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해, 큰 거 온다

게임회사의 레이오프 이야기

by 손세계

코로나가 가져온 재택근무 열풍이 잠잠해질 때 쯔음, 테크 업계에 대량해고(Layoff)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22년 메타(Meta)에서 전체 인력의 13%를 해고한 것부터 시작해서 아마존에서 10,000명, 그리고 일론 머스크가 인수한 트위터에서 절반의 인력이 날아갔다. 그 당시 북미 블라인드와 링크드인에 넘치던 "나 오늘 해고당했어" 포스트를 기억한다. 게임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 역시도 실직의 문턱까지 두 번이나 갔다가 살아 돌아온 생존자로, 내가 겪고 느꼈던 레이오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첫 번째 해고


모든 직원들이 아직은 재택근무 중이었던 2023년 2월 어느 날,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슬랙에 접속했다. 스탠드업 진행 후, 나는 오후에 있을 위클리 미팅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전 11시가 넘은 시각 갑자기 팀 전체 미팅 인바이트가 날아들었다. 미팅 제목은 아마 Team Update 같은 흔하디 흔한 것이었던 것 같다. 시간은 오늘 오후 1시, 스튜디오의 Vice President와 Operation Director, HR Director가 미팅 참석자 리스트에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냥 미팅이 아닌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조금은 초조한 마음으로 점심을 먹고 시간에 맞춰 Zoom에 접속했다. 여느 때처럼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그때 VP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오늘 이렇게 급하게 미팅을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회사는 여러분의 게임을 앞으로 3개월 후 서비스 종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팀장은 이 미팅이 시작한 시간을 기점으로 직무정지 되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더 이상 업무를 지속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팅은 모두 캔슬하셔도 되고, 인사팀 담당자가 순차적으로 여러분에게 앞으로의 프로세스에 대해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그동안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방금 들은 내용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본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직원을 해고할 때 "You are fired!"라는 표현을 쓰던데, 지금은 그런 말이 없었는데? 나... 해고된 건가?


작년 5월에 론칭한 우리 게임은 출시한 당시에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지만, 모바일 게임의 생리가 그렇듯 유저들은 더 빠르고 더 재미있는 업데이트와 이벤트를 원했고, 우리는 조금씩 하락하는 유저 수와 매출 그래프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 곧 봄방학 프로모션 계획도 모두 세워놨는데. 1년 간의 이벤트 로드맵도 잡혀 있는데. 우리 앞으로 더 잘할 일만 남았는데.


VP의 말이 끝나고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Zoom 화면 속 사람들의 표정에서 착잡, 혼란, 슬픔,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고 누군가 "그럼 우리 해고된 건가요?"라는 질문을 했던 것 같다. VP는 "아직은 아니다, 내부 프로세스에 따라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질 예정이다."라고 답변했다. 아직은 아니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


그 뒤로 몇 번의 질문이 더 이어졌지만 속 시원한 대답은 없었고,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HR 담당자나 직속상사에게 연락하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미팅은 끝났다.


Zoom 화면이 하나씩 꺼졌다. 점점 사라지는 사람들의 얼굴과, 까만색 네모들. 미팅이 끝난 방 안에는 나 혼자였다. 까만 모니터에 비치던 나의 실루엣이 아직도 기억난다. 점점 밀려오는 상실감에 누군가를 붙잡고 엉엉 울고 싶었는데, 아니면 누군가 나를 붙잡고 엉엉 운다면 꼭 안아줄 준비도 되어 있었는데, 정말 아무도 없었다.


image_fx_.jpg 출처:GoogleFX


우리는 팬데믹이 막 시작될 때 만들어진 팀이었고, 게임이 론칭된 후 1년이 될 때까지도 모두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팀원이 대부분이었다. 2년이 넘는 개발기간 동안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수많은 야근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방금 있었던 한 시간 여의 미팅이 끝나자 우리를 이어주고 있던 모든 것들이 뚝 끊어져 버린 듯 차마 가늠할 수도 없는 거리감과 이질감이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이후로, 우리는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절대 만날 기회조차 없는 인연인 것이다.


슬랙에 deactivated 된 팀장의 계정을 보자 헛웃음이 났다. 오늘 아침만 해도 분명히 온라인인 것을 확인했는데. 이런 조치는 신속하고 재빠르게 처리해 버리는 회사가 조금은 섬뜩하기도 했다. 나는 팀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게임 개발팀보다는 사업개발부에 어울리는 사람이었고, 자기와 예전에 함께 일했다고 데려온 사람들은 모두 행동보다는 말이 앞서는 실속 없는 자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팀장 특유의 자신만만하고 싸가지 없는(?) 커뮤니케이션 방식 때문에 파트너사와의 관계도 이미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상황이었다. "우리 팀이 해체된 건 다 너 때문이야!"라고 직접 말할 기회라도 있었으면 내 속이 시원했을까.


우리 게임은 나름 많은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AAA 타이틀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순식간에 서비스 종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던 터라 충격은 더했다. 북미에 와서 처음으로 맞닥뜨린 실직의 절벽에서 나는 내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 어떤 곳도 안전하지 않다.




두 번째 해고


2023년의 그 일 이후, 우리 중 매우 소수는 회사 내의 다른 팀으로 재배치되는 행운(?)을 누렸다. 나는 운이 좋게도 같은 스튜디오 내의 또 다른 AAA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고, 우리는 론칭까지 2년 반이라는 시간을 앞두고 있었다. 50명 정도로 이루어진 우리 팀은 스튜디오 내에서 명망이 높은 각 부서의 디렉터들과, 일당백의 아웃풋을 내는 천재적인 팀 리더들까지 있어서 매일매일 바쁘지만 열정이 넘치는 "이상적인" 게임 개발팀이었다.


