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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대표 Feb 15. 2020

어떻게 사람을 얻는가

대학생 시절, 민석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늘 같이 다니던 친구였는데, 하루는 메세지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욕설이 오간 적이 있었다. 급기야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다가 1주일 가까이 말을 하지 않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그 친구가 왜 나한테 그토록 화를 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무슨 일로 그렇게까지 욕을 하면서 싸웠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내가 먼저 사과를 하고 둘이서 술을 마시면서 화해하긴 했다. 하지만 소심하고 쑥스러움을 잘 타던 민석이의 별명은 <여자>였기 때문에 그런 싸움이 일어났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메세지를 보다가 그 때 메세지가 나왔다. 주고 받은 메세지함에 민석이랑 나눈 대화가 있었다. '그 때 무슨 대화를 나눴길래 그렇게 싸웠지?' 문득 궁금해져서 메세지를 차근차근히 읽어봤다. 그리고 메세지 내용을 읽는 동안, 얼굴이 화끈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놀랍게도 이 친구는 나와 메세지를 주고 받으면서 처음부터 아주 차분하게 본인의 의견을 조목조목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것과 달리 나는 대뜸 민석이의 기분이 상할 만한 말과 험한 욕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렇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한 민석이에게 나는 '네가 속이 좁아서 이런 말도 못 듣는 것 아니냐' 하는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그런 식의 대화가 끝없이 이어지다가 결국 험한 말까지 오고 간 것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100% 나의 잘못이었고, 나의 실수였다.

나는 바로 민석이에게 전화를 해서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했다. 민석이는 그 때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나는 "언제라도 네가 원할 때 밥이든 커피든 대접하겠다. 무엇보다 그 때의 일을 잊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함께 다니던 다른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내가 이렇게 부족하고 멍청한데, 어떻게 너랑 민석이는 나같은 놈이랑 같이 놀아주냐? 진짜 고맙다." 하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정도 되니까 너랑 놀아주지, 아니면 누가 너랑 놀아주겠냐? 고마운 줄 알아라."


짖궂은 말이나 장난을 아무렇지 않게 하던, 둘도 없는 친구들이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결국은 늘 함께 해주던 친구들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내가 할 소리다." 하고 웃고 넘겼을 말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진심으로 친구들이 고마웠다. 나는 친구에게 "정말 그렇다. 너희들이 아니면 누가 나랑 놀아주겠냐? 진짜 고맙다." 하고 이야기했다. 

그 때부터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었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갈 때 내가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고, 밥을 먹을 때도 내 식판과 수저를 먼저 챙겨주었다. 무슨 일을 하던지 나를 먼저 배려해주었고, 나를 먼저 생각해주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너를 신경써주겠냐?" 하는 말과 함께. 친구들은 내 부족함을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보듬어 주었다. 지금은 모두 결혼해서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한번씩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아낌 없는 충고와 조언을 주는 멋진 친구들이다.


사람을 얻는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 속에서 얼마나 쉽게 사람을 잃어버리고 사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경험 속에서 내가 얼마나 속이 좁고 경솔한 사람인지도 발견하게 된다. 

언젠가 사촌동생을 만나러 대구에 갈 일이 있었다. 졸업을 앞둔 녀석이라서 밥이라도 한 끼 사주고 간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나 해야겠다 싶어서 만나러 간 것이었다. 

사촌동생을 만나서 식사를 하러 가는데 마침 횡단보도에 보행자 신호가 들어왔다.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택시 한 대가 손님을 태우고 보행자 신호가 들어온 횡단보도로 지나가려고 했다. 그 때, 어떤 남학생이 재빨리 뛰어와 택시 앞에 서서 본넷을 두 번 쾅쾅 두들기고는 성큼성큼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게 아닌가. 택시 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야 임마, 그거 조금 못 기다리냐?" 하고 소리쳤지만 그 남학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너가버렸다. 

횡단보도를 다 건너고 난 뒤에 사촌동생에게 물었다. 


"좀 전에 횡단보도에서 누가 더 잘못한 거 같아?"

"글쎄. 택시가 보행자 신호에 가려고 했으니까 택시가 잘못한 거 아닌가? 나는 그런 거 같은데."


사촌동생에게 이야기했다.


"잘못을 따지자면 택시기사가 잘못한 게 맞아. 보행자 신호가 들어왔고, 사람들이 건너려는 상황에서 택시가 가는 건 잘못된 거지. 사고가 나면 100% 택시 기사의 책임이야. 그런데 있잖아, 만약에 보행자가 길을 건너다가 사고가 났다고 예를 들어보자. 택시기사가 100% 잘못했기 때문에 보행자는 잘못의 책임이 전혀 없어. 그런데 '보행자 신호에서 왜 택시가 튀어나오지? 내가 먼저 건너는 게 맞아. 나는 잘못이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 건나다가 사고가 나서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다고 해보자. 그럼 결과적으로 누가 피해를 보니?"


어떤 상황 앞에서 내가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옳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스무살이 되어서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누구의 톡제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이 무척 좋았다. 성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지각이나 잡담 등으로 혼을 내는 사람이 없다는 게 꿈만 같았다. 어디까지나 마음껏,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어른으로서의 인정을 받는다는 게 이런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 매를 드는 사람도 없고, 영어단어를 외우지 않거나 공부하지 않는다고 주의를 주는 사람도 없어지지만,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는다는 것, 그리고 별볼일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면 모르는 세계였다. 그것은 어쩌면, 본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대단한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사람을 잃는다. 사람을 잃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그러나 누구나 을의 위치에 설 수 있고, 갑의 위치에도 설 수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은 진리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사람을 귀중하게 여겼다. 20대 때 나는 이 단순하고 놀라운 사실을 몰랐다. <사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이 말이 굉장히 놀라운 사실이라는 것을, 30대가 훌쩍 넘어가는 어느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무례함이란 약자가 강한 척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위대한 작가 에릭 호퍼Eric Hoffer의 말처럼,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과 정신의 힘이 약하다. 그리고 이는 곧 무례함으로 느껴진다. 이는 곧 약하거나 겸손해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한 마음의 내성을 가진 사람에게서 보여지는 모습을 겸손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겸손한 사람은 마음이 강하고 깊은 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사람을 얻을 수 있고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그런 경험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얻고, 내 편으로 만드느냐 하는 문제는 더 중요한 문제다. 사람을 잃는 것은 돈을 잃는 것과는 비견할 수 없이 심오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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