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is 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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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오늘의 제목은 아주 유우명한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대사로 정했다.

갑자기 왕좌의 게임을 거론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바로,


"이제야 시즌1을 보고 있거든요 헤헤."


역시 보는 걸 보고 있다고 티 내고 싶어서 가져다 썼다.

보통은 물욕을 주로 전시하거나 과시하고 싶어 할 텐데 백수다 보니 괜한 콘텐츠 부심을 부려봤달까.


-볼 사람들은 이미 예전에 다 봤을 텐데...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애초에 나란 사람이 성격이 괴팍해 남들이 환호하고 극찬할 땐 일부러 피했다가, 유행이 지나고 나서야 보게 되는 편이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최근 쿠팡플레이에 HBO 콘텐츠들이 잔뜩 올라와서 보는 거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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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왕좌의 게임 정도되는 대형 드라마는 굳이 내가 언급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정보가 널렸다.

그동안 안 보고 애써 피한 이유는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편견이 존재했기 때문인데.


"어디 내가 각 잡고 만들었는데 네가 안 보고 배겨?" 같은 느낌을 혼자서만 받아서였다.

마찬가지 이유로 해리포터와 같은 작품도 피하긴 했다.


-많이 꼬였네요...


"예..."


그래서 엉킨 실타래를 푸는 마음으로 이제라도 편견을 지우고 보는 중이다.

아무래도 세상에 이유 없이 알려지는 작품은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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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의 5화까지 보는 동안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이 하나 있다.


'조금 지루하지 않아?'


빨리빨리 민족의 구성원 중 한명답게 전개에 공을 들이는 과정을 보는 게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특히 요즘 우리나라 콘텐츠들은 전개도 엄청나게 빠른 편이니 체감상 더 느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7화 정도 보고 나니 (여전히 빌드업 중이다) 잊고 살던 감각 혹은 감정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맞아. 예전엔 이런 식으로 대하드라마도 보고, 장편 소설도 읽고 그랬지.'


더 크고 강한 몰입을 위해 잊고 지냈던 오래된 방식이었다.


'이 느낌이 그리웠다. 그래도... 난 빠른 전개가 더 좋긴 해.'


나도 모르는 새 도파민 중독에 빠져서인지 (그런데 도파민의 정확한 역할이 뭐람?) 긴 호흡이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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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을 다 보지 않았지만 유독 많이 쓰이는 대사가 하나 있다.


"Winter is coming!"


'겨울이 오는데 어쩌라고?'가 아니라, 다가올 불안에 대해 대비하자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어떻게요? 왕좌의 게임 보고 나면 대비책을 알게 되나요?


"글쎄요. 아직 시즌1도 다 못 봐서 모르겠네요."


물론 다 보고 나서도 대비책을 알게 되진 못하겠지.

그래도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트리거 역할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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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Winter는 어떤 형태일까.


"사실 전 겨울을 무척 좋아합니다."


-......


사전적 의미 말고.


비정형적인 불안감이다.

이전에도 없었고 예측이 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대비책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랄까.


'미래라는 게 단 한 번이라도 내 예측대로 흘러간 적이 있던가.'


나는 "Yes."라고 못하겠다.

대놓고 사기꾼(성공하면 선지자?)이 될 재목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모든 정의가 결과에 따라 정해진다지만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일 따름이다.


왕좌의 게임은 그런 점을 잘 파고들었다.

왕좌에 오르기만 하면 지금까지의 평판 따위는 가볍게 뒤덮고,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으리라.


"사자는 양의 생각을 궁금해할 필요가 없어."


과연, 그런가.

사자보다는 양스럽다고(뭔가 어감이 좋지 않은 건 기분 탓일 겁니다. 예.) 생각하고 살아서인지 나도 할 말은 있다.


"나도 사자의 생각이 궁금하진 않은데요?"


세상이 사자의 룰대로 돌아간다 해도 별로 알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삶에 직접적인 영향이 끼쳐질 텐데요?


그렇다면 아주, 조금은 알아둘까?

일단 내 세상인양 들판을 뛰어다니다가 사냥 타깃이라도 되면 곤란하잖아.


'그래 조금은 습성을 알아두고 최대한 피해 다니자.'


그렇다.

내게 겨울은 양이 사자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거랑 본질이 같다.

살아야 한다. 살고 싶어.

일종의 생존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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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의 장점이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무수히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한다는 것.


예전 삼국지나 초한지, 토지(읽은 거 티 내고 싶어 하는 편. 아직도 안 읽어보셨어요?)와 같은 소설을 읽으며 곧잘 등장인물 중 한 명에 나를 대입해 봤었다.


아무래도 주인공 급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보통은 조연(혹은 더 낮은 배역)급의 인물이 내 삶의 방식과 통했다.


스스로를 양이라 칭하는 건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인데, 마찬가지로 사자를 만나면 나는 그 사람이 '사자로구나.'라고 인정할 따름이다.


사자가 되지 못해 슬플 것도 없고, 양이라서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역할에 대해 깨닫고 삶을 좀 더 가치 있게 살아내는 것.

아니 살아내고자 노력하는 삶.


양에게는 양의 방식대로 겨울을 나는 방법이 존재한다.


"Winter is coming."


하지만 몇 달 뒤면 이곳 고성엔 '여름'이 찾아올 예정이다.

겨울을 준비하기에 앞서 조금은 여름의 여유를 즐겨볼까 한다.

즉, 왕좌의 게임 남은 시즌 보면서 좀 더 시시덕 거려보겠다 정도로 정리하면 되려나.


이 드라마에서 나는 다시 한번 내게 어울릴만한 인물을 찾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내게 다가올 겨울을 좀 더 따스하게 나기 위한 방법(지금은 모르는 방법이겠지만)을 찾고 쓰려한다.


그러니까 나는 사자가 될 계획도 없고, 겨울이 무섭지도 않다. (아니 사실은 무섭다)


다만 양으로서 할 수 있는 준비.

가령 '튼튼한 울타리 속 무리 사이에 잘 숨어있기'라거나 '사자가 나타나면 바로 튈 준비'같은 걸 하는 중이다.


그래 "겨울?" 까짓 거 오라고 하지 뭐.

어떻게든 이겨내는 수밖에 달리 방법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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