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Los Arcos To Logroño
아저씨와 헤어져 로그로뇨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홀로 알베르게에 도착한 나는 늘 그러하듯 자리를 배정받은 뒤 씻고, 빨래 후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마트로 가는 길에는 슬로바키아에서 온 아라스트 술라브를 만났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말을 트고 동네를 구경하며 마트까지 동행했고, 장을 본 뒤 숙소로 돌아와 각자가 준비한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그날 저녁 마트로 향하기 전 나는 취사 도구와 조미료 등을 확인하기 위해 주방에 들렀었다. 그리고 주방 선반을 여기 저기 살펴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뒤를 돌아 내 이름을 부른 사람을 쳐다보니,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가 “모두가 네 이름을 부르잖아, Jin 하고 말이야. 그래서 나도 네 이름을 알고 있었어.”라고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영국인인 그의 이름은 올리로, 호주에 살고 있고 직업은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샤워를 마치고 1층 세탁실 주변의 공터에서 스트레칭을 할 때도 비슷한 방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2층 발코니에 있던 올리가 다시 나를 불렀던 것이다.
“Jin, 계단에 올라가서 발 뒤꿈치가 아래로 향하도록 스트레칭 해 봐. 다리의 뒷부분이 당기는 느낌이 들면 피로를 푸는데 훨씬 도움이 될 거야.”
그렇게 두 번씩이나, 환하게 웃는 얼굴로 먼저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올리에게 나는 금방 호감이 생겼다. 그리고 그의 진면목은 그날 알베르게에서 가진 조촐한 파티에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날 밤은 올리와 그의 사촌인 헤나가 까미노에서 머무는 마지막 밤이었다. 알베르에게에서 묵는 사람들 여럿이 함께 둘러앉아 저녁을 먹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식사 후 조촐한 ‘이별 파티’를 열기로 했다. 몇 가지 스넥과 술이 준비되었고, 주방의 커다란 테이블에는 올리와 헤나, 미국인 카를로스 그리고 멕시코인 에드가, 네덜란드인 마리우스, 슬로바키아인 아라스트 술라브, 이탈리아인인 안드레아, 그리고 한국인인 나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둘러 앉았다.
나는 올리의 맞은 편에 앉아 있었는데 그 위치 덕분에 나는 그가 얼마나 사람들을 섬세하게 신경쓰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장난꾸러기처럼 굴었지만 그는 배려심 깊게 주변 사람들을 챙겼고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나는 헤나를 제외한 유일한 여성이자, 아시아인이었다. 그는 그런 내가 그 자리를 어색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나와도 자주 눈을 맞춰가며 대화를 나눴다. 테이블 위에 가끔 소리의 공백이 생기면 그가 나서서 가벼운 농담을 던졌고, 그렇게 다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가곤 했다.
올리는 우리에게 간단한 게임을 몇 가지 제안했다. 그리고 각자가 아는 게임을 서로에게 알려주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그 간단한 세계 각국의 게임들은 테이블에 둘러 앉은 모두를 열정적으로 만들었고 이별 파티의 분위기도 절로 무르익어 갔다.
그날 했던 여러 게임 중 동전의 옆 면을 이용해 테이블에 동전을 세운 뒤, 팽이처럼 회전시켜 한 손으로 멈춰 세우는 게임이 유독 인기를 끌었다. 동전 세우기에 성공하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의 나라 이름을 부르며 함께 건배를 하는 게임의 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얼굴의 생김과, 언어, 출신지가 모두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있었고, 건배를 할 때는 게임에서 이긴 사람이 자신의 나라의 대표가 되어 건배사를 제안했다. 그날 나는 코인 세우기를 네 번이나 성공시켰는데, 덕분에 비정상 회담 같았던 그 자리에서 한국식 건배사인 “건배(geonbae)”를 네 번이나 제창할 수 있었다. (코인 게임을 잘 해 낸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밤이 깊어 파티를 끝내고 모두 숙소로 돌아갈 때, 주방 문을 나서는 나를 올리가 불러 세웠다. 그는 내게 다가와 “Jin, 너는 내가 아는 최고의 한국인이야!”라고 말하며 양 볼을 각각의 볼에 마주대는 스페인식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해 주었다.
까미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길 위의 타인에게 한결같이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밤 마지막 건배사를 돌아가며 외칠 때 나는 “For our future!”(우리의 미래를 위해!)하고 외쳤다.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까미노 위에서의 즐겁고도 용감했던 기억들을 품고 자신의 삶을 유쾌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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