그 무렵 나는 자발적으로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재택근무를 하다간 그나마 없던 사회성마저 없어져 버릴 것 같은 위기감과 더불어, 이제 막 집 가까운 곳에 새로 오픈한 사무실의 업무환경이 꽤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내 옆자리엔 아직 대학생 티가 나는, 이제 막 우리 팀에 합류한 20대 초반의 엔지니어가 앉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같은 팀" 사람과 사무실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날도 2024년 2월의 어느 수요일이었다.


게임 디렉터로부터 미팅 인바이트가 날아왔다. 시간은 바로 오늘, 한 시간 후. 디렉터는 전체메일도 보냈다. "전원 꼭 참석할 것." 나는 그 시간에 미리 예정되어 있던 미팅을 다음 주로 옮겼다.


헤드셋을 끼고 줌에 접속했는데, 평소와 다른 참석자가 눈에 띄었다. 바로 그 VP와 Operation Director, HR Director까지. 등골이 싸했다. 이걸 데자 부라고 하던가.


VP가 말문을 열었다. "오늘 여러분에게 급하게 미팅을 요청한 이유는-" 나는 헤드셋을 내리고 옆자리 동료에게 소리쳤다.


"야, 이거 그거다."


동료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뭐? 뭐라고?라고 물었고, 나는 "씨, 우리 X 됐어."라고 말하고는 에잇, 몰라 그냥 일단 들어.라고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어진 VP의 대사는... 작년 이맘때 들었던 그것과 너무나 흡사했다.


"오늘 이 시간부로, 우리는 프로젝트를 캔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탄식, 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사람들.


"한 가지 좋은 소식은, 여러분 중 그 누구도 해고되지 않았으며, 우리는 여러분에게 새로운 팀을 찾아주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을 것입니다."


눈물이 흘러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비록 모두 음소거 상태라 서로 들을 수는 없었지만.


"HR 담당자가 여러분에게 순차적으로 다음의 프로세스를 설명해 드릴 것입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직속상사에게 연락하세요.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당장 30분 후에 예정되어 있었던 스탠드업을 취소했다. 그리고 이번 주, 다음 주, 다음 달까지 잡혀있던 모든 미팅도. 참석해야 할 미팅이 너무 많아서 내 캘린더는 언제나 테트리스 블록처럼 보였는데, 새하얗게 비워진 캘린더를 보니 기분이 너무나 생경했다.


우리는 언제나 해야 할 것이 정해진 시간보다 많았다. 거의 모두가 야근을 하고 주말에 일을 하는 사람도 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났다. 저번주 금요일 저녁, UI팀 리더가 일이 많으니 야근을 하겠다고 말하자 게임디렉터와 프로덕션 리더가 "아냐, 하지 마. 이번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 제발."이라고 했던 것이. 아마 그들에게는 이미 통보가 된 상태였을 것이다.


미팅이 끝났다. 나와 내 옆자리 동료는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웃기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한 번 겪었다고 이번엔 좀 낫네. 그날 사무실에 있었던 같은 팀의 다른 직원들도 우리 자리로 찾아왔다.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았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말했다. "다 집어치우고, 맥주나 먹으러 가자."


SCR-20250217-mpdd.png 팀 해산한 날 회사 법카로 회식하기


회식에서 우리는 "왜"에 대해 토론했다. 왜 우리가 캔슬되었을까?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랜차이즈 중 하나를 차용한 매우 큰 규모의 게임이었고, 출시만 한다면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우리 중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유를 찾자면 물론, 돈일 것이다. 어쩌면 정말 간단한 플러스 마이너스의 계산. 회사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을 우리는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안다. 우리는 한 사람이 서너 사람 몫을 하면서 까지 멋진 게임을 만드려고 노력했지만, 그 "멋짐"은 숫자로 모두 환산할 수는 없는 가치이고 종종 무시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텅 빈 캘린더에 미팅인바이트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다. 내부 재배치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몇 달이 걸리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Zoom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력서를 봐주고 (내부 이직이라도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탄을 하고, 같이 갈틱폰 게임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미친 듯이 링크드인 커넥트를 했다. 언제라도 당장 회사 이메일이나 메신저에 접속 권한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였을까?


회사에서는 우리 게임을 데이터베이스에 보관(archive)한다고 했다. 프로젝트는 캔슬되었지만 우리는 남은 게임을 만들고, 버그를 고쳤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다들 그렇게 하고 싶어 했다. 나중에, 누군가 우리 게임을 우연히 먼지 쌓인 찬장에서 꺼냈을 때, 그때에도 여전히 멋진 게임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계곡과 절벽, 캐릭터 그리고 우주선을 다른 누군가도 사랑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의 책임감과 프로페셔널리즘이 나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 우린 여전히 멋진 팀이고, 정말 멋진 게임을 만들었어.




올해도 테크 업계의 대량해고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거의 매일 링크드인에서 새로운 레이오프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잡 포스팅 하나에 수백 개의 이력서가 도착하는 것을 본다. 우리는 남극의 한파를 견디는 펭귄들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이 바람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팀 해산 후 우리는 더욱 끈끈해졌고, 같이 일 할 때보다 더 자주 만나 맥주를 마신다. 게임 업계에서 프로젝트가 캔슬되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흔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겪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다시 2월이 찾아왔다. 해고의 바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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