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중략)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신달자 시인이 쓴 낭송 시 '여보! 비가 와요'의 일부분이다.
어려운 형편과 상황을 마주하다 보면 누구나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기 마련이다. 전에 없던 간절함과 절박함이 마음을 에워싸고, 잠을 설치며 궁리를 하기도 한다. 믿지도 않는 신의 이름을 부르고, 안 하던 기도를 하게 된다. 인간은 그런 존재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어리석음에도 어리석은 줄 모르고 산다. 평생 가난하고 거만한 마음으로 그저 그렇게 살아가지만, 애쓰지 않아도 잘 굴러가는 형편 속에서 하릴없이 시간만 때우다가 손쓸 수 없는 위기가 닥치면 그제야 풀뿌리를 잡고 마음을 깎고 낮추는 존재.
대지가 기르는 것들 중에서, 숨 쉬며 대지 위를 기어 다니는 온갖 것들 중에서, 인간보다 허약한 것은 하나도 없소. 신들이 그를 번창하게 하시어 그의 무릎이 팔팔하게 움직이는 동안에는 그는 훗날 재앙을 당하리라고 꿈에도 생각지 않지요. 하지만 축복받은 신들이 그에게 불행을 자아내시면 그는 불행도 굳건한 마음으로 참고 견디지요.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지상에 사는 인간들의 생각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들과 신들의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어떤 날을 보내주느냐에 달려 있소.
-<오디세이아> 호메로스 18권 130-137행
자는 사람을 깨우기는 쉽지만, 자는 척하는 사람을 깨우는 것은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자식의 소중함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어려움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에게서 '어려움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고견을 얻을 수는 없다. 신들의 아버지께서 주는 선물일지도 모를 어려움과 수고로움은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겸손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위기와 어려움을 지혜롭게 넘긴 사람들에게서 묻어나는 마음의 향기는 깊고 포근한지도 모른다. 박완서 시인은 6.25와 참척의 고통을 글로 남겼고, 박경리 작가는 평생 남자로부터 비롯된 한이 뼈에까지 사무친 박복한 인생을 살았기에 토지를 집필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위기와 어려움은 시대와 국가를 따지지 않는다. 어부로 살며 모비딕을 집필한 허먼 멜빌도, 가족과 생이별하여 19년간 옥고를 치운 정약용도 그렇다. 어려움이란 것은 결국 좋은 것이며, 결과적으로 타인의 마음에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는 향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