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영어에서는 꽃이 핀다

by 전대표

교육기관에 근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부모님들과 상담을 하던 중, 한 학생의 어머님께서 질문을 하셨다.

"선생님, 영어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요?"

마땅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열심히 반복해서 듣고 따라 하면 됩니다.'하고 이야기를 드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왜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누구나 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쉽고 재미있게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앱들을 휴대폰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텔레비전에서도 외국 방송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외국인 친구들과 몇 마디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출 수 있다. 그런데도 아직 영어를 어려워하고,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세계적인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원활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한국과 같은 단일 국가에서 제2외국어에 속하는 영어를 잘하기란 쉽지 않다. 서점에 가면 굉장히 많은 영어책을 볼 수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귀가 뚫리는' 영문법이나 '100일 만에 술술 나오는'영어비법을 알려주는 책이 출간되지만 정작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와 함께 교육기관에서 근무하던 아내는 중학교 3학년인데도 발음기호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영어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월 수십만 원에 육박하는 영어학원에 보내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학습지 기관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은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는 분들도 있었다.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분은 '아들이 이제 7살이 되는데 영어를 배우기에 늦은 나이가 아닌가요?'하고 질문한 적도 있었다. 자칫 잘못 이야기했다간 상처가 되겠고, 괜한 이야기를 했다가 더 큰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몰라서 대충 둘러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운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물론 외국에서 살다가 온 경우가 아닌 바에야 알파벳이나 겨우 읽을 수 있는 정도지만, 영어 유치원을 다닌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 혹은 그 정도 나이 때부터 꾸준히 영어를 배운 아이들과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서 영어를 배운 아이들로 구분되었다.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웠거나 영어 유치원을 다닌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알파벳과 쉬운 단어 정도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단어를 암기하는 데도 속도가 빨랐고 또래 아이들보다 적응이 쉬웠다. 확실히 앞선다는 느낌을 받았고 관리도 수월했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웠거나 유아들을 위한 영어학원을 다닌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영어를 굉장히 싫어했다. 7살인데 영어를 배우는 게 늦지 않았느냐고 질문하신 어머님은 결국 아이를 데리고 오셨다. 1주일에 2시간 나에게 영어를 배우던 그 녀석은 한 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배배 꼬았다.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는 7살짜리 꼬마 녀석이 생전 처음 보는 알파벳을 쓰랴, 들리지도 않는 '리슨 케어플리'를 따라 하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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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아주 재미있게 가르쳐주거나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않는 이상, 영어를 싫어했다. 원어민 교사가 있건 없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말과 문화도 아직 서툰 아이들이 원어민이 강사로 있는 영어학원에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문화에서 교육받고 자란 노랑머리 외국인에게 영어가 '일상 언어'인 것은 맞지만 , 마찬가지로 동양인의 정서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아이들 마음에 언어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교육 전문가'라고 이야기하기엔 어폐가 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릴 때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다시 영어를 배우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고,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서부터는 공부를 힘들어했다.

어릴 때 영어를 배우는 것이나 영어 유치원을 다니는 게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여건만 허락된다면 최대한 어릴 때 영어를 배우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모국어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어를 배웠을 때는 모국어 체계가 영어보다 훨씬 부족해져서 향후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부분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요점은 이것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어린아이들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영어를 배우는 것은 좋다. 다만 생활 속에서 배우는 것이 아닌 교육기관을 통해 영어를 먼저 접하고 배우는 것이 향후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결코 절대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지, 어느 수준에까지 도달하는 것이 영어 공부의 목적인지, 두 가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영어공부는 아직 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영어를 좋아했다. 지금도 역시 틈틈이 영어공부를 한다. 다만 내가 영어 공부하는 방법은 다소 구세대적인 방법이다. 공부방법만 봐서는 제법 아재 소리도 들을 만하다.

