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를 위한 글쓰기 수업 7강

주제 :: 성장

by 전대표

2024년 3월부터 12월까지 울산 북구 보건소 내에 위치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강의한 자료를 정리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 글은 7강 수업 내용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난 한 주 잘 지내셨는지요?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고 있는데, 건강 유의 하시길 바랍니다. 물도 많이 드시고, 잠도 편히 주무시고요.

벌써 7번째 강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매 순간 강의가 진행되면서 여러분들의 생각과 마음도 조금씩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저희가 모여서 강의를 듣고 글을 쓰는 훈련을 하는 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주제는 성장입니다.


I’m possible.


쉬운 문장입니다.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뜻인데요. 참 멋진 말입니다. 성장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하면 growth가 되는데요, 점점 커지고 팽창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젤리처럼 말랑말랑한 인형을 물에 넣어두면 이게 물을 먹어서 막 커지잖아요. 그렇게 자라나는 것, 이걸 growth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어른이 되고, 작은 새싹이 나무가 되고, 작은 고양이 만한 호랑이가 나중에 아주 크고 용맹스러운 맹수가 되는 것들도 모두 growth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성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외적 성장 External growth이 있고요, 두 번째로는 내적 성장 Internal growth이 있습니다. 외적 성장은 주로 기업이나 조직의 성장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지만, 사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들은 외적인 성장을 하기 마련입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어디든지 쓸 수 있겠죠. 좌우지간 내적 성장 역시 모든 생명체에 다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사전적 의미는 좀 다르겠지만요.


오디세우스.jfif 오디세우스, 출처 구글

일리아드 Iliad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나온 소설인데요, 그리스 Greek와 트로이 Troy라고 하는 두 나라의 전쟁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에요. 그리스에는 이타케라고 하는 도시가 있습니다(그리스어로는 Ιθάκη. 그리스 이오니아 제도에 있는 섬나라). 여기에 아주 유명한 오디세우스 Odysseus라는 영웅이 있는데요, 트로이와의 전쟁에서 트로이를 완전히 물리쳐버리는 그리스의 명장으로 일리아드의 주인공입니다. 이 양반이 전쟁을 마치고 다시 고향인 그리스로 돌아오는데, 10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고생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 이야기를 다룬 소설의 제목이 오디세이아 The Odyssey인데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햇빛 아래 날아다니는 새들은 많지만 그것들이 다 운명을 말하는 것은 아니오. 그리고 오뒷세우스는 이미 먼 곳에서 죽었소. 그대도 그와 함께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그대는 예언을 한답시고 그토록 많이 지껄이지도, 그러잖아도 화가 난 텔레마코스를 부추기지도 않았을 텐데.

- 오디세이아 57p, 에우뤼마코스의 연설 중


여러분 중에 혹시 멘토 Mentor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 분 계십니까? 몇 분 계시네요. ‘그 사람은 내 인생의 멘토다!’ 이런 말 들어보셨죠? 그 멘토라는 단어가 이 책에 등장을 하거든요. 이 책에서는 오디세우스라고 하는 아버지가 죽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죽어서 완전히 뼈다귀만 남은 존재로 정처 없이 바다 깊은 곳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걸로 가족들이 알고 있는 거예요.


“찾아가 봤자 뭐 해? 찾지도 못할 건데.”

“볼 것도 없어. 사람이 어떻게 10년 동안 바다에서 살아?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오디세우스의 집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막 나오는 중인 거예요.

