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때' 와 달라지는 과학관 풍경
옛날(이라고 해 봐야 10~20년 전이다), 부모님 손을 잡고 찾아간 '과학관'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몇 번 찾아가지 않아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썩 재미있지 않았던 것 같다. 값싼 티켓을 끊어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낡은 시설에 조그만 돌 덩어리들이 '규암' '사암' 같은 이름표와 함께 전시되어 있었고, 곤충 표본들을 스윽 둘러보다 보면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과학관을 다 둘러보게 되는 곳도 있었다.
이런 모습을 그 당시 미술관들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더 커지는데, 기억 속 덕수궁 미술관이나 서울시립 미술관을 찾아 갔을 때에는 꼭 도슨트 선생님이 계셨다. 몇 달 간격으로 새로운 특별전이 기획되고, 이해를 도와주는 도슨트 선생님(더 최근에는 음성파일로 바뀌었더랬다)이 계셔서 방학 마다, 계절 마다 미술관을 들르고는 했었다.
지난 겨울, 과기부는 '과학문화산업 혁신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전국 국-공-사립 과학관 관계자들과 함께였다. '과학문화의 다양화, 고도화, 전문화'를 목표로, 과학 문화가 국민이 일상에 즐기는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것이 골자였다.
구체적으로는 전문가-청소년 위주로 지식을 전달하는 컨텐츠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콘텐츠를 보급하고, 전국 과학관이 과학 문화 생산과 소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과학관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지난 주말 다녀온 '국립 대구과학관' 은 그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대구 과학 문화의 중심으로 꼽히는 국립대구과학관이 여름방학을 맞아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지난 27일 주말을 맞은 대구과학관 일대는 ‘함께 즐기는 특별한 여름 바캉스’를 주제로 열리고 있는 ’한여름의 판타지아’ 행사를 찾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이번 행사는 ‘여름 바캉스’라는 주제에 걸맞게, 보고 배우며 익히기보다는 놀이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과학과 만날 수 있도록 한 배려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우주 페이스페인팅을 한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글라이더를 만드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특히 대구과학관 입구에는 테마형 워터바운스가 개장돼 더운 여름 물놀이로 신난 어린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에어로켓 부스에도 많은 아이들이 몰렸다. 작용, 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해 미리 제작된 에어로켓을 날려볼 수 있도록 마련됐다.
진행요원의 도움을 받아 드론을 날려 올려보기도 하고, 가상 우주 공간의 암석을 보행 로봇을 조종해 채취하기도 했다. 기존 체험 부스들이 아이들이 직접 제작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이날 행사에서는 재미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축제가 열리고 있는 대구과학관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공룡 과학자의 강연도 진행됐다. 진주 라거슈타테에서 백악기 발자국 화석 발굴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경수 한국 지질연구소 소장은 진주에서 발견된 세계 최소 ‘랩터 공룡 발자국’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라거슈타테는 독일어로 매우 잘 보존된 화석이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장소를 이르며, 진주는 전 세계에서 발굴된 익룡 발자국의 75% 이상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공룡 연구의 산실이다.
공룡 발자국에는 공룡의 무게, 발톱 등 생물의 진화 과정에 관한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공룡 뼈에 비하면 최근에서야 그 연구적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김 소장은 “예전에는 브론토사우르스의 중요한 표본을 발견해도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 없어, 도로 땅에 묻어버리기도 했다”면서, 진주 화석 산지에서 발견된 각종 공룡 발자국 화석들을 보여주었다.
강연에서 김경수 소장은 “곧 진주 익룡 발자국 전시관이 문을 연다 “며 세계 최대, 최고의 발자국 화석들을 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7월에 캠프에서 가져온 삼엽충 화석을 내 보이며 대구과학관에서 9월에 개최하는 공룡발자국 탐사 캠프의 홍보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강연장을 찾은 학부모에게는 “꿈을 빨리 결정하라고 재촉해선 안 된다”며 자신의 공룡 발자국 연구의 시작도 ‘우연한 호기심’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는 체험 부스나 강연 이외에도 관광객이 다채로운 방식으로 과학 문화를 경험할 수 있어 눈길을 끌었다. 내달 11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는 실내 체험 행사 외에도 가족 문화예술 공연, 사이언스 라이브 쇼, 야간 천체관측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 체험 행사가 준비돼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과학관이 피서지가 된 것. 워터슬라이드와 풀장이 설치되어 유치원~초등학생 아이들이 마음껏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놀이터가 들어섰고, 물총싸움을 즐기는 아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학부모들은 그늘에 텐트를 치고 앉아 수박을 먹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아이들이 물놀이가 질릴 때 쯤이면, 학부모들은 아이들 손을 잡고 가 글라이더를 만들기도 하고, 과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각종 강연이나 기획전을 관람하기도 했다. 과학이 '마음 단단히 먹고 선생님 앞에 앉아 배워야 하는'것이 아니라,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피서도 즐기고, 또 재미있게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된 것 같았다.
이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재미있게 과학을 만나게 된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과학에 대한 흥미를 지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러한 사람들이 많아진 사회에서 과학자들은 지도 교수님들이 20년 전에 했던 것과는 다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 같다. 또, 다음 세대와 함께 연구실에서 살아가게 될 우리에게는 어떤 것들이 필요하게 될 까? 과학기자로서도, 대학원생으로서도 많은 생각이 들게 한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