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상여는 넥슨캐시 10만 원

게임회사의 복지

by 손세계

한국에서

많은 회사를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복지 수준이 (IT 또는 게임회사 한정) 대체적으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복지를 모두 누릴 수 있는가는 더 깊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그러나 어쨌든,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에는 잦은 야근이나 연차를 눈치 보며 써야 하는 것 외에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패키지 자체는 꽤 만족스러웠던 기억이다.


우리 회사는 약 500명 정도의 규모였고, 강남의 한 빌딩에 위치해 있었다. 우선 먼저 맘에 들었던 것은 지하철역 입구에서 도보 5분이라는 위치,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채광 좋은 뷰였다. 그 밖에도 지금 생각나는 복지항목들을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다.


아침식사 - 매일 아침 공용 휴게실에 김밥이나 과일 도시락 등이 준비되어 있어서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네스프레소 캡슐 아메리카노와 먹으면 아침 혈당스파이크 충전 완료.

식대 - 월 1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물론 강남 물가에 비하면 턱도 없는 금액이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연말 건강검진 - 직계가족도 포함이었는데, 나는 부모님께 필요한 검진을 같이 해 드렸다. 효도.

실손보험 - 잦은 야근에 대한 보상이랄까? 회사 점심시간에 근처 내과에서 비타민 수액 한 봉지 맞고 실손 청구하는 용도로 많이 썼다. 더욱 몸을 갈아 열일을 하라는 회사의 큰 뜻.

자기 계발용 복리후생 포인트 - 여러 번 시도했지만 끝내 마스터하지 못한 나의 수많은 중국어 클래스... 결국 헬스장 비용을 청구하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끝끝내 꾸준히 가지 못했는데...

안마의자 - 근무 시간에 쓰기에는 눈치 보여 야근을 할 때나 가끔 주말에 업무가 생겨 출근해야 했을 때 썼다. 에피소드로 본사에서 출장 오신 높은 분이 전날 있었던 한국 스타일의 회식에 그만 녹초가 되었고, 다음날 안마의자에서 4시간 숙면을 취하는 바람에 아무도 그분을 깨우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휴게실 입구에서 서성이기만 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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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나열한 복지 항목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다른 대형 게임회사 (넥슨, 카카오, NC소프트 등)에 비교하면 우리 회사는 구내식당도 없고, 어린이집이나 헬스장도 없어서 아쉬움도 있었다. 더군다나 그 당시에는 판교의 대형 게임회사나 IT회사들이 하루 세끼를 무료로 제공한다거나, 카페테리아의 메뉴가 호텔급이라는 이야기가 화제가 되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게임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내가 궁금했던 것은 "게임 회사에 들어가면 공짜로 게임을 살 수 있을까?"였는데, 답은 엄밀히 말하면 "아니요"였다. 그래도 명색이 글로벌 게임회사라 어느 정도의 혜택은 있었는데, 1년에 쓸 수 있는 크레디트를 주고 그 크레딧 안에서 사내 온라인 스토어에 올라와 있는 우리 회사의 게임 타이틀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보통 우리 회사의 AAA 타이틀은 한화로 10만 원 정도 했기 때문에 이게 꽤 쏠쏠했다. 게다가 친구나 가족에게 그 크레딧으로 산 게임을 선물할 수도 있어서, 게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생색내는 용도로 딱이었다.


20231229_658e832d11d64.jpg 주의: 친구가 없으면 크레딧이 처치곤란


내가 "게임 회사 다닙니다"라고 했을 때 돌아오는 가장 흔한 즉각적인 반응은 "그럼 나 게임쿠폰 좀"이다. 생각해 보면 게임은 우리 회사에서 생산하는 프로덕트 (=제품) 이기 때문에 그 게임에서 쓸 수 있는 재화가 서버에 가득 쌓여 있고, 직원들은 마음대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라면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퇴근할 때 마음대로 창고에 있는 라면 한 박스씩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나 역시도 게임 회사에 들어가면 현질을 하지 않고도 각종 아이템이 공짜로 주어져서 만렙을 금방 찍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나이브한 착각일 뿐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는 개발사였고 우리 게임을 퍼블리싱하고 운영하는 회사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운영사의 직원들이 쿠폰이나 재화를 무한정 누렸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게임의 경제가 무너지고, 유저가 이탈하고,... (대충 지루한 이야기)


우리는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었지만 한국의 정서에 맞추어 명절 떡값도 지급되었는데, 어느 해인가 드디어 넥슨 캐시로 10만 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그 캐시를 모두 랜덤 가챠에 탕진을 하면서, 왜 우리 게임은 이렇게 확률이 극악인가, 그렇다면 상위 랭크의 유저들은 도대체 얼마를 여기에 썼단 말인가, 그들은 떡값으로 받은 것도 아닐 텐데, 하고 탄식했다.




