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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나쁜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쁘다의 의미는 사회적인 금기에 반하는 상상에 가깝다.
무엇이 나를 나쁜 상상의 길로 이끄는가?
그리고 그 상상을 통해 어찌하여 나는 쾌감을 느끼는가?
내 안에 내재된 잠재적 성향은 위험할까?
이 모든 일이 상상 내에서만 그친다면 괜찮은 거 아닐까?
배덕감(背徳感)
도덕이나 사회적 규약을 어겼을 때 느끼는 감정을 의미한다. 죄책감과 같은 후회나 반성의 감정과는 달리, 일탈에서 오는 쾌감과 유사한 면을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껄끄러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순간을 요약해 줄 마법의 단어를 찾았다.
한때는 내가 믿던 종교의 목사님이나 친한 친구나 선배 등에게 어떻게든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려 노력했었다. 어째서 과거의 난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동의를 얻어야만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던 것인가? 그들의 고역스러워하는 표정을 보면서도 애써 무시하고 내 할 말을 해야 할 만큼 큰 문제였던가?
지나친 망상은 무릇 나와 내 이웃을 힘겹게 만드는 지름길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것도 40대에 가까워서야 겨우 알게 된 사실이니, 나란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고 또한 어리석었단 말인가. 결국 사회적 가면을 여럿 만들어 상황에 맞게 꺼내 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리라. 하나 어렵사리 완성된 나의 여러 페르소나 또한 이제는 무용하게 되었다. 쓰임새가 사라진 가면은 먼지만 쌓일 뿐인 것이다.
여하튼 배덕감에 대한 내용을 주로 써보려고 매거진을 만들어봤다. 얼마나 잘 꾸려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적인 내용과 섞이지 않았으면 했다. 이 공간에 어쩌면 가장 프라이빗하면서도 공개적인 고해성사에 가까운 내용을 담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서두는 이렇게 뭔가 있을 것처럼 썼지만 사실 별 볼일 없을 수도 있다. 뭔가가 있을 것처럼 부풀려놓고 모객 후엔 "사실 별 거 없는 어그로였네요 하. 하."라며 용두사미 엔딩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주제를 구분지어서 그에 걸맞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다 보면 새로운 느낌의 글이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매번 비슷한 형태로 교차하고 중복되는 주제를 벗어난 느낌이 나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배덕감 사례 하나를 써본다. 너무 어둡고 음침하게만 흘러가지 않기를.
한문철 씨는 한문철 TV로 유명한 유튜버 겸 변호사이다. 그의 채널을 구독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자동차와 관련된 사건 사고 영상이 등장할 때면 단골처럼 그의 목소리가 입혀져 있다.
차를 운전하는 입장에서 많이 자극적인 사고의 순간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이 심하게 돼버리곤 하는데 어떤 날에는 "만약 내가 저런 사고를 낸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란 생각이 들며 머리가 쭈뼛 설 때가 있다.
도덕적인 기준에서라면 인도주의적인 입장을 취해야 함이 분명할 텐데, 어째서인지 순간적으로 안 좋은 상상을 하기도 한다.
'차라리 경미하게 사고 낼 거면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렸어야 해.'라거나
'왜 저렇게 당하고 있어? 같이 보복하라고!'라는 생각도 들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안전하면 되는 거 아니야?'와 같이 생각하기도 한다.
- 저기.. 잠깐만요. 이거 혹시 장르가 범죄나 싸패적인 성향으로 흐르는 그런 내용을 다루려는 거예요? 그런 글이라면 지금 바로 하차할게요.
아차차.. 배덕감에 대해 나도 모르게 범죄적인 느낌을 생각했나 보다. 처음 쓰려는 의도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사회적인 일탈에서 오는 상상된 쾌감을 다뤄보려던 거였는데. 생각해 보면 범죄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면 애초에 사회적 일탈이 성립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처음부터 주제 선정이 잘못된 거 같은데.
처음 주제 선정할 때만 해도 '꽤 괜찮게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쓰다 보니 자신감이 반감되기 시작했다. 차라리 소설이라면 허용될 수도 있을 법한데, 굳이 에세이 형태의 글로 쓰자니 마치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신경 쓰이고.
"뭘 걱정하는데? 난 오빠만큼 이상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그건 당신이 세상을 좁게 봐서 그런 거지. 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고.
막상 쓰면서 깨달았는데, 배덕감으로 글을 쓰다간 지금이 시작이자 끝이 될 게 분명해. 생각보다 전개가 잘 되질 않잖아. 역시 상상과 직접 쓰는 과정과의 간극은 상상초월이라고.
의미 없이 매거진 주제 하나를 따 놓는 게 무슨 소용 있겠냐만은, 그래도 기왕 칼을 뽑았으니 잡초라도 잘라봐야겠다. 혹시 또 어느 날 인가엔 번뜩이는 생각과 함께 퇴폐하고 타락적인 배덕감에 관한 내용을 너무 불편하지 않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그저 가능성의 한 부분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의미로 흔적을 남겨 놓도록 하자.
그리하여 딱히 주제와는 큰 관련 없는 서론이 탄생하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