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예술과 자기만족 사이

우리가 멍청한가, 그들이 불친절한가

by 글쓰는곰돌이

여러분은 미술을 알고, 즐기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의견은 서로 분분할 것 같습니다. 알고 즐기는 분들도 있는 반면에 미술보다는 다른 예술 장르를 즐기는 분들이 있겠죠. 반면에 현대 미술은 어떻습니까? 여기에 대한 의견은 거의 하나로 통일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하는 미술인지 모르겠다.


저는 러시아 고전 미술을 모아놓은 트레티야코프 국립 갤러리 구(舊)관과 현대미술전 "Here and Now"가 전시된 러시아 마네쥐(Mange)를 각각 다녀왔습니다. 미술을 꽤 좋아하고, 즐길 줄 안다고 생각했기에 러시아어를 전혀 모른다는 점이 갤러리의 전시를 이해하는 데 큰 불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감각을 최대한 곤두세우고, 전시관의 공간-조명-조형-구성을 하나하나 살폈습니다. 과학과 예술은 언어를 초월해 의미를 전달한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설명되지 않더라도 오감을 통해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Screen-Shot-2013-10-08-at-1.23.39-PM.png Moscow Manege에서 열린 현대미술전.

그러나 이런 전략은 모스크바 마네쥐의 현대미술전에서는 기대만큼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박살난 그랜드 피아노 서른 대가 전시장 곳곳에 듬성 듬성 놓여 있었는데, 도통 어떻게 감상해야 할 지 납득되지 않고 아무리 열심히 이해해보려 안간힘을 써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또래의 모스크바대학 학생 한 명이 영어로 대강 설명해 준 덕분에 그제서야 전시의 목적과 테마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예술이란 문화를 넘고, 국경을 넘고 세대를 넘어 메시지를 전하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 생각해 왔는데, 실제로는 문화는 커녕 문화의 일부인 언어조차 넘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정교한 전시가 제게는 아주 흐릿한 이미지, 혹은 느낌만 줄 뿐 그 이상의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걸까요,
아니면 현대미술이 조금 이상한 걸까요?
309.jpg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예술과 환영>
<예술과 환영>에서 곰브리치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설명합니다.

화가 뒤러가 코뿔소를 직접 보고 그렸음에도 사실과 다르게 그린 것입니다. 왜 보면서도 그리지 못했을까요? 곰브리치는, 어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 대상을 보고 있더라도, 먼저 선행된 예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가령 봄마다 부슬부슬 땅을 촉촉하게 적시는 비를 두고, 어떤 사람은 '부슬비가 시나브로 내린다'라고 표현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비가 온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관찰 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한 쪽만 '부슬비', '시나브로'라는 언어와 그 상황에 대해 선행학습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언어의 학습을 통해 생각을 구체적으로 종합할 수 있기에, 언어 없이는 우리의 사고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그의 주장입니다.

a881cfe7b69a673edfdca9ae1d60f297.jpg 사실주의 화가인 뒤러는 코뿔소의 피부를 단단한 갑주로 묘사했습니다.

이 주장을 현대미술에도 적용해 보면, 모든 예술이 그렇듯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에도 선행된 에시, 즉 이 전시회를 관람하기에 앞서 최소한의 생각의 틀(Frame of Thinking)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전시회를 관람하기에 앞서 관람객들에게 숙지되어야 한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겠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20세기 인상파 화가들이, 주제가 되는 오브제보다 표현 방식이나 그림 자체에 몰두하게 되면서 독창적인 작가만의 언어를 언어를 대중과 향유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워지고, 많은 해석과 배경지식, 때로는 그 이상의 것들이 관객과 작가의 간극을 메워주어야 하게 되었습니다.

2271424757412EAD159ECB 요즘 아파트에 독특한 조형물 하나쯤 없는 곳이 드물 텐데요. 무엇을 표현한 건지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요?

누군가 길을 지나다가 독특한 조형물들이 모여 있는 공원을 지난다면,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작가를 잘 아는 사람이 주절거리며 간극을 메우고자 동분서주하지 않는 이상, 그림은 자신의 본질(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그 자체로 미를 추구하는)을 달성하지 못한 채 '그저 실존'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미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과학이 엄청난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과학과 대중의 간극이 벌어지고, 인류 공동의 유산인 '지식'이 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사유화되어갔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저술이나 강연, 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과학의 저변을 확대하고 '대중의 과학화'에 주목해 왔습니다. 오늘날 리처드 도킨스, 최재천, 정재승과 같은 과학저술가들의 이름이 일반 대중에게도 익숙해진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현대 미술이 유난히 대중에게 불친절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예술과 문화는 창작자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이해하고 즐기는 대중이 없다면 그것은 어떤 괴짜의 유별난 취미생활에 불과한 채로 점차 쇠퇴할 것입니다. 독창적이지만, 그 때문에 소수의 잘 교육된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는 현대미술은 예술과 자기만족 사이, 어디쯤을 향해 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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