이 오디세우스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텔레마코스라고 하는 양반인데요. 이 양반이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아빠가 죽었네, 뼈다귀만 남았네’ 이런 이야기들을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텔레마코스라고 하는 아들에게 아테네라고 하는 여신이 찾아옵니다. 그것도 그냥 나타난 게 아니라 아버지의 아주 오랜 친구인 멘토르로 분장해서요. 아테네는 요즘 말로 ‘여신女神’인데, 남자로 변신해서 “짜잔!” 하고 나타난 거예요. 그리고는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야! 텔레마코스! 너 오디세우스의 아들이잖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버지 찾을 수 있어. 아버지는 살아서 돌아오실 거야. 배 타고 아버지 찾으러 가!” 하고요. 모든 사람이 다 안된다고, 죽었다고 이야기하는데, 오직 멘토르만이 절망에 가득 차 있는 텔레마코스에게 담대한 용기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살아 있어! 두려워하지 말고 여행을 떠나!”하고 말이지요.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앉혀놓고 귀한 조언을 해주는 멘토르의 모습, 배를 타고 나가는 아버지를 찾기 위한 먼 항해를 떠나는 텔레마코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그 모습은 인생의 멘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는 훌륭한 고전 속 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멘토르.png 멘토르와 텔레마코스의 대화, 출처 구글


오디세이아라는 말은 ‘오디세우스의 항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라틴어로는 율리시스라고도 하는데요, 오늘은 오디세우스의 항해가 성장이랑 어떤 상관관계에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눠볼까 합니다.



스타벅스.png 스타벅스, 출처 구글

다들 스타벅스는 아실 거예요. 커피 파는 곳이지요. 스타벅스의 초록색 간판에 있는 여신의 이름은 사이렌 Siren입니다. 사람은 아니고 인어이고요, 사이렌 여신이라고 해요. (발음에 따라 세이렌이라고도 하는데,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까 부르기 편하게 사이렌 여신이라고 할게요.)


근데 스타벅스 간판에 있는 저 사이렌 여신이 바로 오디세이아에 등장합니다. 이 여자는 무슨 일을 하냐면요. 배를 탄 사람들이 지나가면 옆에서 신나게 노래를 불러요. “안녕하세요 아저씨들, 어디 가세요?” 근데 이 양반이 노래를 꽤 잘하는 모양이에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이 노래가 얼마나 감미로운지 모릅니다. “저 여자 뭐야?” 싶다가도, 노래를 너무 잘 부르니까 목소리만 듣고 따라가다는 거예요. 그러다 바위에 부딪혀서 배가 난파하고, 파도에 휩쓸려서 사람이 실종되는 일이 막 일어나는 겁니다. 어두운 밤바다에 아무도 없는데 예쁜 인어가 노래를 부르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누가 봐도 이건 유령인 거지요. 근데 이 여신이 일단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정상적인 사람들도 거기에 정신이 빠져버리는 겁니다. 기타를 치면서 막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따라가면 안 되는데... 안되는데...’ 하면서도 따라가다가 배가 뒤집혀서 죽는 거예요.


오디세우스가 그 사실을 아는 거예요. 노래를 기가 막히게 부르는 그 여신들을 따라갔다가는 반드시 배가 난파하고, 좌초되어서 죽는 걸 아는 겁니다. 그래서 동료 선원들한테 이야기해요.

“너희들은 밀랍을 녹여서 귀에 붙여라. 아무 소리도 들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나는 기둥에 꽁꽁 묶어놔라. 그리고 내가 아무리 풀어달라고 외쳐도 너희는 절대로 나를 풀어주면 안 된다.”하고 신신당부를 하는 겁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랄까요? 자기 나름의 ‘꼼수’를 쓴 겁니다. 선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니, 오디세우스를 뱃기둥에다 꽁꽁 묶은 뒤에 자기들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도록 귀를 밀랍으로 가득 채워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한참 배를 타고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사이렌 여신들이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등장했습니다. 센터에 주연급 사이렌 여신 두 자매가 있고, 뒤에 소위 말하는 코러스 여신들도 줄줄이 나타나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요. 스타벅스 간판에 있는 생머리 여신들이 막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이 노래가 오디세우스가 듣기에도 좋았나 보더라고요. 오디세우스가 노래를 듣고 막 외칩니다.

“야! 나 좀 풀어줘! 저 노래가 더 듣고 싶어! 얼른 풀어달란 말이야!”

