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지인을 만나러 마산에 다녀왔다.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이었다. 이전에 근무하던 국제 대안학교는 각 지역마다 지부가 있었고 교사들도 지역마다 배분되어 있었는데, 지인은 마산지역에 위치한 대안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사였다. 당시 영어교사였던 그분은 탁월한 교습능력으로 전국에 위치한 대안학교에 초청을 받아 다니곤 했었는데, 추가 소득을 벌기 위해서 과외를 시작했다가 오픈하자마자 학부모들이 몰리는 바람에 2,3개월 대기 순번이 생길 정도로 일을 잘하는 분이었다. 같은 조직에 소속된 교사였다고 해서 잘 알게 된 것은 아니었고, 처음엔 그저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분을 알게 된 것은 조금 재미있는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공부를 제법 잘하던 사촌동생이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획일화된 일반학교에 입학하는 것보다 내가 근무하던 대안학교에 입학을 시키면 자신의 꿈을 좀 더 펼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각 지역마다 입학 여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그분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다음 학기에 신입생 모집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분이 "선생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하고 나에게 질문을 했다.
"전준우입니다."
"아, 그 뮤지컬 하셨던 잘생긴 선생님."
거기서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다.
살다 보면 성향, 소위 말해서 MBTI의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되기 마련이다. 그분이 그랬다. 그분과 나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부터 서로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고, 벽이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중에는 부부동반으로 만나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는데,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도 다시 만나면 금세 편안한 사이가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오래간만에 만난 그분은 작은 사무실을 하나 얻어서 자신의 독자적인 사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코로나 이전만 하더라도 전국 학교를 다니면서 전 학년이 함께 동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최대 4,000명의 학생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곤 했다. 코로나가 발생한 뒤에는 작은 소그룹으로 교육하거나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작은 도서관과 서점을 운영해볼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신용도는 그 사람의 인격에 비례한다.
-부자의 그릇 59P, 다산출판사
젊은 나이에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 뒤 자신의 분야에 있어서 차곡차곡 경험과 실력을 쌓아가는 그분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늘 실패와 어려움만 당해온 내 인생에, 친누나처럼 느껴지는 그분의 도전과 열정은 항상 큰 귀감이 되어주곤 했다. 그러는 동안 언제까지 나는 실패와 어려움에만 익숙해져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은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어느 경험에 의해 사라지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그분을 뵈러 마산에 가는 길에 발견한 작은 깨달음이었다.
마산으로 가는 톨게이트를 지나기 전, 우연히 '뚜껑이 열린' 초록색 포르셰를 발견했다. 포르셰가 신기하거나 놀라웠던 건 아니었다. 해가 지날수록 국내에 유통되는 포르셰의 운행대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구매 연령층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경차처럼 흔히 볼 수 있는 차는 아니지만, 자동차에 별다른 흥미가 없는 나에게 포르셰는 경차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포르셰는커녕 롤스로이스가 옆을 지나가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 포르셰는 조금 달랐다. 뚜껑이 날아간 포르셰였기에 젊고 잘생긴 남자가 예쁜 애인과 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머리가 훤히 벗겨진, 흰 수염 할아버지가 할머니랑 타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일흔은 족히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알이 동그란 안경을 쓰고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좋은 차, 좋은 집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거기까지였다. 인생에서 대단한 성취를 바라는 건 아니었기에, 스포츠카나 슈퍼카에 대한 욕망도 없다. 반면에 60대, 혹은 그 이상의 인생을 살아본 사람이 모는 스포츠카는 분명히 다른 힘이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소위 말하는 '객기'로 좋은 차를 탈 수도 있다. 사업이 승승장구하거나 하는 일이 잘 되면 좋은 집에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여유, 풍족함을 언제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젊은 시절에 가진 열정과 에너지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지만, 오랫동안 꾸준히 사업을 유지시키면서 노년에도 큰 어려움 없이 사업을 성장시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경험과 인맥을 통해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느 지인은 30대 초반 무렵 200억대의 연 매출을 올리는 식품회사를 운영했는데, 60대인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월 순이익 1억이 훌쩍 넘어가는 사업체를 운영하던 지인은 50이 넘어가면서 사업체가 무너지는 바람에 상당히 큰 어려움을 당했다. 반면에 젊은 시절 평범한 직장인으로 근무하며 하루하루 생활하던 어느 지인은 일흔을 바라보는 지금 엄청난 규모의 사업을 일구어내면서 상당히 큰 부자가 되어 있다.
사람마다 가진 달란트가 다르고 정해진 운명의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인생이 가장 훌륭한 인생이고 아름다운 인생이다 하고 콕 집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경험들을 통해 마음에 깊게 새겨지는 사실 하나가 있었다. 젊었을 때의 성공이 반드시 노년의 성공을 보장해줄 수는 없고, 젊었을 때의 고난과 실패가 반드시 노년의 실패와 고난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실패와 성공의 과정은 인격의 그릇이라는 범위 안에서 한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발생한 개인적인 어려움 때문에 며칠 동안 상당한 슬픔 속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젊었을 때의 고난과 실패는 노년의 실패와 고난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마자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려움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는데, 그들을 통해 상당히 큰 도움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대개 교수, 그룹의 총수, 혹은 고위직 공무원들이었는데, 어려움을 통해 만들어진 인격의 그릇을 통해 많은 도움을 입을 수 있었다. 어려움은 결코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접 발견하게 된 셈이었다.
마산에서 자신의 사업을 키워가는 지인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2016년 7월이었다. 그리고 2022년 2월이 되어 다시 만났다. 우리는 비슷한 형태의 어려움을 만났고, 그렇게 경험했던 어려움만큼의 회복탄력성을 갖추고 있는 서로를 발견했다. 어려움은 어려움으로 끝나는 게 아닌, 인격의 그릇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을 발견하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