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1

by 전대표

익숙함이 모든 사람을 위한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때가 있었다.

단 한번도 햇빛의 따뜻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햇빛은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 따가움만을 느끼게 해주는 불친절한 선생 같았다. 곡식을 자라게 하고, 만물을 따뜻하게 비춰주며, 새로운 소망과 감사를 전해주는 아침햇살조차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불청객이었다.

아침이 어둑시근할 수도 있다고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시작은 약간의 따끔거림이었다. 그저 미미한 간지러움을 동반한,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의 따끔거림이었다. 그 따끔한 느낌은 용택이 처음으로 고슬고슬한 쌀밥의 따뜻함을 느끼던 때에도, 새로 산 고무신을 맨발로 신고 뛰어 놀다가 뒤꿈치가 까져서 절뚝거리며 집에 돌아올 때에도 느껴지던 아픔이었다.

"연가시 때문이라 카데요."

"연가시? 그게 뭔데?"

"거 벌레말요. 시시 기어다니는 거."

"그게 뭔 상관이고?"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마뜩찮아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곤히 잠든 자식들이 깰까봐 조근조근 이야기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연가시가 오줌을 싸면, 그게 눈에 들어가서 백테가 낀다 하데요."

"마 고마 됐다. 동네 아지매들 씨부리쌌는거 그대로 믿으마 그게 빙시지 인간이가?"

"그래도 우엡니까? 그렇다 카이 그런갑다 하지요."

손사래를 치며 돌아앉는 아버지의 드은 웬지 모를 어두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아버지의 한숨소리와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용택의 볼을 스치는 것을 느끼며, 용택은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동네에서 용택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다. 일단 싸움만 났다 하면 아이들은 용택이를 찾았다. 매사에 진중하고 사리분별이 빨랐던 용택은 동네 아이들에게 있어서 주먹대장 이상의 권한을 갖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

헐레벌떡 뛰어오는 덕배에게 용택이 물었다. 용택이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덕배가 숨을 헐떡이며 이야기했다.

"칠삼이가 미숙이 배를 때려삤다. 즈그 엄마하고 아빠한테 이른다고 난리다."

"배를? 왜?"

"자세한 건 나도 모르는데, 미숙이가 여자애들이랑 고무줄놀이하고 있는데 가서 놀렸는갑드라. 미숙이가 고마 삐쳐가지고 "너거 아부지 똥지게 지고 다니제? 니한테서 똥냄새 나는 이유가 있었네."하이깐 열받아가꼬 들이받아삣다."

"칠삼이는? 칠삼이는 어디 있는데?"

"그거는 모르겠고, 강둑 따라 지 혼자 내려가드라. 불러봤는데 대답도 없다."

"알았다. 칠삼이는 내가 찾아 볼테니까 미숙이 잘 챙기봐주라."

까칫한 느낌이 남아 있는 고무신을 꺾어 신고 용택은 칠삼이가 걸어간 그 길을 뒤따라 걸어갔다. 가을이었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용택은 코스모스를 조금 꺾어서 꽃다발을 만들었다. 작은 손에 흙이 묻었다. 바지에 비벼 흙을 털어낸 뒤, 용택은 코스모스 다발을 쥐고 종종걸음으로 칠삼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용택이 도착한 곳은 태화강이 내려다보이는 야산 둔덕에 위치한 야트막하고 작은 무덤이었다. 칠삼이는 거기 엎드려 있었다.

"칠삼아, 내다."

용택이 소리쳤다. 그제서야 용택을 발견한 칠삼이는 용택을 보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용택은 손으로 엮은 코스모스 다발을 칠삼이에게 건네주며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칠삼이는 용택을 끌어안고 울며 소리쳤다.

"우리 아부지 인자 똥지게 안진다! 인자 그거 안한다!"

"내 다 안다. 미숙이는 몰라서 그랬는갑다."

"용택아, 내 엄마 보고 싶다. 엄마 보고 싶다!"

용택을 끌어안고 울며 소리치는 칠삼이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