오디세우스가 막 소리를 질러요. 근데 이 동료들은 안 들리는 거예요. 심지어 눈빛도 게슴츠레하게 변한다 싶으니까 더 꽁꽁 묶어놓기 시작합니다.

“야, 인마! 너, 입 다물어! 네가 묶어달라고 했잖아! 가만히 있어!”

“안 돼! 안 돼! 풀어달란 말이야! 제발 이 밧줄 좀 풀어줘!”

죽어라 발버둥을 치는데 동료들은 계속 묶어놓습니다. 얼마나 노랫소리가 감미로웠으면 그렇게 풀어달라고 난리를 쳤을까요?

여기에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이 사이렌 여신들이 오디세우스에게 무슨 노래를 불렀느냐 하는 겁니다. 도대체 무슨 노래를 불렀길래, 오디세우스가 그렇게 노래를 더 듣고 싶어 했느냐는 거지요.


오디세이아는 전체 페이지가 약 700페이지 정도로 꽤 두꺼운 책에 속합니다. 라틴어를 번역한 고전이기 때문에 주석도 꽤 많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얇고 가벼운 책이 아닌 건 사실입니다. 아주 오래된 책이고요. 근데 이 사이렌 여신들이 오디세우스한테 노래를 불렀던 장면의 내용은 고작해야 다섯 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책이 이렇게 두꺼운데, 오디세우스의 마음을 요동치게 한 여신들의 대사는 고작해야 5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글로벌 프랜차이즈 대기업의 간판모델이 되었어요. 도대체 이 양반들은 무슨 노래를 했길래 이렇게 유명해진 걸까요?

이 여신들이 오디세우스에게 얼마나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는지는 따라 할 수 없겠습니다만, 가사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자! 이리 오세요, 칭찬이 자자한 오디세우스여, 아이오이족의 위대한 영광이여! 이곳에 배를 세우고 우리 두 자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우리 입에서 나오는 감미롭게 울리는 목소리를 듣지 않고 검은 배를 타고 이곳을 지나간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어요. 그런 사람은 즐긴 다음 더 유식해져서 돌아가죠. 우리는 넓은 트로이아에서 아르고스인과 트로이아인이 신들의 뜻에 따라 겪은 모든 고통을 다 알고 있으며, 풍요한 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르는 것이 없으니까요.”

- 오디세이아 303p, 세이렌 자매의 노래 중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사이렌 여신의 대사는 이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노랫말에는 아주 무서운 진실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오디세우스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영광을 향한 칭송입니다.


세이렌의 노래.jpg 세이렌의 노래, 출처 구글


“당신 전쟁 영웅이잖아. 당신이 트로이아를 꺾고 이긴 그리스의 위대한 장군이잖아. 우리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 당신 오디세우스잖아. 당신이 위대한 장군이라는 거 알고 있어. 당신, 얼굴도 잘생겼다며? 얼굴 한 번만 보여줘. 우리가 해코지한다고 알고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야. 그리고 아무도 우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어. 우리랑 즐긴 다음에 더 유식해져서 갔어. 그냥 즐겨, 즐기면 되잖아. 이리 와봐. 그 위대한 장군의 얼굴 좀 보여줘 봐.”


오디세우스로 하여금 과거의 영광에 빠져버리도록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당신 예전에 잘 나갔잖아. 당신 왕이었잖아. 정말 멋있다. 진짜 대단하다. 당신 얼굴 한 번만 보여주면 안 돼? 보여줘 봐. 우리도 왕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단 말이야.”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떨까요?


“뭐, 내가 그렇지. 거대한 목마를 끌고 가서 트로이를 완전히 불바다로 만들어버린 위대한 왕이었지. 뭐, 얼굴 한 번 보여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저도 모르게 우쭐하면서 고개를 내미는 그 순간, 끌어당겨서 바다 밑으로 빠뜨려버리는 거예요. 과거의 영광에 빠져버리도록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근데, 동료들이 가만히 두질 않아요. 오디세우스가 “저 노래를 더 듣고 싶어! 내가 왕이었다는 걸 저들은 알고 있어!” 하고 외치는데 동료들이 더 꽁꽁 묶어버리는 거예요. 들으면 큰일 나는 걸 아는 거죠. 결국 오디세우스의 지혜가 아니라 동료들의 헌신 덕분에 무사히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오디세이아에서 가장 유명한 내용 중 하나입니다.


