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에겐 천국인 베트남 나트랑 빈펄에 왔다. 실컷 놀라고 숙소 자체를 빈펄 랜드 안으로 잡았다.
오전 9시에 빈펄에 짐을 맡겨두고 동물 사파리 구경, 놀이시설 이용, 오후 2시에 숙소 체크인하고 빈원더스 워터파크 이용(워터파크는 개인 수건을 가져가면 헛돈을 쓰지 않는다.), 저녁 6시에 항구로 나와 저녁야경 구경, 식사, 공연관람. 다음날 낮 12시 체크아웃 전까지 호텔 수영장 이용이 빈펄에 대한 완벽한 계획이었다. 한마디로 뽕을 뽑고 즐기라고 짠 일정이다
애들은 신났는데 따라다니려니 힘에 부친다. 한국에서 '회사-스터디카페-집' 밖에 다니지 않아서 혹은 늙어서 힘들다. 7살 더 많은 남편은 신나게 워터 슬라이드를 타는 걸 보니 늙어서 그렇다는 이유는 아닌 듯하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시 인생 최대로 어려울 쳇바퀴에 올라타야 해서 그런가.
여행 중에는 작은 갈등이 생긴다. 남편과 두 번의 의견 어긋남이 있었다. 나는 속도를 늦춰 편히 여행하자는 거였고, 남편은 베트남에 왔으니, 일정을 빡빡하게 짜서 다 돌아다녀야 한다는 거였다. 내 MBTI는 ISTJ, 남편은 ESTJ이다.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닌데 일정을 따라다니려니 이게 여행인가 싶다.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ISTJ가 E(I)STJ를 만나면 숨이 막힌다.
무이네에서 나트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숙소 앞에서 바로 잡아탈 수 있는 슬리핑 버스를 타고 편히 누워 오자고 얘기했다. 남편은 개인택시 비슷한 걸 예약해서 새벽 일찍 출발하자는 거였다.
무이네에서 나트랑까지의 이동시간을 4시간에서 3시간으로 단축시키려는 계획이다. 그러면 나트랑에서 오후 일정 하나를 더 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물론 남편이 제안한 개인택시의 비용이 슬리핑 버스보다 3배 더 비쌌다. 내 입장에서는 이동시간 1시간 단축시킨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시간이 뜨면 쉬어가면 되지 않는가.
초등딸이 귓속말로 아빠가 술을 마신 상태이니 아빠 말에 따르자고 한다. 본인은 나트랑 아이리조트의 머드 온천에 빨리 입장해서 1시간 더 노는 것도 나쁜 의견은 아닌 듯하단다. 중학생 아들은 아빠의 속뜻은 베트남에 왔으니 이동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체험을 하자는 의도인 것 같으니 아빠 의견에 따르는 게 어떠냐고 한다.
애들이 크니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좋지만, 거참 이해가 안 되는 건 사실이다. 네가 맞냐 내가 맞냐는 답이 안 나올 듯하다. 노는 것에 있어서는 남편의 의견을 따를 때 잘 풀린 경우가 많았다. '애들 하나라도 더 체험하게 하자'는 속뜻이 이해는 되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남편 뜻대로 하자고 했다.
남편 뜻대로 하니 편했다. 물론 딸과 아들 사이에 껴서 티격태격 다툼을 보며 3시간 앉아서 오는 건 고역이었다. 갈등상황에서 순간의 고집은 참 꺾기 힘들다. 고집 하나로 어려움 뚫고 살아온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근데 한번 꺾으면 편해진다.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이래도 저래도 큰 상관이 없다.
어젯밤 식당에서 음식종류가 많이 나오는 세트메뉴를 시켰다. 초등 딸이 본인은 세트메뉴에 없는 치킨을 먹겠단다. 입 짧은 딸이 먹고 싶은 걸 표현해서 좋은 마음으로 시켜줬다. 닭다리 하나와 닭날개 하나가 술안주식으로 나왔다.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아들이 닭날개 하나는 본인 달라고 한다. 나눠먹었으면 좋겠는데 딸이 나누지 않고 혼자 먹으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뭘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겠다.
딸을 설득해서 둘이 하나씩 나눠줬지만 딸이 얼굴을 박고 운다. 진짜 어찌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남편이 지도했으면 하는데 술 마시며 공연보기 바쁘다. 그래. 울 놈은 울고 메롱 거리며 골탕 먹이는 놈은 그렇게 하라고 가만히 지켜봤다. 딸이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만들어 아빠에게 이른다. 진짜 콕 쥐어박고 싶다. 방법을 몰라 회피형으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아들도 치킨을 시켜줄까 하다 이미 시킨 음식이 많다.
가만히 뒀더니 다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딸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또 아들이 한입만~하면서 깐족댄다. 좀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크게 한입 떠서 오빠입에 넣어준다.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일어나 저녁식사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나열하고 그때 관찰자로서의 내 마음이 어땠는지 딸에게 설명했다. 그랬더니 딸이 다음번에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그 자리에서 치킨 한 조각을 오빠에게 주고 다른 맛있는 걸 먹을 거란다. 아침식사하며 아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니 아들은 동생이 한 조각을 주면 다음번에 다른 맛있는 걸 나눠줄꺼란다. 아니면 그냥 음식이 많아도 똑같은 거 하나를 시켜줘도 좋았을 것 같단다.
빈펄에 도착했는데 숙소예약이 안되어있다고 한다. 남편이 한국에서 아고라 통해서 방 2개를 예약했는데 현지에서는 확인이 안 된다고 한다. 4인용 방 1개보다 2인용 방 2개가 합리적 가격이어서 그렇게 예약했다고 한다. 그런데 방이 1개도 예약이 안되어있는 거다.
아고라 측에 통화를 하면서 남편의 목소리가 아주 서서히 커진다. 딸이 와서 아빠가 곧 화를 낼 것 같단다. 평소 화를 잘 안내는 사람이기에 그냥 지켜봤다. 전화를 끊고 예약과 결제는 되었는데 아고라 측 중간 업체에서 예약번호를 베트남으로 전달 안 한 것 같단다. 그 확인 이메일을 1시간 후에 주겠다고 한다. 핸드폰 자유 타임 1시간이 생겼다.
남편은 애들 마음껏 놀게 하려고 아침 일찍 8시에 빈펄에 도착했는데 이게 뭐냐고 투덜 투덜이다. 남편에게 상황은 벌어졌고 현재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없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기다려보자고 했다.
이미 벌어진 상황에 감정을 싣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편 왈 우리가 기다리는 1시간 동안 애들이 체험을 하지 못해서 그렇단다. 역시 계획이 흐트러지는 걸 싫어하는 ESTJ형이다. 애들은 오래간만에 생긴 핸드폰 자유타임으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로블록스 게임 삼매경이다.
결국 전보다 더 좋은 숙소를 새로 예약하고 기존 예약건은 네이버 페이로 환불받기로 했다. 상황은 끝났고 그 과정의 감정만 남았다. 나는 오랜만에 드라마를 봐서 좋았고, 애들은 게임을 해서 행복해했다.
# 나트랑 숙소 : 빈펄 나트랑 베이(리조트 & 스파)(5성급)
이 숙소도 좋지만 전에 예약한 빈펄 내 다른 숙소도 더 저렴하고 음식도 최상급이라고 한다.
(수영)
# 베트남 나트랑 빈 원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