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쓰기
거의 2주 만에 요가 수련을 다녀왔다. 예기치 못한 야근 탓에 예약해두었던 아쉬탕가 수업을 취소하고 밤 9시에 시작하는 ‘힐링 빈야사’ 수업에 들어갔다.
나는 요가 5년차라 ‘힐링 빈야사’ 정도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땀이 많이 나거나, 수련 후 개운함이 확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비교적 초급 수련자를 위한 수업에 참여할 때는 비교적 쉽게 수련하는 대신, 마음은 더 복잡해지곤 한다. 동작이 단순할수록 잡생각이 스며들 틈도 많아지니까.
수련이 시작되었을 때, 내 머릿속은 매우 복잡한 상태였다. 몇 개월째 가족 문제로 깊은 고민이 이어지고 있고, 회사에서는 입사가 확정된 고연차 마케터가 입사 하루 전 ‘연봉 인상’을 요구하며 무례한 태도를 보여 채용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입사 예정 팀원에게 주려했던 업무까지 더해서 기 인원이 많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남은 팀원들에게 부담을 최소화하려 고심하며 업무를 다시 나눴다. 이런저런 일로, 수련을 시작하며 합장하고 눈을 감았을 때 내 미간은 분명히 찌푸려져 있었던 것 같다. 호흡에 집중하기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감정들이 폭죽 터지듯 머릿속을 메웠다.
그렇게 쉬운 동작으로 시작한 수업은 중반이 넘어가자 조금씩 난이도 높은 동작들로 넘어갔다. ‘베이비 바카아사나’ 같은 하이라이트 동작이 등장하면서 슬슬 잡념은 줄고, 매트 위의 몸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중간중간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보세요.
내 몸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움직여 봅시다.”
쉬운 동작에서 조금 도전적인 동작으로, 그리고 다시 몸을 푸는 동작으로 넘어가며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더 긴 사바아사나 즉,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편안히 호흡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고요한 순간, 선생님이 나직하게 입을 떼셨다.
“요즘은 AI가 발달해서, 많은 직업이 사라진다고도 하고, 무인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기도 하고, 챗GPT로 간단한 질문만 해도 세상의 온갖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기술이 최첨단으로 발달한 시대에 우리 마음도 더 편해졌을까요?”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저는 아무리 많은 직업이 사라져도 요가는 계속 남을 거라고 믿어요. 요가는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온 수련이고, 단순히 몸을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함께 다스리는 운동이니까요. 오히려 지금처럼 몸과 마음의 균형이 더 필요한 시대일수록, 요가는 더더욱 필요할거라 생각해요.”
처음엔 선생님이 AI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조금 의아했다.‘이 잔잔한 시간에, 첨단기술 이야기라고?’ 싶었지만, 곧 이어진 그 한마디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우리 마음은, 더 편해졌을까요?”
맞다.
검색은 더 쉬워졌고, 운전도 더 쉬워졌고, 일도 더 자동화되어가는데 우리 마음은, 과연 더 편해졌는가?
어릴 적부터 ‘경쟁’은 너무도 당연한 단어였고, 사회는 한 번도 ‘덜 경쟁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적이 없었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더 빠르게 지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이얼 전화기를 쓰던 시절과 터치 스크린을 누르는 지금을 비교해봐도, 내 마음의 난이도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아니, 오히려 과거가 더 단순하고 편했는지도 모르겠다. 기술의 첨단을 향해 나아가는 오늘도,역설적으로 내 마음은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이 더 인상적이었나보다. '기술의 발전과 마음의 편안함'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그 말이 말이다.
내 마음은 AI의 덕을 못보고 있는데,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사람들은 AI를 발전시키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