성경을 비롯해서 모든 고전에 등장하는 바다는 모두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사이렌 여신은 바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신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세상, 고귀한 진리와 철학적 가치가 존경받기보다는 물질적 풍요로움과 인간적 위상이 더 존경받고 숭배받는 곳이 바로 세상입니다. 그걸 바다로 표현하고 있는 거예요.

대부분의 오래된 고전 작품에 등장하는 바다가 바로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세상, 혹은 갖은 고난과 풍파를 의미해요. 세이렌 여신도 그렇고,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나오는 바다도 그렇고요. 반대로 배는 생명, 항해, 도전, 전진,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예로 새는 행운, 혹은 신의 은총과 계시를 의미해요. 새는 세상을 거슬러 존재하는 생명체입니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걷고 뛰고 기어 다니는 존재가 없는 하늘에서 날아다니기 때문에 신적인 의미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바다의 왕, 바다의 신은 포세이돈입니다. 이 포세이돈에게는 폴리페모스라고 하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영어로 하면 사이클롭스 Cyclopes, 그리스어로 하면 키클롭스 Kuklōps라고 하는 존재인데 굉장히 크고 힘이 센, 외눈박이 괴물이에요. 우리는 눈을 2개 갖고 있잖아요. 그래서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요. 그래서 3차원의 세계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원근감 perspective이랄까요? 어떤 사물은 더 앞에 있고, 어떤 건 뒤에 있다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보면 알잖아요. 근데 한쪽 눈을 가리면요, 세상을 한쪽 눈으로만 보게 됩니다. 이 원근감이라는 게 없어져요. 그러니까 입체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한쪽 방향으로만 세상을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키클롭스가 그렇습니다.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는 눈이 없는 존재예요. 한국식 표현으로 모毛 아니면 도刀인 거지요. 신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오디세우스가 배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이 키클롭스가 있는 섬에 도착했을 때, 이 키클롭스에게서 동료들을 잃습니다.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까 다 잡아먹어버리는 거예요. 오디세우스는 졸지에 여러 동료들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이러다 나도 죽겠구나, 하고 고민이 많았겠지요. 그러다 나중에 이 키클롭스가 포도주를 마시고 잠든 사이에 동료들이랑 도망칠 궁리를 합니다. 한참 고민하다가, 키클롭스가 갖고 다니는 올리브나무 몽둥이를 잘라서 말뚝을 하나 만들었어요. 그 말뚝을 뾰족하게 만든 다음에 불로 엄청 달궈가지고 잠자고 있는 폴리페모스의 눈을 찔러버립니다. 눈을 찔린 폴리페모스가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을 틈타서 오디세우스는 배를 타고 동료들이랑 도망을 치기 시작합니다. 근데 눈을 찔린 폴리페모스는 앞을 볼 수 없으니까 막 소리를 지르면서 주변의 동료들을 부르기 시작해요.

“친구들! 나를 좀 도와줘! 누가 내 눈을 찌르고 도망갔어!”

그러자 주변에서 놀고 있든 키클롭스들이 막 나와요. 나와서 묻습니다.

“무슨 일이야? 누가 네 눈을 찔렀어?”

“아무도 아닌 게 나를 찔렀어!”
대답이 재밌죠?


