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 되면 서재에 틀어박혀서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화장실을 가거나 느지막한 식사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서재 컴퓨터 앞에 앉아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라도 간 날에는 더할 나위 없이 시간을 확장해서 쓴다. 가령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봤다면, 아내와 아들이 없는 날에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밤 11시까지 줄기차게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는 것이다.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간간이 스트레칭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18시간 가까이 영상을 시청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그 속에서 상당한 쾌감과 즐거움을 얻는다.
나는 생각하는 즐거움을 안다. 평소에는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서재에 꼼짝없이 앉아서 10시간 넘게 독서하고 글만 쓴 적도 있다. 학창 시절 잘 나가는 '부진아'였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괄목상대할 만한 성장이 아닌가 싶다. 덕분에 일상이 단조롭기 그지없다. 회사에서의 시간을 제외하면 육아, 독서, 운동, 공부가 전부다.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태우지 않는다. 아내 몰래 숨겨둔 여자도 없고, 노름도 하지 않으며, 게임도 하지 않는다. 숨겨둔 여자가 없으니 숨겨둔 비상금도 없어서 돈도 별로 쓰지 않는다. 반면에 틈만 나면 소설을 쓰고, 오래된 고전을 묵상하며, 노트를 꺼내서 잡다한 메모를 한다. 나쁘지 않은 습관들을 체득했고, 그러는 사이에 굉장한 집중력과 끈기가 생겼다. 단조로운 일상은 나로 하여금 상당한 집중력과 끈기라는 능력을 선물해준 셈이다. 그처럼 평범한 일상, 단조로운 일상은 이렇다 할 문제점을 만들지 않는 데다 주위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신용을 얻을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졌다.
돈을 벌지 말고 신용을 벌어라.
'신용을 가진 자'는 현대의 연금술사이다.
-니시노 아키히로
신용을 얻는 것이 잘 짜인 단조로운 일상 덕분에 만들어진 셈이지만, 일상이 마치 하나의 시스템처럼 짜여 있기 때문에 미리 계획을 짜두지 않은 다른 일정이 공간을 비집고 들어오면 난처해진다. 최근에 어느 지인이 책을 출간하려고 준비 중인데 윤문을 좀 해주십사 하고 부탁을 해온 적이 있었다. 좌우지간 싫지 않았던 사람이라 거절할 수는 없어 우선 알겠다고는 했으나, 월요일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빼곡하게 짜인 일정 가운데 통째로 반나절을 비워야 하는 윤문 작업은 시간의 한계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덜 급한 일을 뒤로 미루고 윤문 작업을 끝냈다. 어쨌거나 단조로운 일상은 나름의 시스템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습관의 연속이고, 그 시스템 안에서 체계적으로 시간을 짜서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만들어진다. 퇴근 후 소파에 앉아 티브이 리모컨이나 만지작거리는 일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난 1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러한 단조로운 일상이 일직선처럼 곧게 뻗은 일의 효율성이나 업무상 성과를 제공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운동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자격증을 준비하는 것은 단조로운 일상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나름의 시스템 안에 구축된 사이클이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사고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깨지고 부딪히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가치들이라는 것을 발견한 뒤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디어를 창조해내고, 꿈을 꾸거나 꿈을 실현하는 모든 과정은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언젠가 티브이를 보다가 미술관 탐방에 관련된 내용이 나왔다. 같이 티브이를 보던 매형에게 ‘그림을 볼 줄 아시느냐’고 여쭈어보았다.
“딱히 그런 건 아닌데, 한 번씩 보러 가. 자꾸 보다 보면 확실히 시각이 달라지더라고.”
그림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 볼 줄도 모른다. 수백억을 호가한다는 유명한 그림을 봐도 그런가, 하고 바라볼 따름이다. 그런데 매형의 말을 듣고 난 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이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마 나도 그림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경험하고, 익숙함을 느끼다 보면 그림에 담긴 예술의 혼과 가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한 임윤찬 군이 피아노를 배운 것은 7살 때였다.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 되지 않겠나, 싶어 배운 피아노가 그의 인생을 뒤바꿔놓았다. 12살 때부터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통해 피아노를 배웠고, 한국 영재교육원을 졸업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대회에서 우승했다. 피아노를 배운 지 10여 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가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어린 나이에 아들의 훌륭한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꽃 피울 수 있도록 지지해준 부모 덕분에 좋은 대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가가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단테 소나타를 연주하기 위해 단테의 신곡을 달달 외우다시피 읽어낸 저력이 있기에, 뭘 해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겠구나 싶다. 하지만 예술적 재능의 90%는 타고난다는 말이 있다. 훈련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재능은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피아노 역시 다양한 경험 속에서 만난 하나의 취미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영원한 파트너가 되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서재 의자에 멍하니 앉아서 하루 종일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는 것을 추천하지는 않는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고, 핫 플레이스를 탐방하고, 신문물을 경험하고, 살아 숨 쉬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할 것을 추천한다. 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며 글의 소재가 될 만한 것들을 꽤 많이 찾아냈다.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핫 플레이스를 탐방하고, 신문물을 경험했더라도 글의 소재가 될 만한 것들을 꽤 많이 찾아낼 수 있겠지만, 이 땅의 사는 대다수의 아버지들이 그러하듯이 초저녁 무렵에는 녹초가 되어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었을 게 뻔하다.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이 있는 공연장에 3살짜리 아들은 입장 불가다.
단조로운 일상을 두고 잘 짜인 시스템의 구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그 단조로운 일상을 조금은 벗어날 필요가 있다. 재미도 없을뿐더러, 성장에 한계가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앞서 언급한 직장 동료의 죽음, 그리고 어린 아들 때문이었다. 감사와 소망이 마음을 채우는 한 편, 이렇게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좌우를 살피지 않고 파란불 횡단보도를 전력 질주한다던지, 세 살배기 아들의 손을 잠시 놓고 길거리를 산책하는 일 따위는 결단코 내 사전에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 마음이 모험심으로 똘똘 뭉쳐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위험을 피하되, 모험심을 따라 매 순간을 사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며 가치있는 일이라 믿는다. 마음 가득한 모험심을 잠자코 다독인 뒤 단조로운 일상이 가장 훌륭한 선택이라고 자부하며 하루하루 살다 보면, 어른이 된 아들이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버지는 젊을 때 꿈이 뭐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