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를 위한 글쓰기 수업 6강

주제 :: 기회

by 전대표

2024년 3월부터 12월까지 울산 북구 보건소 내에 위치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강의한 자료를 정리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 글은 6강 수업 내용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난 일주일도 잘 보내셨다고 하시니 제가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무척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기회 Opportunity입니다.

방금 지인에게 전화가 왔는데요. 본인이 참석하고 계시는 모임에 참석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주셨습니다. 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시작하는 모임인데 참석해 보시라고 이야기하셔서 “알겠습니다. 지금은 제가 강의를 시작해야 해서 주중에 인사 한 번 드리겠습니다.”하고 마무리 지은 뒤에 통화를 마쳤습니다.


이 이야기를 드린 이유가 바로 오늘의 주제랑 상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침에 기회機會라는 단어를 찾아봤거든요. 기회는 기계나 틀을 의미하는 기機, 이런 것들이 모여 있는 것, 모일 회會가 만나서 만들어진 단어라고 합니다. 변함없는 일정한 틀 Frame, 그런 틀이 모여 있는 게 기회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반드시 일어나야 할 어떤 일과 사건이 일어나는 그 시간, 적재적소의 순간이 기회라는 것입니다.


크로노스.jfif 시간의 신, 크로노스

지금 보시는 사진 속의 인물은 시간의 신, 크로노스 Kronos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하는데요. 세월의 덧없음, 모든 것을 쇠하게 만들어버리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시간의 엄격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파생된 단어가 흔히 스톱워치로 알려진, 그러니까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시계, 전자시계를 의미하는 단어가 Chronograph입니다. 크로노스 Kronos는 절대적인 시간,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제가 강의에 들어와서 인사를 드린 시간이 10시 33분이었는데요. 지금은 10시 40분이 되어 갑니다. 벌써 보이지 않는 7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요?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이야기합니다.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시간인 것입니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jfif

앞서 언급한 신의 이름이 크로노스였다면, 지금 보여드리는 이 신의 이름은 카이로스 Kairos라고 합니다. 크로노스가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한다면, 카이로스는 어느 찰나의 순간, 멈춰진 시간을 의미하는 신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크로노스는 시간의 신이지만, 카이로스는 기회의 신이라고 불립니다. 이건 일종의 설화인데요, 현시대를 살고 있는 분들이 카이로스라고 하는 신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만든 내용이자 이미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람들이 만든 가상의 초상화라는 것이지요. 하나하나 뜯어서 살펴보면 좀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우선 카이로스는 뒷머리가 대머리입니다. 머리카락이 뒤에는 없어요. 반면에 앞머리는 엄청 길어요. 조금 우습죠? 앞머리는 긴 장발인데, 뒤통수는 대머리를 하고 있는 신이 있다니 말입니다. 게다가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고요,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요. 구부정한 등에는 날개가 달려 있는데, 그게 부족해서 그런지 뒤꿈치에도 날개가 조그만 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신神이라고 하면 뭔가 웅장하고, 위엄이 있고, 허연 수염을 팔락팔락거리면서 커다란 지팡이를 짚고 구름이라도 타고 나타나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서양신이라고 해도 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위엄이 없지 않습니까? 좁쌀만 한 날개가 발뒤꿈치에 달린 것도 그렇고요. 볼품없고, 우스꽝스럽고, 도저히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카이로스라는 이름의 신은, 그러나 기회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앞머리가 긴 이유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왜 얼굴을 가릴까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얼굴을 가린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기회인 줄 알면 안 되잖아요. 기회는 알아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회인지 아닌지 알아볼 만한 눈과 능력이 없는 사람은 기회가 찾아와도 잡을 줄 모릅니다. 그렇기에 기회는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손에 쥐고 있는 저울은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저울인 겁니다. 공정한 판단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공정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는 기회인데 누구에게는 기회가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기회는 특별한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겁니다. 아주 공정한 것이 기회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다른 손에 쥐고 있는 칼은 결단력을 의미합니다. 기회가 찾아왔는데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미적거리다 보면 기회는 사라져 버리죠. 기회가 찾아왔을 때 잡을 수 있는 결단력과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까 뒤통수가 대머리라고 말씀드렸죠? 그리고 구부정한 등과 발 뒤꿈치에는 날개가 있다고도 말씀드렸고요. 기회는 “이제 알겠어! 저건 바로 기회야!” 하고 깨달은 뒤에 잡으려고 하면 못 잡는 거예요. 뒤통수가 미끄러운데 어떻게 잡겠습니까? 게다가 등에 달린 날개를 빠르게 파닥거리면서 날아가버릴 건데요. 심지어 추진력을 얻어서 날아가기 위해서 뒤꿈치에 날개도 달려 있잖아요. 그냥 뛰어가면서 잡으려고 해서는 못 잡는 거예요. 기회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모를 때,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정확한 판단력과 결단력, 추진력이 뒷받침되어 있어야 기회의 신을 붙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nick-morrison-FHnnjk1Yj7Y-unsplash.jpg 작가가 되고자 하는 꿈은 35살이 되기 이전에 이루어졌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하는 꿈이었습니다.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제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이라도 써볼 수 있다면, 평생 가난하게 살거나 배를 곯으면서 살아도 행복할 것 같았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제 주변에 책을 쓴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평범한 사람들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제가 책을 써보고 싶다고 했을 때 응원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네가 책을 쓴다고? 그래 써봐라. 책으로 나올 일은 없겠지만, 나중에 아들이나 딸한테 선물로 주면 되지.”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책을 아무나 씁니까? 한 권의 책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넌 반드시 할 수 있을 거야!”하고 용기 있게 이야기를 해주겠어요? 다들 손가락질이나 하고, 저보고 미쳤다고 했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책이란 걸 한 번도 써본 사람이 없다면 모를까, 서점에 수두룩 빽빽하게 쌓인 게 책인데 나라고 못하라는 법이 있나, 싶었던 거지요. 그래서 진짜 열심히 글을 썼어요. 소위 말하는 필사도 해보고, 겪은 일을 글로 써보기도 하고, 시도 써보고, 하여간 해볼 수 있는 노력이라고는 다 해봤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글을 썼는데 A4 용지 한 장이 안 써지는 거예요.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대부분의 책은 평균적으로 300페이지 내외의 분량을 갖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A4용지로 옮기면 약 150장 정도 됩니다.(한글 포인트 10 타이핑 기준) 그러니까 소설이든, 자기 계발서든, 자서전이든, 책의 종류를 막론하고 한 권의 책을 쓰려면 기본적으로 A4용지 150장 정도는 평균적으로 써야 됩니다. 근데 그 한 장이 안 써지는 거예요.