앞서 동굴에서 오디세우스가 키클롭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보시오 키클롭스. 내 이름은 ‘아무것도 아닌 자’입니다. 내 부모님도 나를 ‘아무것도 아닌 자’라고 불렀고, 사람들도, 전우들도 나를 ‘아무것도 아닌 자’라고 부릅니다.”하고요. 그러자 키클롭스가 “그럼 먼저 너의 친구들을 잡아먹고, 아무것도 아닌 너는 맨 나중에 잡아먹겠다. 그게 내가 너에게 주는 접대 선물이다.”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눈이 찔려서 허둥지둥 대고 있는 폴리페모스를 내버려 두고 오디세우스는 전우들이랑 배를 타고 도망치기 시작하는데, 화가 나서 산봉우리를 통째로 뜯어서 마구 집어던지는 키클롭스에게 오디세우스가 소리칩니다.

“당신을 죽인 자는 아무것도 아는 자가 아니라 이타케의 왕 오디세우스요!”


이 키클롭스라고 하는 외눈박이 괴물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자만심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자만심, 그러니까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지 않고 한쪽 방면으로만 보는 인간의 오만함을 의미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 인간의 오만함을 깨뜨릴 수 있는 힘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발휘된다는 겁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그야말로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의 현대를 일군 정주영 회장님도 있고,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이끈 이건희 회장님 같은 분도 계시죠. 그분들도 대단한 분들이고 훌륭한 분들이지만, 이런 고전에서 의미하는 대단한 인물은 세상에서 훌륭하고 멋진 일들을 일구어낸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아닌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에 닥쳐오는 수많은 어려움과 문제들 앞에서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됐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겁니다.

페넬로페와 베틀.png 베틀을 짜는 페넬로페와 구혼자들, 출처 구글

오디세우스가 열심히 노를 젓고 항해를 해서 고향에 도착했을 때, 고향 땅에는 페넬로페라는 이름을 가진 오디세우스의 아내가 베틀을 짜고 있었습니다. 이 베틀을 짜는 것도 벌써 3년 차예요. 배틀은 뭐 하는 겁니까? 옷을 짜는 거죠. 옷은 육체의 허물을 가릴 수 있는 도구입니다. 그 옷을 짜기 위해서 열심히 베틀을 굴리고 있어요. 근데 이 여자가 어찌나 매력이 있고 아름다웠는지, 페넬로페라는 여자의 주변에는 108명의 젊고 잘생긴 젊은 청년들이 계속 결혼하자고 구애를 해요.

“이봐요, 페넬로페. 이제는 잊어버려요. 당신 남편 죽었잖아요. 이제 그만 보내주고 나랑 결혼합시다. 돌아오지도 않을 사람을 위해서 무슨 옷을 짜고 그래요? 그만해요.”

페넬로페가 대답합니다.

“좀 기다려봐요. 남편이 죽은 것도 죽은 건데, 며느리가 돼서 시아버지를 위해서 수의 한 벌은 맞춰야 안 되겠어요? 며느리가 시아버지 수의 하나 안 맞췄다고 사람들한테 욕먹으면 안 되잖아요. 일단 수의부터 다 만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합시다.”

그리고는 낮동안 열심히 옷을 짜다가 밤만 되면 다시 짜던 옷을 다 풀어버려요. 아침에 또 옷을 짜고, 밤만 되면 다시 실을 다 풀어버리고요. 그걸 3년 넘게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108명의 장군들은 아주 젊고 힘 있는 사람들이에요. 요즘으로 말하면 한 나라의 왕자 정도 되는 사람들이지요. 10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도 않는 오디세우스에 비하면 아주 젊고 멋있는 남자들인 셈이지요. 그런데도 페넬로페는 재혼할 생각을 하지도 않고 돌아올 오디세우스를 기다리고 있어요.


페넬로페의 마음에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남편이랑 시아버지랑 전쟁에 나가서 승전가를 울렸다는 이야기는 어찌어찌 전해 듣긴 했는데, 10년 동안 고향에 돌아오질 않는 거예요. 그 거센 바다에서 10년 동안 맴돌다 건강한 몸으로 돌아올 거라는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잖아요. 변변찮은 식량도 없고, 옷도 없고, 오로지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기나긴 여정을 오디세우스가 감당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겁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기에 페넬로페의 주위를 맴돌면서 열심히 구애활동을 하는 108명의 젊은 남자들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108가지의 번뇌를 의미합니다. 슬픔, 외로움, 고통, 두려움 등등. 수많은 걱정과 고민 속에서도 3년 동안 옷을 만드는 겁니다. 베틀을 짰다가 풀고, 다시 짰다가 풀고. 수없이 많은 고뇌가 찾아오지만, 나중에 운명처럼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고 난 뒤에 비로소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고 아름답게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겁니다.