일단 성문종합영어를 공부한다. 모르는 단어는 형광펜으로 색칠해둔 뒤, 성문종합영어 단어집을 추가로 사서 비교해가며 외운다. 성문종합영어만큼 잘 만든 영어교재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성문종합영어와 영어단어집만 있으면 대부분의 문법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외국 원서를 큰 소리로 읽는다. 퇴근 후에는 맨투맨 종합영어를 병행하다가 시간낭비인 것 같아서 그만두었고 성문종합영어만 공부하고 있다. 지금은 3번째 보고 있는데, 꾸준히 50번 반복하는 게 목표다. 그리고 영어사전을 외운다. 이게 내가 하는 영어공부의 전부다. 외국인을 만나서 대화하는 데 언어의 문제는 거의 느끼지 못한다.

'영어를 잘하겠구먼' 하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학창 시절, 성문종합영어는 공부를 제법 잘하는 중학생이 보던 문법책이었다. 나 역시 중학생 때 잠깐 본 기억은 나지만 생각의 구조가 지금과는 달랐고 마음이 어렸기 때문에 앞 페이지만 기웃거리다가 그만둔 기억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책 자체는 결코 쉽게 볼 만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지금 와서 성문종합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공부를 제법 잘하는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수준 정도'의 영어를 구사한다는 말과 같다. 30대가 훌쩍 넘어가는 지금 볼 만한 수준의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어려운 영어책으로 공부한다고 해서 월등하게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지금도 중학생 수준의 문법이 종종 헷갈릴 때가 있다. 그리고 현지인이 봤을 때 내 문법은 100% 정확하지 않을뿐더러 발음에 오류 역시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다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영어에 대한 관점이 다를 뿐이다.

개인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바로 '영어는 언어다'라는 전제를 깔고 공부한 것이었다. 영어가 언어라는 사실을 먼저 인지하고 공부를 하게 되면,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듯이 영어를 대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어린아이는 문법구조를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말하지 않는다. 모든 언어와 문맥 구조를 이해하면서 책을 읽지도 않으며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국어시험이 어려워요'라고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한국어가 어려워요' 하고 이야기하는 한국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평소에 별로 고민하지 않고 사용하는 그런 언어, 누구나 쓸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도구, 언어는 그런 것이니까.

그러고 보면 어릴 때부터 나는 좀 유별난 면모가 있었던 것 같다. 유년시절에는 낯을 좀 가리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게 조금씩 사라졌다. 경상도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 만나면 어떻게든 한 마디 해보려고 먼저 다가가서 묻고 악수하고 연락처를 받곤 했다. 아프리카로 해외봉사활동을 갔을 때에도 틈만 나면 한국인이 없는 곳으로 혼자 가방 매고 나가서 현지인들을 만나려고 노력했다. 그때 자연스럽게 회화실력이 조금씩 늘었다. 잘못된 문법과 어색한 발음을 문제 삼으며 면박을 준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다. 그들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동양에서 온 백인'이 신기했는지 어떻게든 나에게 한 마디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 비친 나는 '외국인'이었다. 영어를 못하는 게 당연했기 때문에 언어가 문제 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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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미녀들의 수다'라는 제목의 방송이 제법 인기를 끌었다. 여러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이 출연해서 토론하고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송이었는데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 그중에 어떤 외국인 출연자는 서울대 한국어학과 대학원 과정에 재학 중이었다.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대학원생이긴 해도 나 같은 한국사람은 아니다 보니 억양도 어색하고, 간혹 가다가 상황에 맞지 않는 말도 나오곤 했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를 '나이가 몇 살이세요?' 하는 식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인처럼 발음이 좋진 않기 때문에 몇 마디 나눠보면 한국인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참 인상적이었던 것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수준 높은 어휘를 구사했고 한국인 게스트들의 의견에 조목조목 이의를 제기하며 토론의 주제를 이끌어가는 것을 보며 '한국어를 참 잘한다'라고 느꼈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그 게스트의 수준 높은 언변이 기억난다. 언어를 잘한다는 건 발음이 좋은 게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표현을 잘 구사하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언어는 쉬워야 하고, 누구에게나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국내 정치의 퇴폐화
인류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명백한 탄압

이런 표현을 영어로 잘 구사하는 것도 영어를 잘하는 것이겠지만, '당신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던가, '오늘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길 바랍니다.'와 같은 표현을 영어로 말하는 것은 영어를 잘하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말이다.