북미로 넘어와서

표면적으로 보면 회사 복지의 수준은 오히려 낮아졌을 것이다. 매년 부모님께 자랑스럽게 제공해 드릴 수 있었던 건강검진도 없고, 명절 떡값은커녕 경조사비도 없다. 그러나 내가 북미 회사에서 가장 큰 "복지"라고 느끼는 부분은 업무의 강도,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와 회사의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직원들은 반려견을 데리고 출근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곧 근무시간 중에 반려견을 산책시키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리에 앉아서 존재감을 보여야만 "일"을 하는 것이라고 암묵적인 인식이 있었던 한국 회사와는 달리, 강제되는 야근이 없고, 언제나 자유롭게 연차 사용이 가능하다. 당일 메신저로 통보도 가능하다. 사유는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없으면 미팅을 조율하고, 일을 늦추고, 또 그런 공백을 감안해서 프로젝트의 일정을 짜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일을 펑크 냈다고 해서 회사가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연차를 사용해도 팀원들이 똑같이 해 줄 것을 알기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람에 대한 원망은 하지 않는다.


물론 유토피아는 아니다. 평소에 "스스로 잘 알아서"해야 하는 압박감은 당연히 존재한다. 자꾸만 자리를 비우고, 근무태만한 모습을 보여주는 직원은 아무리 너그러운 직장이라고 해도 결국 퍼포먼스 리뷰에서 낮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정말 복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3시에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 미팅을 미루는" 것이 가능하고, "애인과 밸런타인 디너 약속이 있기 때문에 오후 4시에 퇴근"해도 괜찮으며, "오전 10시에 치과에 가기 위해 반차를 쓰지 않아도 되는" 유연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 중심적인 문화이다.


canine-office-assistant-stockcake.jpg 오피스개 3년이면 코딩을 할까?


지금 내가 다니는 북미 게임 회사에서 지원하는 복지 (=benefits, 또는 perks)는 이런 것들이 있다.


입양 (adoption) 비용 지원 - 입양 전반에 드는 비용과 법률적 도움을 제공한다. 아기를 입양한 직원들에게는 출산, 육아휴가와 비슷한 기간으로 돌봄 휴가도 지원된다.

건강보험 - 이것은 북미회사라면 으레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국민건강보험이 따로 없기 때문에, 회사가 사보험을 들어준다. 여기에는 1년에 800불까지 항목 관계없이 쓸 수 있는 현금성 지원도 포함된다. 필수 생존템.

성전환 (Gender Affirmation) 의료비 지원 - 진단을 받은 당사자와 직계존속에 한하여 일부 금액을 지원해 준다.

정신과 상담 / 테라피스트 지원 - 코로나 기간 Zoom 속의 동료들 말고는 6개월 정도 아무런 사람과 대화를 하지 못했을 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이용하고 크게 도움을 받았다.

직원 주식 구매 플랜 (Employee Stock Purchase Plan (ESPP)) - Payroll에서 매번 일정 비율의 금액을 미리 공제하여 할인된 가격으로 자사주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렇게 되면 나의 실지급액이 줄어들기 때문에 세금 감면의 효과도 함께 누릴 수 있다. 우리 회사는 6개월마다 한 번씩 그동안 적립한 금액으로 구매가 이루어지는데, 적금 타는 것 같고 기분이 좋다. 우리 회사 주식을 응원하게 하는 가장 큰 동기부여 중 하나.

여행자 보험, 집 보험, 반려동물 보험 - 회사와 연계된 보험회사를 통해 할인된 견적을 받을 수 있고, 법률자문도 함께 제공해 준다.


지역의 여러 상점들과 제휴하여 제공하는 크고 작은 할인 이벤트는 너무나 많기 때문에 굳이 자세하게 적지는 않겠다. 이 밖에도 팀마다 다르겠지만 Beer&Cheer라고 하여 매주 금요일 점심 이후에는 미팅도 잡지 않고, 동료들과 사무실에서 맥주 한 캔 씩 까며 캐주얼하게 보내는 문화도 있고, 여름 3달간 매주 금요일은 "자기계발하는 날"이라며 업무 외에 여행이나 독서, 공부를 하게끔 암묵적인 주 4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무엇보다, 위에서 말했듯이 업무보다 사람을 중시한다는 것, 직원을 주어진 일만 해야 하는 부품으로 여기기보다는 그 사람의 성장과 정신적 평안을 먼저 생각해 준다는 것이 나를 숨통 트이게 한다. 지금 회사에서 몇 차례 내부 이직을 할 때에도 항상 팀 전체가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코칭해 주었다. 매니저와 함께 나의 이력서를 고치고 면접 연습을 해 본 적이 있는지? 정말 어색하지만 벅차오르는 경험이다.


나 역시도 팀원들의 안위와 건강을 늘 묻고 염려하는데, 결국은 직원들이 행복해야 좋은 퍼포먼스를 낸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를 존중해 주는 회사에는 충성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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