵지 않다. 일단 수업에 모인 동료들 자체가 고만고만한 점수를 받은 친구들이라, 내가 버벅거리면 상대방도 버벅거리는 도토리 키재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꼴을 선생님이 가만히 지켜보진 않을 테니 중간에 개입해서 매서운 눈초리로 지켜보곤 했다.


"브랜든 이리 와봐라. (선생님은 캐나다인이라 전부 영어를 썼지만 편의상 한국말로 대체하겠습니다.)"

"네? 왜죠?"

"너 지금 짝 없지?"

"아니요 있는데요? (안돼. 없어도 강제로 만들어야 해. 이러다 쌤이랑 독대라도 하게 되면 그게 곧 지옥이야.)"

"아니야. 없을 거야. 이리 와. 나랑 대화해."

"그런 Canadian의 친절은 필요 없습니다만 ^^"

"입 닫고 좋은 말 할 때 오렴 ^^ 좋은 점수 안 받고 싶니?"


이상하게 캐나다인 쌤이 자꾸 한국인 청년인 내게 집착해?


한국인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레벨 테스트 때 개판(이라 쓰고 본 실력이라 읽으면 됨)으로 치른 덕에, 나만 저렙 클래스에 떨어져 버렸다.


중국인, 중동인(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통칭), 라티노(멕시코, 칠레, 포르투갈 통칭)의 비율이 높고, 나 혼자 한국인이었던 게 선생님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기라도 한 것일까?

자꾸 틈만 나면 내게 과잉 친절을 베풀며 1:1 과외를 시키려는 게 아닌가?

융통성이라곤 1도 없는 쌤은 말 한마디, 단어 하나를 허투루 넘길 생각이 애초부터 없는 양반이셨다.


그래도 그 덕에 저렙클래스에서 내 실력은 나름 상위권에 위치할 수 있었다. 그래봤자 저렙이지만.


나중에 이별해야 할 때 쌤이랑 어색하게 포옹을 나눴었는데, 그때 내게 말을 건넸다.


"계속 ESL 다닐 생각이니?"

"아니요. 마음 같아선 다음 레벨로 올라가 대학교 입학까지 해보고 싶긴 한데요. 전 나이도 있고, 돈도 떨어져 가서 돈 벌어야 해요."

"그래? 아쉽네. 난 네가 여기서 더 적응하고 다녔으면 했는데. 행운을 빌게. 넌 어디 가서 든 잘할 거야. 내 시련을 이겨냈잖니?"

"네? 제게 시련을 주신 거였어요?"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 녀석아. 어디서든 잘 지내거라 브랜든아."

"고마웠어요. 쌤도 많이 늙지 말고 건강 잘 챙기세요."


물론 실제 대화는 이처럼 물 흐르듯 흘러가진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부러웠다.

특히 중국인 애들하고 사우디 아라비아 영양사 여성의 삶이 부러웠다.


일단 중국인 애들은 (당시 30이었던 나와도 거의 띠동갑 차이가 났었음) 집이 [부자]였다. 새스카툰 대학교 졸업장을 딸 동안 돈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부러웠다.


사우디 여성은 나라에서 학비 지원을 해준다 했다. 돈도 주고 집도 대주고 경비까지 전부. 그런데도 많은 수의 국민들이 굳이 고생스럽게 공부하러 가지 않는다던가. 나로서는 국가가 그런 혜택을 준다면 무조건 이용할 거 같은데, 상황과 처지가 다르니 이해는 잘 가지 않았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 거였다.


여하튼 길지 않은 새스카툰에서의 ESL 과정도 끝이 났다.


이제는 곧 밴쿠버로 떠나야 하는데, 그곳에서는 치열한 삶의 현장 만이 존재할 테지.


불확실함의 연속.

불안정한 미래.


'모아둔 돈도 거의 다 써가고, 믿을 곳이라곤 삼촌 가게 밖에 없구나. 그래도 난 나름 행복한 거야. 삼촌 가게에라도 취업할 수 있는 게 어디야?'


계속해서 새스카툰에 머무르고 싶었지만, 떠나야 하는 입장이기에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고 달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 중에 [지훈앤수정]이라는 채널이 있는데, 현재 새스카툰에 거주 중이다.

영상으로 접하는 그곳은 여전히 영하 30도 이하의 더럽게 추운 날씨가 진행 중인 상태였다.


https://youtu.be/XOfdpqSyq3A?si=KNc3WEzdyoAKa1fY

새스카툰에서의 삶


나와는 무관한 이들의 삶에서 문득 과거의 내가 보였다.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여하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있었나 보다.


'무엇이 이토록 아쉬운 걸까?'


이미 답은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의 내가 그리운 게 분명하다. 조금이라도 열정적이고 꿈이 있던 그 시절. 비록 현실은 새스카툰의 추위이상으로 추웠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게 분명하다. 그래도 돌아가고 싶진 않다. 아쉬움은 아쉬움으로서 남겨졌을 때 가치가 존재하는 법이니까.


대리만족으로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을 보면서 '그땐 그랬지.'라며 위안이나 삼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