'아름다운 말에서는 꽃이 핀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 따뜻한 감동이나 뜨거운 열정을 심어주는 말에는 힘이 있다.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살았거나, 발음을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은 이상 현지인처럼 발음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발음이 좋다고 해서 영어를 잘한다는 말도 아니다. 언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그 효과가 발휘된다. 그리고 언어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배울 수 있다면 제일 좋다. 어릴 때부터 집에서 '엄마', '아빠' 하면서 한국어를 배우듯이, 영어도 어릴 때부터 '맘마, '파파', '굿모닝'하면서 배우면 제일 좋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도 '안녕하세요'를 잘 못쓰는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유별난 부모, 유별난 교사가 아닌 이상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기 때문에 그리 문제 될 게 아니다. 누구나 충분한 대화, 독서, 일상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힌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익히는 게 좋다. 그게 어렵다면 먼저 충분한 독서로 어휘력을 높이고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지고 난 뒤 말하기-듣기-읽기-쓰기 순으로 영어를 배우면 독해력이 높아져서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다. 한국인 중에는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사람도 있다. 어휘력의 차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우면 좋다. 어휘력의 차이를 좁히는 일이다.
물론 영어사전을 외운다는 건 시대에 어긋난 영어공부 방법이고 시간낭비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요즘 시대에 누가 영어사전을 외워서 영어공부를 할 생각을 하겠는가? 게다가 요즘 영어사전 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묻고 싶겠지만, 영어사전 외우기는 영어를 잘하는 데 있어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영어공부의 목적을 뛰어넘어 영어사전을 통독하고 외우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넓은 시각을 가지게 해주는 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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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기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보내기도 하고, 영어로만 수업을 하는 영어 학원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하는 영어를 유치원 때부터 접한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도 되기 전에 알파벳을 다 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태어날 때부터 생활영어를 끊임없이 듣고 자란 외국 아이들과 달리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운다고 해서 그 실력이 얼마나 자랄 수 있을지는 아무도 확답할 수 없다. 잘 아는 동생 하나는 어릴 때 이집트, 아프리카, 케냐 등에서 살면서 13살이 되기 전에 5개 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실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80%의 언어를 잊어버렸다고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를 별로 쓸 일이 없으니까요."

