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o Ludens를 꿈꾸며

by 전대표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종종 인터넷 서점 판매 순위를 검토한다. 가장 판매고가 높은 책들의 대다수가 유명 강사이거나 주식, 부동산 투자에 관련된 책이다. 50년 전, 30년 전 서점에서 판매고가 가장 높은 책들을 선별하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시대는 변화하고 있으며, 출간되는 책들의 종류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이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라고 이야기한 소설가 라나와 블랙웰 Lanawa blackwell의 말처럼, 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와있는 도서의 대부분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 수준과 비슷하다고 이해한다면 다소 섣부른 판단이 될까. 모든 사람은 늙는다. 사고의 깊이를 넓혀가는 과정을 넓히지 않는다면 30년 뒤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 리스트는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복잡하고 난해한 생각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가는 사고의 물결을 거치지 않는다면 생각의 수준은 미미한 수준으로밖에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드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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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결코 훌륭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되지 않지만, 앞으로 마주하게 될 시간은 이전에 흘려보낸 시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된 한 계기가 인생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특별하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그때의 시점 이후 인간관계나 비즈니스 구축에 있어서 새로운 만남과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 순간이 있었다. 2021년 7월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단 하루도 쉼 없이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해왔다. 때로는 감사했으며 행복했지만, 때로는 이대로 사는 게 맞는 건지에 대한 의문점이 들곤 했다. 독서, 사색, 운동은 습관이 되어 있었으나 그 외에는 큰 변화가 없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Homo Ludens의 삶을 추구하는 나에게 Homo sapiens로서의 삶은 상당히 지루하고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라이프 스타일, 인간관계, 일과 삶의 균형을 재정립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막연히 알고 지내기만 하던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지속적인 도움이 되거나 훌륭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들만 곁에 두기로 결정하게 된 시기였다. 이후에 일과 삶의 구분을 정해놓고 나누어서 집중하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미미한 변화였으나, 시간관리부터 인간관계의 정리까지 조금씩 성장해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Homo Ludens는 삶을 사랑하고, 삶에 찾아오는 모든 과정들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작은 변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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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Homo는 현존하는 인류와 그 직계 조상류를 의미한다. 사람과 Species of Human being를 의미하는 단어 호미니데Hominidae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종류를 의미하며 흔히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과 같은 대형 유인원을 뜻한다. 딱히 이렇다 할 생각의 전환이나 사고의 흐름을 통한 성장과 변화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부류를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호모 사피엔스 Homo Sapiens는 현존하는 인간류를 이야기한다. sapiens는 슬기롭다 wisdom라는 뜻의 라틴어를 의미하는데, 지성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동물류 Hominidae와는 다소 구별되는 뜻을 갖고 있다.


지혜로운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좀 더 나아가면 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만들어진다. '공경받는 귀족 계급은 즐거움과 겸양만이 행동화하는 고상한 영역에서 산다.'는 말이 있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 짓는 말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가지고 가야 할 삶의 지침, 즉 호모 루덴스의 가치와 철학을 이야기한다. Ludens는 놀이, 장난, 경기와 같은 뜻을 지닌 Ludus에서 비롯되는 단어인데, 놀이, 장난을 의미하는 Ludus에 글자를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라는 뜻의 Litterarum을 붙이면 학교 Ludus Litterarum가 된다. 즉 학교를 의미하는 라틴어 Ludus Litterarum의 진짜 의미는 재미있게 놀이하듯이 글자를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라는 뜻이다. Homo가 Ludus Litterarum에서 배워서 깨우친 것을 일상생활에서 즐겁게 써먹을 수만 있다면 Homo Sapiens에 머물지 않고 Homo Ludens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깊게 생각을 진행시켜나가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과 놀이의 경계선 때문이다. 나는 일을 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성향이라 조직생활을 할 때나 소소한 사업을 할 때나 일 자체에 대해 별다른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구조가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 사회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혼자 독서하고 사색하며 생활하는 것만큼 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대충 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겁게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는 속담의 절반은 틀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놀이는 즐겁게 할 수 있지만, 일을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바에야 일을 놀이처럼 즐겁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일 work과 놀이 play의 사전적 개념은 상충되는 게 거의 없다. 어릴 때 교육으로 습득된 일과 놀이의 경계선은 나이가 들어서도 일과 놀이의 경계를 나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는 놀이의 개념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조직사회에서 필요한 경청, 인내, 겸손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즐겁게 써먹을 수 있는 정보와 지식과는 꽤 거리가 멀다. 오직 인간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초적인 정보만을 가르쳐줄 뿐이다. 가르치는 능력이 없거나 타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만한 능력이 부족한 교사들을 만나면 학교생활은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어두운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자의가 아닌 바에야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는 과정, 즉 일을 놀이처럼 즐겁게 한다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비단 학교만의 문제도 아니다. 변화를 찾아볼 수 없는 공산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유일한 장점이기도 한 특징 중 하나가 투자 대비 결괏값이 동일하다는 점이다. 즐겁게 일한 사람도 100을 주고 대충 일한 사람도 100을 주는 식으로 투자 대비 성과에 대한 결괏값이 똑같다. 대부분의 종교조직이 공산주의 사회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봤을 때, 노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특수성을 배제하면 놀이의 개념은 공산주의 문화에서는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일과 놀이는 이렇게 뚜렷한 경계선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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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경우에는 예외라는 게 존재하기 마련이다.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내게 연극을 가르쳐주신 추정화 선생님은 “연기를 할 때 비로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마치 세상에서 해탈한 사람인 마냥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평생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연구하고 무대 위에서 다양한 희로애락을 풀어내는 연극배우로서의 삶이 무척 고무적으로 느껴졌던 것 또한 사실이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평생 함께 할 놀이를 찾는 것과도 같으므로,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큰 즐거움과 소망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월 1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을 받고 음악하는 지인들과 동고동락하는 한 지인은 평생 직업을 찾았다며 그렇게 즐거워할 수 없었다.

당시 내게 가르침을 주신 연출가 선생님과 또 다른 지인처럼, 내게 있어서 글을 쓰는 것은 일 work이지만 놀이 play에 가깝다. 글 속에는 나의 생각이 녹아있고 관점이 녹아있다는 특징도 있지만, 경청하는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요즘 시대에 평소 하지 못했던 수많은 마음속 이야기들을 마음껏 글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즐거운 놀이, 혹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한 분야였다. 무엇보다 글쓰기는 생각하는 즐거움이 무엇보다 큰 것임을 알게 해 준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아가기엔 세상엔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결혼, 육아, 변화를 찾아볼 수 없는 지루한 직장생활, 위태로운 사업을 영위해나가는 모든 것은 적성에 맞거나 능력을 활용하기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일종의 의무감으로 진행하는 일들에 가깝다.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하는 수준의 자영업자들, 억지로 하루하루 출근하는 직장인이나 일용직 노동자에게는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인 논리일 수 있다. 그러나 일과 놀이의 경계가 허물어질수록 세상은 지금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그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일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며,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다. homo sapiens에 머무르면서 숙제처럼 살 것인지, homo ludens의 삶을 동경하며 축제하듯 살 것인지 결정하는 키는 우리의 손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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