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걸음
오랜만의 하남 방문.
약 2-3개월 만인가?
큰 아이의 동급생이던 친구가 하남으로 이사를 가버린지도 벌써 몇 달이 흘렀다.
"아빠. 시우(가명) 언제 만날 수 있어요?"
"시우 형아 보러 가고 싶어요..."
고성에서 하남까진 약 180km 정도가 소요되니 2시간 내외로 운전을 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그렇지만 특별한 일 없이 하남까지 가는 것도 애매한 관계로 아이들이 보챌 때마다 둘러댔다.
그러다 마침내 건수가 하나 생겼다.
'럭키! 하남에서 체험단이 하나 당첨됐네?'
체험단을 핑계 삼아 아이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시우를 만나러 갈 수 있게 됐다.
"얘들아. 가자 하남으로! 스타필드로!"
"와앗!"
"너무 좋아잇!"
오랜만의 만남이 기대되는지 둘째는 떠나기 며칠 전부터 계속 물어보기까지 했다.
"며칠 남았어요?"
"몇 밤 자면 돼요?"
"아... 떨린다."
"어색하려나?"
"아 무슨 선물 주지?"
정작 동급생이었던 첫째보다 둘째가 더 성화다.
D-DAY.
오전 8시 20분 출발 준비 완료.
어제는 강릉, 오늘은 하남. 운전복이 터졌구나.
애들에게 전할 말은 아니지만...
'아빠가 백수라 평일에 놀러도 갈 수 있고 좋지?'
그러리라 믿어본다.
평일답게 고속도로는 뻥뻥 뚫렸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시각에 맞춰 당도할 수 있으리라.
"장 볼 것도 미리 다 체크해 놨어."
아내는 아이들과 달리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장 볼 생각에 신이 나 있었다.
평소 구하기 힘들거나 쟁여놀 필요가 있는 품목을 사야 했기 때문이리라.
"베이킹도 해야 해서 버터를 좀 많이 사놔야 한다고."
나가서 빵 사 먹는 걸 웬만해선 허용하지 않을 생각인지, 이제는 직접 빵을 구워 주려한다.
'알아서 하시게나. 맛있게만 만들어 주오.'
시우를 만나기 전, 체험단 활동을 먼저 해야 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어, 어디다 주차하지?"
인구 밀도 낮은 지방에서만 지낸 탓에 주차에 취약한 내게 위기가 닥쳤다.
평소 평행 주차를 멀리하고 후방카메라에만 의존한 효과는 확실했다.
한참을 돌았다. 돌았던 자리를 다시 돌고, 또 돌고, 한 번 더.
"언제까지 뺑뺑 돌 거예요... 속 메스껍단 말이에요."
"아 빨리 내리고 싶은데!"
방금 전까지 쿨쿨 잘만 자던 녀석들이 어느 틈엔가 깨서는 아빠에게 극딜을 넣고 있다.
아니 내가 주차를 안 하고 싶어서 이러겠냐고?!
최대한 집중하며 빈 공간 하나만 나타나기를 빌고 또 빌었다.
마침내 공간 하나를 발견했다‼️
보조석에서 가게 운영 시간을 확인한 아내의 답이 들렸다.
"걱정 없어! 오후 4시에 오픈이네. 저기다 대자고!"
살짝 눈치는 보였으나 달리 선택할 수 없었으니(물론 유료주차장이 있긴 했지만... 30분에 4,000원을 내고 싶지 않았다. 다음엔 그냥 유료 주차장 써야겠다.) 이렇게 댈 수밖에. 혹시라도 연락이 오면 바로 빼주도록 하자.
성공적으로 체험단을 끝마쳤다.
"아빠! 진짜로 시우 형아 보러 가는 거 맞죠?"
"응 그럼. 그러려고 왔잖아 :)"
"빨리, 빨리 가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그렇게 보고 싶었니. 전학 가기 전엔 잘해주지도 않았으면서. 너도 참.'
.
.
.
스타필드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보다 다소 일찍 도착해 여유가 생겼다.
"장부터 보자!"
아내의 호령에 발맞춰 우리는 그녀를 따라 트레이더스로 진입했다. 주말에 왔던 때와 달리 사람도 적고 너무나 여유로웠다.
'이 맛에 백수 하지. 내가 돈이 없지 시간이 없나?!'
고성에서는 속초 이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게 낙이었는데, 확실히 널찍한 창고형 몰이 좋긴 좋구나.
오랜만에 마주한 산해진미 앞에서 나는 그만 정신을 잃어버릴 뻔했다.
"근처에 살았으면 맨날 왔을 텐데 아쉽다."
"거덜낼 일 있어?"
열심히 장을 보다 보니 어느새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자동차에 짐을 싣고, 아내와 아이는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좋겠다? 지금부터 자유시간이네? 뭐 할 거니?"
"흐음... 함께 있는 게 행복인데 떨어져 있는 건 내게 슬픔이야."
"그런데 왜 입꼬리가 씰룩거림?"
"경련이랄까? 너무 슬프면 말도 제대로 안 나오고 몸도 조절이 잘 안 되는 거란다."
"혼자 즐거운 시간 보내라구!"
아이와 아내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인영이 사라질 즈음 비로소 안도했다.
'드디어 내 세상이다! 그런데 뭐 하지?'
사실 뭘 하지 않더라도 즐겁다. 카페에 앉아 음료 한잔 시키고 노트북 두들기는 이맛을 아시려나?
비록 대화의 대상이 ChatGPT나 화면에 깜빡이는 프롬프트가 전부이지만 이거면 충분하다.
그리고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도 놀러 나온 김에 감상을 섞어 글 쓰니까 조금 편하네?
몇 시간 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잠시나마 누리는 도시라이프는 참으로 꿀맛이다.
돌아가기 전에 좀 더 누릴 수 있을만한 걸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