우리가 학교, 학원, 동호회나 인강을 통해서 늘 듣고 배우는 게 영어지만, 정작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면 한마디 말 꺼내기가 어렵다.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표현들을 배운다기보다 독해와 문법 위주의 영어를 배우다 보니 몇 마디 대화 이상의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평소에 주로 대하는 단어의 범위가 얼마나 좁은지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 번씩 외국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할 때 아주 쉬운 어휘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면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야 되는데 '매운 것 좋아하니?'라는 질문을 해야 할 때 '맵다'라는 단어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매일 사용하고 자주 듣는 한국말은 잊어버리지 않고 뇌리에 박혀있지만, 학창 시절에 아무리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도 평소에 원활하게 사용하지 않으니까 순식간에 기억에서 잊혀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영어사전을 한 번 통독하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로 다가왔다. 알파벳 A부터 Z까지 죽 한 장씩 넘기면서 필수 어휘 1만 개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그에 연결된 숙어와 단어들의 의미까지 읽어가다 보니 굉장히 재미있고 모르는 부분들까지 배워나갈 수 있었다. 물론 한 번 훑어내려 간다고 해서 영어실력이 월등하게 상승된 것은 아니었지만 몇 번이고 외우고 반복해서 통독하다 보면 지금보다 더 큰 성장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대부분의 사전에는 학년별 습득해야 할 어휘가 표시되어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생 정도 수준이 되면 알아야 할 어휘의 수는 약 2000개이며, 고등학교는 3500개에서 4000개, 대학생과 사회초년생 수준에서 알아야 할 어휘가 약 4000개로 약 1만 개의 어휘가 있다. 사전에는 초, 중등생이 알아야 할 2000개의 어휘에 표시가 되어 있다. 그리고 고등학생 정도 수준이 되면 알아야 할 어휘 약 4000개에 표시가 되어 있고, 대학생에서 사회 초년생 정도가 알아야 할 어휘 4000개 정도에도 역시 표시가 되어 있다. 초, 중, 고등학교에서 배운 문법 체계에 사전에서 이야기하는 약 1만 개 정도의 단어만 외워두어도 외국의 고등학생들이 이야기하는 수준, 혹은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어휘를 사용해서 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관사나 정관사, 혹은 설명하기 애매한 문장을 해석하고 말하는 부분에서 문법적으로 얼마나 정확하게 다듬어졌느냐에 대해서는 더 많은 천착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영어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제2외국어로서의 영어)로 분류되므로 어느 정도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혹시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남아공에서 유학하는 어떤 한국인 부부의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영어를 전혀 못할 때 이민을 와서 영어를 가르치기가 쉽지 않았는데 쉬운 영어사전부터 암기하게 했더니 그다음부터 문법과 작문력이 굉장히 빨리 상승되어서 원어민과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할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단어 외우기 시험을 보더라도 마지막까지 1등을 놓치지 않더라는 이야기였다. 칼 같은 시간관리, 자기 관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교육하는 것을 꺼려하는 외국인들의 눈에도 두 아이들의 노력과 실력이 기특해서 이뻐해 주면서 공부를 가르친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시작점도 다르고 사전의 수준도 다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에 접근하는 접근방법에 있어서만큼은 동일하다는 점에서 '영어사전 외우기가 썩 나쁜 방법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고 안도가 되었다. 내가 아는 지인 한 명은 부모님을 따라 초등학교 6학년 때 남아공으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는데, 에티오피아에 서 대통령 통역까지 할 정도로 현지어를 잘하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들에게 영어는 일상생활의 언어일 뿐이었다.

사회적 성공이나 어학시험에서의 고득점이 목적이라면 영어사전 외우기는 답답하고 쓸모없는 구닥다리 공부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기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닌 평생 사용하게 될 언어가 영어라는 점에서 영어사전 외우기는 제법 좋은 영어공부 방법이 될 수 있다. 두껍고 어려워 보이는 영어사전을 통독한다고 하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만 사실 전혀 어렵지 않다. 사전에는 이미 필수 어휘가 다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천천히 페이지를 넘겨가며 필수 어휘에 밑줄을 긋기만 하면 된다. 하루에 30분 정도 시간을 투자하면 100~120페이지를 훑어보고 필수 어휘에 밑줄을 그어둘 수 있는데, 그렇게 한두 달 정도면 4,0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꺼운 영어사전도 마스터할 수 있다. 필수 어휘에 밑줄을 긋기가 끝나면 필수 어휘에서 파생된 단어들과 함께 공부하면 되는데 그때부터는 제법 영어사전 외우기에 불이 붙게 될 것이다. 영어사전을 한 번 통독했다는 뿌듯함, 모든 페이지에 형광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어서 나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만으로 굉장한 동기부여가 된다. 전혀 어렵지 않다. 다만 약간의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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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부든지 왕도는 없는 법이다. 그저 꾸준히, 묵묵하게,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자만이 성공의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처럼 영어사전을 한 번 통독해보는 것은 '올해는 영어공부 좀 마스터해볼까'하는 생각, 그 이상의 큰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 이전에 언어는 쉬워야 한다는 생각, 언어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 그 사실이 마음에 먼저 세워져야 할 것이다. 말에는 결국 온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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