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걸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통제 불능의 근육을 가리켜 [불수의근(不隨意筋)]이라 칭한다. 예시를 들자면 [심장]이 이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내재된 욕망 또는 꿈도 불수의근과 비슷한 종류의 무언가가 아닐까 싶었다.
가끔 타인을 보며 혀를 끌끌 찰 때가 있다.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리도 욕심을 내는지.."
"이룰 거 다 이뤄놓고 어이없는 선택이라니."
그 사람의 상황이 되어보지 않았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을 일이지 않겠나. 상식과 이성의 범주를 벗어나는 상황. 누구보다 본인이 원치 않았을지도 모를 상황. 이를 가리켜 불수의몽(夢)으로 칭해본다.
아이를 지켜보다 보면 특히 잊어버렸던 과거 생각이 많이 난다. 특히 하고 싶은 일이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설하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데.
"아빠~ 나 달리기 선수될래요. 1등 하면 군대 안 갈 수 있는 거 맞죠?"
'벌써부터 군대를 피하고 싶어 한다고? 달리기로 세계의 벽을 넘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물론 아시아의 벽도 어렵고.'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누구에게나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법이니까. 특히 아이 시절에 꾸는 꿈마저 제약을 둔다면 너무나도 슬픈 일 아닌가. 내가 별 반응이 없자 아이는 다시 말을 바꿨다.
"아빠~ 저 파쿠르 선수 될래요. 파쿠르 챔피언 되면 군대 안 가는 거 맞죠?"
대체 군대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들었길래 모든 결론이 동일하게 정해지는가. 옆에서 형이 한마디를 거뒀다.
"야! 파쿠르는 정식 종목 아니라서 챔피언 된다고 군대 안 가는 거 아니야."
"왜! 챔피언 되면 안 가지!"
형의 직언에 단단히 화가 난 동생은 무논리 공격을 시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나 또한 이유 없이 꿨던 어린 시절의 꿈이 있었음이 떠올랐다.
'난 뭐가 되고 싶었더라..?'
어렴풋이 떠오른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고고학자]라고 썼던 게 생각났다. 아마도 당시 TV에서 봤던 [레이더스] 속 존스 박사가 멋있게 보인 탓일 게다.
여하튼 시간이 흘러 그때의 꿈과는 확연히 먼 존재가 되었다.
'아니지. 아니야. 왜 꼭 멀어졌다고 생각하지?'
그렇다. 소설을 쓸 때가 있으니 상상 속에서 고고학자가 되어볼 수도 있으렷다? 그렇다면 방구석 고고학자 정도는 될 수 있을지도.
- 잡소리 그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망상을 즐겨한다는 사실은 그대로구나. 하지만 이 또한 나만의 불수의몽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최근 또 하나의 불수의몽이 스멀스멀 속에서 올라오는 중이다. 최근이라고 하기엔 벌써 몇 년째 망상으로만 하는 거긴 한데, 그것은 바로 [유튜바 꿈나무!] 되시겠다.
이유는 단순하다. 직장 다닐 때부터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다.
"휴.. 퇴사하면 뭐 해 먹고살지?"
"그러니까. 장사 잘못했다간 싹 다 말아먹기 좋지."
(대략 깊은 한숨..)
"유튜바나 해볼까?"
"오호.. 좋지!"
대화와 상황을 축약시켰지만, 요약하자면 "대충 유튜버나 하면서 돈이나 적당히 벌어볼까나?" 하는 망상이다. 제대로 해본 적도 없으면서 남의 노력은 어찌나 쉽게 보이던지.
추후 퇴사 후 백수로 전향하면서 살짝 유튜버를 찍먹해 보긴 했다. 결과는 구독자 12명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무시하지 마시길. 그래도 12명(그중에 절반 정도는 지인과 셀프 구독이니..)이 어디란 말인가. 그렇게 유튜바 꿈나무의 꿈은 좌절됐다. 꾸준히 하면 좋았겠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무한 쉼에 돌입했다.
그렇게 시작하고 접고를 반복했음에도 여전히 내 머릿속엔 [유튜버]에 대한 꿈이 남아 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시작하겠노라며 특히 아내에게 떵떵거렸다.
"나불댈 시간에 하시던가. 하지는 않으면서 말만 해 맨날."
"뭐얏? 날 지금 긁는 거야? 내가 유튜버 실패한 건 순전히 장비가 없어서였다고‼"
'그렇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장비가 부족해서였던 거구나. 그렇다면 해결책은 쉽지. 장비를 사면 되잖앙? 이거 완전 럭키- (그만..)'
그래서 지금 장비를 알아보는 중이다. 아내는 모르겠지만 몰래 생긴 비자금이 있기도 하고 아주 상황이 좋다. 이 글을 읽는다면 비자금에 대해 알게 되겠지만 두려울 건 없다. 왜냐? 이미 다 탕진해 버렸을 테니. 원래 인생이 그렇다.
[용서가 허락보다 쉬운 법]
결국 오늘의 내용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질러대고 마는 지름신에 관한 이야기였음을 밝힌다. 혹시라도 한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용서도.. 허락도.. 쉽진 않았구나?!'라고 생각해 주시기를, 부디 나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해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