이처럼 오디세우스가 배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10년 동안 계속해서 죽을 뻔한 경험을 마주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사이렌 여신을 보내서 오디세우스를 죽이려는 경험도 하고요. “당신, 예전에 왕이었잖아. 이리 와 봐. 그 잘난 얼굴 한 번 보자.” 이렇게요. 하지만 과거의 영광에 빠지지 않고 배를 타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무사히 고향 땅에 도착하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페넬로페의 신념, 텔레마코스와 멘토르와의 관계, 오디세우스가 겪는 10년의 여정이 사람의 인생과 똑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작은 사실을 하나 깨달았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단순히 오래전 쓰인 어떤 소설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나를 의미하는 것이구나!’하고요. 이 사람의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내 인생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우리 인생 속에도 참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많은 문제를 만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면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도 만나고, 이끌어주는 사람도 만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도 만나면서 성숙해져 가고, 또 익어가는 것입니다. 그게 인생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탕자의 귀향.png 렘브란트 <탕자의 귀향>, 출처 구글


지금 보시는 그림은 아주 유명한 그림인데요, 렘브란트라고 하는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The Parable of the Prodigal Son를 그린 그림이에요. 인류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화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돌아온 탕자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눠볼게요.

아버지랑 두 아들이 살고 있었어요. 하루는 둘째 아들이 아버지한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 아버지 재산 절반만 저한테 주세요. 그럼 제가 사업을 해서 엄청나게 성공한 뒤에 돌아오겠습니다.”

“이놈아, 사업이 쉬운 게 아니야. 내 곁에 있으면서 조금 더 배우고 난 뒤에 사업을 해보거라.”

“아버지, 아들 못 믿으세요? 저 할 수 있어요. 이제 어른도 되었고, 세상도 배울 만큼 배웠습니다. 잘할 수 있어요!”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돈을 줘서 보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놈이 쫄딱 말아먹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근데 설상가상으로 흉년이 들었어요. 결국에 둘째 아들이 돼지 치는 농장에 가서 농장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막노동인 셈이지요.

평생 아버지 곁에서 살면서 아버지가 주는 밥이나 얻어먹고 아버지가 주는 용돈이나 타서 쓰던 놈이 무슨 세상을 알겠습니까? 일머리 같은 것도 있을 리 없죠. 잘 못 먹으니 배도 고프고,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을 겁니다. 하루는 너무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열매를 한 줌 주워 먹었나 봐요. 여러분은 배고프다고 개사료나 돼지 사료 먹겠습니까? 안 먹잖아요. 근데 너무 배가 고프고 힘드니까 사람들이 못 먹는 걸 주워다가 먹는 겁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가 문득, 아버지 집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 곁에 있을 때 느꼈던 그 따뜻한 사랑, 소망, 행복.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풍족하게 만들어 주었는지,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는지를 깨닫기 시작한 겁니다. 그 마음의 변화가 성경에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성경 누가복음 15:17-19


이 문장들의 맨 앞 구절인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라는 문장이 영어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And when he came to himself”



직역하자면, ‘그가 그 자신에게로 돌아왔을 때’라는 말입니다. 막내아들인 탕자가 자신의 모습을 비로소 발견하였을 때, 변화가 일어났다는 겁니다. 즉, 첫 시간 강의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난 뒤에야 비로소 탕자에게도 진정한 변화가 찾아오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누나가 한 명 있는데요, 누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서울로 갔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해왔기 때문에 서울에 가서도 음악 방면에서 일을 했습니다. 방송국에서 일도 하고, 음향관련된 일도 하고요. 지금은 결혼하고 자리 잡아서 조카도 태어났습니다. 아주 잘 살고 있어요. 누나는 어릴 때부터 뭘 하던지 똑 부러지게 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입었습니다.


