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5, 6년간 연락이 되지 않던 지인이 나를 보러 왔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제법 먼 곳에서 왔다. 이전에도 그랬다. 나를 보기 위해 먼 거리에서 와 주었고, 차만 한 잔 마시고 다시 돌아가곤 했다. 훌륭한 스펙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씨는 한결 같았다. 제법 통하는 게 많았던 분이었기에 친누나처럼 대했고, 그 분도 나를 좋은 친구 대하듯이 대해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함을 느끼곤 했다.
딱히 무슨 도움을 얻기 위해 나를 보러 온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던 때에도 마음을 활짝 열고 나를 대해주었다. 그 분의 주위에는 늘 사람이 넘쳤다. 그리고 그들 중 대다수가 상당한 사회적 재력과 능력을 가진 분들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최근에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20대 취준생 여성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할때까지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은 경력을 가진 아가씨였다. 덕분에 대학에 입학한 뒤로부터는 용돈을 벌어서 썼고, 자신의 힘으로 해외여행도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조직에서 마다할 리 없는 인재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 아가씨가 웃는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시종일관 굳어있는 표정, 일자로 꾹 다문 입술, 의심의 눈초리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전혀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다. 굉장히 불편하고 어색한 자리였다. 물론 그 아가씨는 나를 잘 모른다. 나도 그 아가씨를 잘 모른다. 그의 이력서, 말투, 표정을 통해 대략적인 정보를 판단할 뿐이었다. 내가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심리학에 기반한 상담과 면담, 컨설팅 사업, 강의를 해왔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섣부른 오해나 판단이라고 오해할 독자들도 있었으리라.
[초성장 독서법]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리고 세계초일류작가인 말콤 글래드웰이 본인의 저서인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사람의 성장곡선은 어느 시점에서 급격한 변화를 띠기 시작한다. 성장곡선의 단계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아래로 급강하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 공통적으로 찾아오는 성장곡선에서 상당히 큰 폭으로 성장하거나 혹은 지구의 중심 핵까지 추락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상대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예수님과 12제자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루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었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나 레이 찰스ray charles처럼 뛰어난 음악적 감각에 시대적 기회를 타고난 사람이 아닌 바에야,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맹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대개 정해져 있다. 하물며 2,000년 전 문명이라고는 가죽으로 만든 물병밖에 없던 시대에 맹인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그를 두고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저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은 누구의 잘못 때문입니까? 저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저 사람의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예수님이 둘 중에 하나를 대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지혜와 지식이 인간의 수준과 같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은 저 사람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기-승-전-기독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는 인간관계의 90%를 설명해줄 수 있는 상당한 지혜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저 사람은 왜 맹인입니까?"
이 말 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숨어 있다.
"우리는 저 사람보다 낫습니다. 우리는 건강한 육체를 갖고 있습니다. 맹인도 아니지요. 지금이야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 성공적인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선택함을 받아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저 사람과 다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저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은 저 사람의 죄도, 부모의 죄 때문도 아니다."
이 말 속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숨어 있다.
"너희들이나 저 사람이나 똑같은 인간이다. 모두 같다. 너희들이 결코 나은 자들이라서 제자로 선택받은 게 아니다."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에게 다가왔을 때 꾸짖은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모두 도망가버렸다는 사실을, 그 중 한 명의 제자는 예수님을 팔아버리고 죄책감에 자살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엄청난 역사와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던 다른 한 명의 제자는 저주를 퍼부으며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조직사회일수록 더욱 그렇다. 생각과 가치관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사회에서 별로 원하지도 않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가는 일이 마냥 재미있는 일로 여겨질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인간관계를 지혜롭게 유지해내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들 중 대다수는 상당히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게다가 겸손하다. 상대의 불평과 질책에 죄송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고,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가 습관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놀랍게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 대다수는 '남들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내가 나아야 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나를 발견하니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관계가 상당히 어렵다. 당연한 사실 아닌가? 나보다 못한 사람과 있는데 어떻게 평안할 수 있는가? 나는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성향은 모두 달랐다. 말수가 적은 사람도 있고, 쉬지 않고 재잘재잘하는 사람도 있다. 키가 큰 사람도 있고 작은 사람도 있다. 동일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상대방보다 내가 낫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물론 입 밖으로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하고 말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정치인들, 혹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을 세밀하게 파고 들어가보면, 상대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발견해낼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숨어있는 그 교만, 그 교만을 뽑아내서 버리는 순간, 인간관계에서 오는 대다수의 문제점이 해결된다.
확실히 인간관계는 어렵다. 인간이 개입되는 순간 모든 일은 복잡하고 힘들고 귀찮은 과정으로 변한다. 혼자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이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상대방보다 낫다는 마음을 버리는 순간,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상당히 큰 폭으로 감소된다. 인간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먼저 내가 상대방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버리는 연습을 해보자. 혹시 아는가? 당신이 다음 시대의 리더가 될 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