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일정과 오후 일정 사이에 점심시간을 포함하여 2시간 정도가 뜬다.
모처럼 이천에 왔으니 임금님 쌀밥을 먹어야겠으나, 혼자라는 절호의 찬스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가벼운 식사와 고즈넉한 시간으로 몸보다는 마음의 양식을 주기로 했다.
오후 방문지 주변의 지도를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움직이다가 반가운 이름 '희원'을 찾아냈다.
한옥 카페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서 이전에 이천 방문 때 가본 적이 있던 곳이다.
유명세에 비해서 외부인으로 붐비지 않아 마음에 들었었다
앞마당과 뒷마당에 배치된 외부 테이블에 손님들이 나눠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한옥 특유의 ㄷ(디긋)자 공간이 코너를 끼고 이어져서 다른 테이블에 방해를 받지 않고 멍하니 처마와 장독대를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곳이다.
오고 가는 손님 역시 나 같은 뜨내기보다는 인근 회사에서 회사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점심 후 커피를 마시러 온 사람들이라 유명 카페의 분위기는 없다.
분위기와 더불어, 지난번 방문 때 먹었던 앙버터 크로와상이 가벼운 점심으로 좋을 듯하여 주저 없이 차를 몰았다.
늦가을, 희원
희원은 으리으리한 고택은 아니다.
그저 조금 넓은 가정집 같은 느낌의 한옥이다.
부드러운 처마의 곡선이 여유롭고
그 아래로 이어진 나무기둥과 주춧돌이 편안하다.
입구부터 건물까지 이어진 잘 가꿔진 앞마당은
각양각색의 꽃과 식물들로 가득하다.
꽃들 사이를 벌들이 분주히 오간다.
뒷마당으로 돌아서니 감나무가 있다.
주인님이 감은 별로인지
곶감을 만들 요량인지
동물애호가 이신지
붉은 감이 넉넉이 걸려있다.
문득 어린날, 친구 집에는 다 있던 감나무가 우리 집에는 없었던 것이 기억났다.
25년도 더 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
언제였던가. 신기하기만 하다.
친구 집의 감나무가 부러웠던 나는
크면 집에 감나무를 꼭 심으리라 했다.
고등학생 이후에 아파트가 아닌 다른 형태의 집에서 살아본 적도 없는 내가
25년여전에는 그랬다.
앞으로도 아파트가 아는 주거 형태에서
살아갈 일은 왠만하지 않고는 없으리라.
그런 적도 있었지 내가,
그때 그랬지 내가....
앞마당 뒷마당 한 바퀴 돌아보고는
실내 카페로 들어선다.
빵을 고르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빵 트레이들이 비고 스콘과 쿠키 몇 종류가 다이다.
오늘은 크로와상이 없냐고 물으니
오늘은 빵이 안 들어왔단다.
직접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주문받던 빵인가 보다.
어쩔 수 없이 평소 애정 하는 빵종류
스콘을 집었다
말차 스콘과 얼그레이 스콘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메리카노
닥치면 하자
음료를 받아서 온돌방으로 들어선다.
날이 따뜻해서인지 3-4팀은 외부 자리에 앉아있고
내부에는 나만 자리를 잡았다
그것도 좌식 온돌방은 온전히 내 차지가 되어서
크로와상을 못 먹어서 아쉬운 마음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다.
스콘과 커피가 깜짝 놀랄 만큼 맛있지는 않지만
신발 벗고 아빠 다리하고 처마와 항아리,
한옥 담장을 한눈에 담으며 즐기는 점심에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고 행복하다.
따뜻한 기온과 푸른 가을 하늘의 늦가을 희원도 좋지만 비오는 날도 좋지 싶다.
이렇게 또 이곳에 올 이유를 한 가지 만들어두고
퍽퍽한 스콘을 씹는다.
지인은 말한다. 퍽퍽한 스콘이 뭐가 좋으냐고
그녀는 모른다 퍽퍽함을 씹고 또 씹으면 나오는
고소함과 달콤함을.
혼자서 온돌방을 독차지 하기를 30여
한 무리의 엄마 브런치 모임이 대각선 테이블에 왔다.
혼자 있을 때처럼 멍하니 있으면 정신 나간 여자라고 할까 봐 주섬주섬 서류를 꺼내
읽고 정리한다.
의도치 않게 그녀들의 이야기가 귓속에 들어온다.
한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항상 말해. 엄마는 닥치면 할 테니 미리 걱정하며 계획하느라 스트레스받지 않겠노라고"
그분의 한마디에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일어나더라도 예상했던 대로 일지 아닐지
예상한 대로라고 해도
계획하거나 대비한 대로 일지 아닐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들로 조급해하며 마음 졸이느라 낭비한 수많은 '지금'을 가진 나라서 안다.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스트레스로 노화만 가속한다는 것을
보던 서류를 정리하고
이름 모를 옆 테이블에서 들려온 한마
'닥치면 하면 된다'
라는 말을 다이어리 오늘의 키워드에 적어 넣
희원을 나선다.
담주로 다가온 중요 보고서도 닥치면 어찌 될 것이다. 정신없이 바쁜 11월도 언젠가는 끝나리라. 지가 별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