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퀼로스 : 그대는 무엇 때문에 시인이 경탄의 대상이 되는지 말해보시오.
에우리피데스 : 시적 재능과 조언, 그리고 우리가 시민들을 더 나은 사람들로 만들기 때문이오.
아이스퀼로스 : 만약 그대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쓸모 있고 점잖은 사람들을 사악한 자들로 만들어놓았다면, 그대는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해 마땅하다고 생각하시오?
디오니소스 : 죽어 마땅하죠. 그에게 물어볼 게 어디 있소?
<개구리>中에서 1007-1013, 아리스토파네스
20대 초반에는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시적 재능이 없는 데다 지혜가 부족하여 하잘것없는 글밖에 쓸 수 없었기에 시인의 꿈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서른에 다다를 무렵 몇 자 끄적거려 봤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한동안 세상을 들썩거린 사건 중에 시인들의 탈선행위가 있었다. 일어탁수라는 반응이 있는 반면,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인숭무레기 집단이라는 반응도 태반이었다. 젊은 날의 꿈이던 시인이라는 직업이 자연스럽게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젊은 시절의 갈수기가 지나가는 듯할 때쯤 내 이름으로 쓰인 책이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시인이 되지 못한 아쉬움은 없었고, 그저 세상에 점 하나 찍었다는 안도감만 들었다.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기록하는 일 외에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서점 방문이다.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 매대에 들러서 한참을 뒤적거리다 한 권을 골라잡는다. 30년이 넘으면 구입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친 사견만을 주장하는 책도 거른다. 어떻게 부동산이나 주식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겠으며, 행복을 정의하는 방법이 서너 가지밖에 없을 수 있겠나. 더 좋은 책이 없나 궁리하다가 고전을 탐구하는 독서모임에 들어갔고, 책을 고르는 수준도 그만큼 올라갔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세상을, 또는 사람들을 더 나은 사람들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착념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는 더 좋은 글이 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부적절한 글을 세상에 풀어놓는 일도, 쓸모 있고 점잖은 사람들을 사악한 자들로 만들어놓는 것도 글 쓰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일이 되지 않는다. 글은 활자 이전에 마음의 표현이며, 지식과 지혜의 유무에 따라 영향력을 가진다. 무릇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언제고 자신의 글을 되돌아보고 퇴고할 줄 아는 마음의 깊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