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는 사람들
앞서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 직업에 대한 이야기,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제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용을 기록하긴 했으나, 어쨌거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글쓰기에 대한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성장하고, 글쓰기를 통해 사색하며, 글쓰기를 통해 단단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당신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웬지 부럽다. 단어 하나하나가 소박하고 담백해서 쉽게 읽혀지는 느낌이다. 문맥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논리정연하기까지 하다.
"어쩜 저렇게 글을 잘 쓰지?"
"똑같은 글인데 왜 다를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글이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나서 적게는 일주일에 한 권, 많게는 일주일에 5권 정도의 책을 읽는 나는 지난 몇년동안 한 달에 50권 남짓한 책을 꾸준히 읽었다. 늘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서 읽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확실히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덕분에 세권의 책을 출간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책을 써오고 있으니 말이다.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책에 담긴 의미도 의미지만 담백한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 담백한 글을 쓰는 능력과 담백한 글인지 아닌지를 판가름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맛있는 글의 비밀
얼마 전 책을 한 권 빌렸다. 글쓰기의 철학(The Philosophy of Composition)이라는 제목을 가진 얇은 작법 에세이였는데, 글쓴이는 19세기 가장 독창적인 작가로 널리 알려진 에드거 엘런 포(Edgar Allan Poe)였다.
그 책에 등장하는 한 단락을 이 지면에 소개한다. 글에 관한 한 에드거 엘런 포의 성격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첫 문장은 활력이 더 필요하다. "서로 정 반대되는"은 불필요하고 "거기에는"도 마찬가지로 필요 없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장은 하나로 합쳐져야 적절하다. "~에 속하는 어떤 것"의 경우 '어떤~'으로 충분히 대체 가능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두드러지게"는 전체 어구가 다 불필요하다. '태어났으나'를 쓰지 않고 "출생되었으나"를 쓴 것은 전혀 정당화될 수가 없다. 네 번째 문장에서 "그리고"의 세 번 반복도 어색하다. '악명 높은 범죄와 우행'정도면 충분히 "대중의 이목을 끈 추문을 낳았던 일련의 범죄 그리고 우행"이 암시하는 모든 것을 표현할 것이다. 다섯 번째 문장도 당연히 줄여야 할 터인데, 현재로는 의도하지 않은 불쾌한 조롱을 담고 있기도 하다. 또 "지적 능력" 대신 '지성'이면 충분할 것이고, 그(여섯 번째)문장도 다른 식으로 줄여 쓰는 것이 더 득이 될 것이다.
-글쓰기의 철학 114p, 에드거 엘런 포, 시공사
에드거 엘런 포는 아주 훌륭한 작가다. 그의 글은 흠잡을 데 없이 단순하며 아름답다. 그렇게 따지고 본다면 글쓰기는 깊게 파고 들면 들수록 어렵고 힘든 일이다. 결과만 중시하다 보면 그렇다. 그러나 상대방과 말을 할 때 머릿속으로 깊게 생각하면서 (어휘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지 않는가? 조리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서툴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엘런 포처럼 '정당화'를 따져가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으며, 문법적 오류를 범하는 부분을 문제삼는 사람도 없다. 의사표현만 되면 그만이다.
맛있는 글은 말과 같은 글이다.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글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담백하다. 마음에 없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다 보면 표절시비에 휘말리기 쉽다. 내가 쓰는 글에 내 마음을 담아야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담아서 무엇하겠는가?
마음을 담기 위해서는 오랜 훈련, 즉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첫 책을 쓰는 데 무려 5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쓰는 데 걸린 시간은 한 달이나 보름정도였다. 일주일만에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써둔 것도 있다. 출간되지 않은 원고까지 따지면 예닐곱 분량의 원고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3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지난 5년간 읽은 책만 2,000권이 훨씬 넘는다. 30번 이상의 퇴고를 거쳤고,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다가 지독한 몸살이 걸려서 앓아 누운 적도 있다. 숱한 고생을 통해 조금씩 만들어진 마음을 글로 옮겨서 책으로 엮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마음을 담아, 소망을 담아
스티븐 킹은 그의 저서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글쓰기에 대한 책에는 대개 헛소리가 가득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 글쓰기란 마음을 옮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사가 어떻고, 접속사가 어떻고 하는 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팝송을 들으면서 글을 쓰기도 하고, 아내와 심하게 다투고 난 뒤 '이때다' 싶어 앙앙거리는 아들과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아내를 집에 둔 채 잽싸게 노트북 가방을 들고 근처 카페로 도망가서 글을 쓰기도 한다. 현재의 상황과 상관 없이 글쓰기란 마음을 전달하는 매개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영구성의 특징이 있다. 때문에 지금 내가 가진 마음과 상관 없이 독자로 하여금 전달하고 싶은 마음만 전달할 수 있다면 글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기 전, 마음을 연단하는 시간을 갖는 건 필요하다. 스티븐 킹의 말처럼 '경박한 자세로 글을 쓰는 것'은 곤란하다. 어떤 글은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거나 위로가 되기도 하고, 영혼을 맑게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글은 상처가 되고, 어떤 글은 생채기를 내며, 어떤 글은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글은 결코 '경박한 자세를 가진 사람'이 활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