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인연을 정리한 경험이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인연이었으나,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상식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만 모인 곳에서 더 이상 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부정적인 사람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 경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부정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으나, 대다수가 말을 함부로 하고 경우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함에도 죄책감이 없었다. 폐쇄적이고 고립된 곳이었다. 과감히 인연을 정리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들 중에서는 부자가 되기 위한 멘토가 되어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에게 돈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죄악과도 같았다.
돈과는 상관없는 20대, 30대를 보냈다. 보란 듯이 성공해보겠노라고 이것저것 시도는 해봤지만, 마음의 중심에서 돈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다. 성향 검사를 해봐도 '승부욕'이나 '경쟁심리'같은 부분은 완전히 제로에 가까웠다. 희생정신이나 봉사정신과 같은 정신적인 부분에서 평균을 월등히 뛰어넘는 수치가 나왔다. 이렇다 할 성공을 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돈.
돈이라는 주제는 참 무겁다.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고, 자주 이야기하면 인격이 가벼워 보인다는 느낌 역시 준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난을 두려워하면서도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라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그랬다. 결혼 초기에 나는 아내에게 '우리가 가난할 수 있는 것은 아주 감사한 일이다.'라고 이야기한 기억이 있다. 물론 우리는 가난하지 않았다. 오래된 빌라이긴 했지만 방이 3칸 있는 집을 매매로 구했고, 한 칸은 지금까지 사색의 공간인 서재로 사용하고 있다. 회사생활을 했기에 월급은 꼬박꼬박 나왔고, 차도 2대가 있었으며, 육류를 좋아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고기를 구워 먹을 정도였다. 사진에 오랜 취미가 있었기에 500만 원짜리 카메라를 일시불로 현금 결제해서 출사를 다녔다. 평범한 삶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난은 노숙하고 구걸하는 삶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 현실이 만족스럽다고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그랬으니 아내에게 '가난한 것도 감사한 일이다.'라고 이야기를 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런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삶에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금요일까지 일하는 일상.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는 그런 하루. 늘 똑같은 일상은 매너리즘에 빠지게 했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 인생에 대단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에서야 비로소 현실이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 깨달음이 찾아오고 난 뒤에도 오랜 시간을 방황했다. 최근 들어서는 돈에 관련한 책을 사서 읽고, 심리학과 경제학에 관련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책에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돈에는 인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3번째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스노우폭스]였다. 이렇다 할 관계는 없지만, 김승호 회장이 설립한 회사의 출판사였다는 점에서 왠지 모를 자부심도 생겼다. 스노우폭스그룹 김승호 회장은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다. 돈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돈은 무겁고 어두운 공간에 있는 그 무엇이었다.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고, 죄악시되는 그 무엇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돈은 인격체였고, 겸비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선물이었다. 그래서 이 책의 첫 장에서는 '돈은 인격체다(돈의 속성 14p, 김승호, 스노우폭스 출판사)'라는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돈은 인격체(person)다. 돈이 사람처럼 사고와 감정과 의지를 지닌 인격체라고 하면 누군가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인격체란 스스로 생각하고 자아를 가진 개별적 실체를 뜻하기 때문이다. 돈은 스스로 생각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으며 단지 숫자로 이뤄졌을 뿐이니 왠지 억지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에서는 회사도 인격을 부여받는다. 바로 법인(法人, legal person)이다. 여기에는 인(人)이 붙는다. 법인은 사람과 동일하게 소송을 하고 소송을 당하기도 하며 하나의 주체처럼 개인과 싸우거나 협의하거나 협력할 수 있다.
-돈의 속성 14p, 김승호, 스노우폭스 출판사
직업 특성상 다양한 책을 읽는다. 처음 독서를 시작할 때는 인성교육과 자기 계발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직업이 교사, 강사였기 때문이다. 독서의 수준이 조금 올라간 뒤에는 책을 출간했고, 그 과정에서 고전 인문학을 주로 접했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난 뒤에 읽은 책이 돈에 관련된 책이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다.
부자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나 역시 혼자 생각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책의 저자인 김승호 회장은 본인을 두고 '최상위 부자'라고 이야기한다. '그 정도로 무슨 최상위 부자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책을 읽고 나니 확실히 최상위 부자라고 할 수 있겠다는 결정적인 내면의 흐름이 있었다.
현대인들은 삶의 가치를 부의 축적보다 중요시 여긴다. 나 역시 삶의 가치가 부의 축적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의 진의는 항상 검증을 받아야 한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대개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무엇이 삶의 가치인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 둘째, 가난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셋째, 자신이 부자가 되리라는 자신이 없다.
-돈의 속성 95p, 김승호, 스노우폭스 출판사
책에서 본 내용 중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다. 30주년 결혼 기념 여행을 떠났는데, 그야말로 초호화 여행이었다. 함께 여행한 사람들 역시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쇼핑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경험을 소중하게 여기고, 로컬 행사에 참여하면서 추억을 만드는 것에 의미를 둔다는 것이었다. 부자와 졸부를 나누는 기준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유튜브 영상이나 그의 책에서 이야기하듯, 그는 가장 밑바닥 가난에서 시작해서 최상위 부자로 등극한 케이스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다양한 경험치가 쌓여 가난에서 부자로 올라간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 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이 단연 돋보였던 이유는, 상당한 철학적 지식과 내공, 경제에 대한 기본 이해를 바탕으로 돈에 대한 실질적인 방향을 잡아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대학생 시절,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다.
"준우야. 너네 집에는 얼마 있냐?"
"잘 모르겠는데."
"우리 집은 2억 정도 있는 것 같다. 집, 자동차, 부모님 월급, 그리고..."
당시엔 그런 질문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껄끄러운,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동대문으로 가서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서울에서도 제법 자리를 잡고 사장 노릇을 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퇴사를 고민했다. 회사생활은 지긋지긋했다. 그럼에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처럼 현실에 수긍하면서도 '돈은 종이에 불과해! 돈으로 행복은 살 수 없어! 돈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야!'하고 이야기했다. 분명 돈 때문에 가족이 힘들어하고,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며, 자식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인간이 생각하는 겸손이라는 틀, 그 안에 감추어진 모순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지 모른다.
지금도 돈을 이야기하기란 참 어렵다. 함부로 돈을 이야기하는 게 적성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순간을 상당히 많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