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인듯 충고아닌 충고같은 말
오늘 시간 되는데, 점심 같이 먹을래?
오랜만에 친구 H에게서 연락이 왔다.
H는 2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친구로, 전업주부였다가 작년부터 워킹맘이 된 친구다.
엄마가 되기 전부터 만나 오랫동안 봐 온 사이지만,
서로의 삶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레 만남이 줄어들었다.
나는 육아휴직 중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H는 직장에 다니랴 아이 키우랴 늘 바빴다.
그래서 내가 먼저 연락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오늘은 H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오늘 시간 돼?” 그 한마디가 어찌나 반갑던지, 마음이 들썩였다.
얼른 머리를 말리고, 가볍게 화장을 한 뒤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브런치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 향을 맡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서로의 근황, 요즘의 일상까지
몇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게 말이 쏟아졌다.
그러다 언제나 그렇듯, 대화의 방향은 아이 이야기로 흘러갔다.
엄마들이라면 어쩔 수 없다.
특히 둘 다 고학년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공부 이야기가 빠지질 않는다.
H : 요즘 OO이 공부는 어떻게 해?
나 : 영어는 윤선생 계속하고 있고, 수학은 집에서 문제집 풀어. 미술학원 하나 다니고.
H : 아직도 윤선생 해? 수학은 언제까지 집에서 하려고?
나 : 이젠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니까 우선 초등학교 다닐 동안은 이대로 둬도 될 것 같아.
H : 야, 그러면 늦어. 요즘 선행하는 애들 얼마나 많은데. 얼른 학원 보내. 너 그러다 후회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한켠이 답답해왔다.
괜찮다고 속으로 다독였지만,
친구의 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사실 나도 안다.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학원, 수학선행, 코딩, 논술까지
이른바 ‘앞서가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나 역시 몇 번이나 고민했다.
‘나도 보내야 하나?’
‘지금처럼 집에서 시키는 게 맞을까?’
길고 긴 고민의 끝은, 답은 항상 같았다.
공부는 결국 아이가 하는 거라고.
내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공부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하지만 친구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큰 파동을 일으킬 줄은 몰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햇살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마음은 묘하게 차가웠다.
길가의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듯
내 생각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혹시 내가 너무 느긋한 걸까?’
‘아이의 가능성을 내가 막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 아이만 빼고 다들 앞서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날 밤, 결국 생각에 사로잡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결국 나는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섰다.
쌀쌀한 늦가을 공기가 볼을 스쳤고,
차가운 공기에 머리가 조금씩 맑아졌다.
그리고 천천히 걸으며
어제의 대화를 곱씹고 곱씹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 아이도 아직 초등학생인데,
직접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왜 단정하지?’
‘우리 아이가 잘할지 못할지, 그건 중학교를 가봐야 아는 거 아닌가?’
‘공부는 결국 아이의 몫인데, 내가 시킨다고 언제까지 따라올까?’
마음을 짓누르던 돌덩이들을
내 손으로 하나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욕심을 낸다.
'우리 아이가 혹시 천재는 아닐까?'
'지금 안 하면 뒤처지는 거 아닐까?'
나도 그랬다.
그래서 아이를 몰아붙인 적 또한 있다.
“친구들은 다 하는데 너는 왜 못하니?”
“이 정도도 못 하면 어떡해?”
그때마다 아이는 잠깐만 따라오는 척만 할 뿐,
결국 남는 건 후회와 눈물뿐이었다.
이젠 안다.
아이에게 내비쳐야 하는 것은
나의 불안이 아니라 아이에 대한 믿음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조금 느리더라도,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기로 했다.
공부보다 중요한 건
나와 아이 사이의 관계라 생각하니까.
사춘기가 조금씩 찾아오는 지금
한 번씩 티격태격하지만
딸은 여전히 내 품에 안기며 말한다.
"엄마 사랑해”
그 말 한마디에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린다.
이거면 난 충분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런 교육관을 가지게 된 건
순탄하지 않았던 내 인생 덕분일지도 모른다.
가난 때문에 대학을 포기해야 했고,
1년을 일하며 모은 돈으로 전문대에 들어갔다.
졸업 후에도 배움의 끈을 놓질 못해
스물여섯, 4년제 대학에 편입했다.
첫째를 품은 몸으로 마지막 학기를 수료했고,
조리원 침대 위에서 졸업논문을 썼다.
그리고 둘째를 낳고 1년이 되던 날,
또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어린 두 아이를 시어머니께 맡기고,
밤마다 교재를 펼쳐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고
그리고 서른일곱,
오랜 꿈이던 공직 시험에 합격했다.
그때 알았다.
공부는 ‘때’가 아니라 ‘의지’라는 걸.
원하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진심이면 언젠가 반드시 닿는다는 걸.
지금도 나는 배우는 중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출간 작가라는 꿈을 꾼다.
누군가는 이걸 ‘늦은 공부’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삶을 이어가는 힘’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공부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을 때 마음껏 몰입하며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초, 중, 고 시절은
그걸 위한 기초 체력을 쌓는 시기일 뿐이라고.
물론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미련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개똥철학이라 해도
이건 나와 내 아이의 속도이고,
우리의 삶의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