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글쓰기
대학 시절, 가장 많이 먹은 밥은 ‘학식’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식당이 세 곳이나 있었고, 교직원 식당도 학생 식당보다 조금 더 비싸긴 했지만 이용할 수 있었기에 선택지는 꽤 넓은 편이었다. 그게 아니면 정문과 후문에 즐비한 식당들 사이에서, 대학생의 입맛과 주머니 사정에 맞는 가게를 찾아 나서곤 했다. 그 시절은 저렴하고, 맛있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았던, 일종의 ‘풍요의 시대’였다.
졸업 후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되면서, 뜻밖에도 ‘식당 빈곤의 시대’가 열렸다. 직장 근처 식당은 비싸거나, 맛이 없거나, 줄이 너무 길거나. 이유야 많지만 어쨌든 ‘갈 만한 곳’은 드물었다. 물론 맛과 가성비를 모두 갖춘 가게도 한두 곳쯤은 있었지만, 그런 곳도 금세 질렸다. 심지어 휴일이면 찾아가는 성수동 카페거리 근처에서 일할 때조차, 동료들과 “아이고, 오늘은 또 뭐 먹지?”를 달고 살았다.
그래서일까? 생각해보면 직장인이 된 뒤 가장 자주 먹은 음식은 김밥이었다. 어떤 회사에선 복지 차원에서 아침에 김밥을 나눠줬고, 시간이 부족해 점심 시간까지 일해야 하는 날이며녀 키보드를 두드리며 김밥을 받아 먹었다. “뭐 사다드릴까요?”라는 질문에 “김밥이요”라고 대답하는 건 팀 내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다.
오늘도 퇴근길에 김밥 가게에 들렀다. 딱히 밥 생각은 없었지만, 엄마와 통화하던 중 “저녁은 먹어야지”라는 말에 ‘그렇다면 간단히라도?’ 하며 자연스레 김밥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기분좋게 가게를 나섰다. 역시 성공!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다. ‘왜 이렇게 김밥을 자주 먹게 되는 걸까?’ 그러다보니 글도 쓸겸 진지하게 이유를 떠올려봤다. 대략 네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김밥을 이야기하며 ‘저렴한 가격’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엔 보기 힘들지만, 김밥이 ‘천 원’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손톱만 한 장아찌나 참치 한 티스푼 들어간 삼각김밥도 천삼백 원에서 천칠백 원쯤 한다. 그런데 밥, 김, 단무지, 계란, 오이, 맛살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 김밥이 아직도 2천 원대라니—감탄스럽다. (물론 우리 동네는 대부분 2,500원부터 시작이다.)
먹고 싶은 게 없거나, 빨리 먹어 치워야 할때 선택하는 메뉴는 샌드위치, 햄버거, 김밥 등이다. 그 중에서 ‘건강’에 가장 가까운 건 결국 김밥이다. 김, 밥, 계란, 채소, 때로는 고기나 참치까지. 김밥은 탄단지가 꽤 균형 잡힌, 건강하고 소소한 패스트푸드다.
‘그렇게 자주 먹는데 안 질려?’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김밥엔 신묘한 ‘베리에이션’의 기술이 있다고. 오늘 내가 먹은 건 아주 두툼한 계란말이김밥이었다. 밥은 적게, 단백질은 많은 메뉴였는데, 저녁 시간대의 먹기에 부담없이 딱 좋았다.
저녁이고 뭐고 너무 귀찮은 날엔, 집 오는 길에 있는 두 김밥집 중 한 곳에 들어간다. 한 곳은 가성비의 ‘김밥천국’, 다른 한 곳은 속이 꽉 찬 프리미엄 김밥집. 나는 둘 다 좋아하지만, 힘 빠진 날엔 자동처럼 김천으로,
에너지가 있거나 ‘보상 심리’가 발동한 날엔 그 맞은편 가게로 간다.
그리고 이 모든 이유 외에도, 김밥은 내게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다. 어릴 적 운동회처럼 특별한 날이면, 엄마는 김밥을 싸셨다. 새벽에 일어나 재료 하나하나를 손질하고, 정성껏 밥 위에 올리고, 김발로 돌돌 말아내면
(참 식상한 표현이지만 어쩔 수 있는가!)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밥이었다. 운 좋은 날엔 엄마가 끓여준 냄비우동과 함께 김밥을 먹었는데, 그 입맛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나는 여전히 김밥과 우동의 조합을 좋아한다.
얼마 전, 분식 킬러인 사촌 언니가 '나는 돈 많이 벌어도 떡볶이 자주 먹을 거야.'하고 말했는데, 아마 나는, 언니 옆에서 참치 김밥이랑 모둠 김밥을 시켜 떡볶이와 나눠 먹고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