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간, 위대한 개츠비

by 전대표

[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구매했다. 20대 중반이 한참 넘어서야 겨우 완독 했으니, 독서에 흥미가 있어서 구매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이유는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표지가 예뻐서 구매했거나, 작고 앙증맞은 사이즈였기에 구매했거나. 예쁜 표지와는 달리 내용은 어려웠다.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앞부분만 조금 읽다 포기했다.


당시 같은 독서실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있었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던 그 친구는 의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의사가 되어 있다. 모르는 게 없는 친구였다. 나보다는 낫겠지, 싶어 [위대한 개츠비]를 건네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진짜 재미없네. 뭐 이런 책이 다 있냐?" 당시 내 주변엔 위대한 개츠비를 읽을 정도로 수준 높은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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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를 처음 정독한 것이 2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선 어느 시점이었다. 그때도 스토리 그 자체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나는 미혼이었다. 한국 정서에 비추어봤을 때 삼각관계 구도의 사랑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유부녀와 미혼남의 삼각관계라니. 그럼에도 뭔가 느낌이 달랐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 훌륭한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 다시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 몇 권의 책을 써내고, 소설을 집필할 무렵이 되어서야 읽게 된 위대한 개츠비는 확연히 달랐다. '이보다 매혹적인 소설이 있을까' 싶은 소설로 다가왔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서에도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극 중에서 주인공에게 다가온 한 사람은 그가 위대한 개츠비를 3번 이상 읽은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그에게 친구가 되어줄 것을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마음이 내키기만 하면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부분을 오랫동안 읽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는데, 단 한 번도 실망을 맛본 적이 없었을 만큼 단 한 페이지도 시시한 페이지는 없었다. 이렇게 멋진 소설이 또 있을까 싶었다.

-상실의 시대 58p,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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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위대한 개츠비가 무척이나 매혹적인 소설로 와닿을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하고 신선한 스토리에 있어서라기보다는 탁월하다 못해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한 상황 묘사와 감정 분석에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아주 아름답게 쓰인 소설이었다. 단순하게 느껴질 수 있을 만한 스토리를 상당히 뛰어난 작품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것은, 무척이나 섬세한 작가의 문장력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잠시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바깥 풍경이 너무 로맨틱하지 뭐야. 잔디 위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는데 아마 쿠너드나 화이트 스타 선박회사의 배를 따라 이 먼 곳까지 건너온 나이팅게일 같아. 그 새가 울면서 날아가더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위대한 개츠비 37p, 스콧 피츠제럴드, 책만드는집


올가니카의 회장이며 [7막 7장]으로 널리 알려진 홍정욱 전 국회의원의 저서에도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할 때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신 작품이 바로 이 <위대한 개츠비>였다고 한다. 한 여인에게 지극한 사랑을 바친 한 남자의 열정, 일생을 건 사랑이 우발적인 사고 때문에 가치 없는 죽음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을 때의 허무, 그의 죽음 이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남편과 식사를 즐기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의 부박한 영혼, 거기에서 느껴지는 인생의 덧없음.

-7막7장 43p, 홍정욱, 도서출판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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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건 사랑을 한 남자, 그에 대비되는 여자의 부박한 영혼, 인생의 덧없음. 이 문장은 내게 무척 강한 인상을 남겼다. <위대한 개츠비>의 핵심 스토리를 담고 있는 문장이었기에,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말이기도 했다. 품위, 품격, 겸손, 열정을 모두 담으면 개츠비라는 인물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거기에 부박함, 천박함, 어리석음, 영혼의 파괴와 같은 단어를 담으면 데이지라는 여성상이 만들어졌다.


극 중에는 톰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데이지의 남편이자 탐욕과 어리석음, 부도덕한 관념으로 가득 찬 그는 개츠비와 완전히 대조되는 인물인 동시에 모든 것을 갖춘 남자이기도 하다. 인간의 가장 탐욕적이고 어리석은 면만을 골고루 갖춘 톰은, 데이지 외에 또 다른 연민을 품던 여자의 죽음과 그에 얽힌 모든 책임에 대해, 개츠비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다.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망막한 열정과 사랑은 우리에게 희생과 올바른 선택의 가치를 알게 한다는 점이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과 같은 결정적인 순간에 있어서, 인간은 누구나 나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순수한 열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 내가 받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으로 인해 삶의 상당수가 하릴없이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기꺼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승화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만든다. 위대한 개츠비가, 진정 위대한 인간상인 이유다.


어른이 되었다고 느껴질 무렵부터, 나는 내가 어떤 면에서 톰과 같은 성향을 가진 인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동시에, 개츠비와 같은 남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시대적 배경, 언어, 문화, 모든 것이 다르지만, 개츠비라는 인물은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기품과 겸손을 두루 갖춘 훌륭한 인물이었다. 개츠비는 나로 하여금 진정으로 위대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해 준 셈이다.


나는 거기에 앉아 옛 미지의 세계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개츠비가 데이지의 집 부둣가에서 처음으로 그 푸른 불빛을 보았을 때, 그 놀라움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 파란 잔디까지 먼 길을 걸어왔고, 이제 그의 꿈은 바로 코앞에 다가와 도저히 놓칠래야 놓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는 그 꿈이, 이미 대륙의 어두운 평원이, 밤하늘 아래 넘실거리는 도시 저편의 망막한 어둠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을 몰랐던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 291p, 스콧 피츠제럴드, 책만드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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