저는 반대였어요. 뭘 해도 못하는 거예요. 공부도 못하죠, 춤도 못 추죠, 운동도 못하죠, 뭘 해도 못했습니다. 고등학교도 겨우 턱걸이로 인문계에 들어갔고, 4년제 대학도 겨우 턱걸이로 들어갔고, 대학 졸업한 뒤로는 돈도 안 벌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다니질 않나(뮤지컬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한다면서 월급도 얼마 안 되는 대안학교에서 교사를 하질 않나, 결혼하고 난 뒤로는 사업을 하겠다고 퇴사한 뒤로는 늘 실패만 반복하질 않나,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막내아들이다 보니 부모님이 보시기에 걱정도 많으셨겠죠. 근데 여러 형태로 찾아온 인생의 변곡점 속에서 저의 모습을 발견한 20대 중반의 어느 시점이 되니까, 그제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고, 고생하고, 얼마나 많은 노고와 수고를 감당했는지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더라는 겁니다. 이후로도 수많은 어려움과 문제가 찾아오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켰던 순간은 바로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게 된 어느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아까 읽어 드린 이야기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도 그렇고, 탕자의 이야기도 그렇고, 과거의 영광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변화가 찾아오는 것을 느끼셨을 겁니다. 내가 왕이었을 과거를 돌아보면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평생 어려움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 내가 예전에 왕이었어!

· 내가 예전에 대학 교수였어!

· 내가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사실 내가 검사였어!


왕이었고, 대학 교수였고, 판검사였던 과거 모두 훌륭한 경험입니다. 다만, 과거의 영광은 영광으로 묻어두고, 앞으로 계속 전진해 나갈 때마다 인간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성장하게 만들어져 있는 존재입니다.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저도 아들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합니다. “혼자서는 밥도 잘 못 떠먹고, 이제 겨우 혼자서 옷을 갈아입는 녀석이 앞으로 뭐가 될꼬?” 하면서요. 그럼에도 제 아들은 자라겠죠. 외적 성장을 할 겁니다. 키도 크고, 초등학교도 가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도 가고, 졸업하면 사업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하겠죠. 그렇게 외적인 성장을 하게 될 겁니다. 근데 아버지인 나는 뭘 해야 되냐? 저도 당연히 같이 성장을 해야겠죠. 외적인 성장이 아닌 내적인 성장을요.

아들이 어릴 때는 제가 부모의 자격으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 양치질 잘해야 충치가 안 생긴단다.

· 공부 열심히 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단다.

·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라.


그런데 제 아들이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제 아들이 운이 좋아서 회사의 사장님이 되고, 기업의 회장님이 되었을 때도 “이놈아, 양치질 좀 잘해라, 공부 좀 해라!” 그런 이야기를 하면 되겠습니까?

아버지라면, 또 부모라면, 자식이 자랄 때마다 나이에 맞는 조언과 격려를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버지만이 해줄 수 있는 역할도 해줘야 되잖아요. 그래서 아들이 자랄 때마다 저도 똑같이 성장해야 된다는 걸 느낍니다. 그게 진짜 성장의 의미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저에게 있어 성장의 의미는 이런 내적 성장과 외적 성장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은


· 나에게 있어서 성장이란 무엇인가?

· 나에게 성장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는 주제에 대해 글을 써보시면 좋겠습니다. 한 줄도 괜찮고, 두 줄도 괜찮고, 한 단어만 쓰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이번 시간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만, 많은 걸 기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그리스의 오디세우스에 대해서 이야기했어.”라고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오늘은 인간의 성장에 대해서 이야기했구나.”라고 이해하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여기 모여서 어려운 고전을 공부하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성장이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에 대해 설명해 드리기 위해서 제가 경험한 성장의 의미를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참고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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