그때부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그럼 서전에 그 많은 책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썼을까? 그 사람들은 천재 아닐까? 그럼 그렇지. 책을 아무나 쓰나? 책도 쓸만한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 써야지.”


뭐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어영부영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스스로에게 꽤 많이 실망하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쓰긴 했어요. 그런데, 어느 시점이 되니까 어떤 깨달음이 하나 왔습니다.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깨달음'까지는 아니고, 그냥 작은 생각의 변화라고나 할까요. 그게 무엇이었냐면, 바로 이것입니다.

책은 언어의 활자화다.

이게 어느 순간 마음에 믿어지는 거예요.

“책이란 건 언어의 활자화구나.”

그 생각이 마음에 쏙 들어오니까 글을 쓰는 것이 엄청 쉽게 느껴지는 겁니다.

aaron-burden-CKlHKtCJZKk-unsplash.jpg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산다.

우리는 늘 이야기를 하면서 살잖아요. 그 모든 이야기들,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나누거나 일기장에 기록하는 그런 언어들을 활자로 옮길 수만 있다면 하나의 책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후에 퇴고의 과정, 출판사와의 미팅 등등 다양하고 복잡한 난제들이 있긴 하지만, 좌우지간 책을 쓴다는 것이 마냥 어렵고 힘든 게 아니라 언어의 활자화라는 사실이 믿어진 순간부터 아주 쉽고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바쁜 날을 제외하면 꾸준히 매일 원고지 60장 분량의 글을 쓰고 있어요.

원고지 1장에 200자인데, 60장이면 1만 2천 자 정도 됩니다. A4용지 기준으로 약 7-8장 정도 되는 분량이에요. 많이 늘었죠?


제가 이런 깨달음과 경험을 주변 분들에게 이야기하면 비슷한 반응이 나옵니다.


“너니까 하지. 나는 안 돼.”

“작가님은 똑똑하시잖아요.”

“작가님은 글 잘 쓰시니까 그 정도 쓰실 것 같아요.”


앞서 제가 수학시험에서 4점을 맞았다는 둥, 공부라고는 아주 담을 쌓고 지낸 학창 시절 이야기도 해드렸는데 기억하시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이 수학시점에서 4점 받은 저보다 공부를 못하셨을까요? 그분들은 제가 작가라는 타이틀로 어느 정도 공신력을 얻은 뒤에 알게 된 분들이기 때문에 학력으로 보나 사회적인 위치로 보나 대부분 크고 작은 성공의 궤도에 오른 분들입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직원들을 거느리는 기업의 회장님도 계시고요.

그런 분들이 저에게 “작가님은 똑똑하시잖아요.”라고 이야기하신다는 것입니다.


책을 써서 작가가 된다는 것이 저에게만 주어진 기회는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기회입니다. 다만, 저는 어느 순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에서 그분들보다 조금은 앞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이고, 그분들은 몰랐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었을 뿐입니다. 대신 그분들은 사업적인 면에서 제가 보지 못하는 기회의 측면을 발견하신 분들입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리더의 입장에서 제가 보지 못한 기회들을 발견하신 분들이다 보니 제가 다다르지 못하는 성취를 얻게 된 셈이지요. 이처럼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어떤 걸 얻고 어떤 걸 얻지 못하는지에 대해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또 다른 의미에서의 기회도 있습니다.

수년 전, 지인의 소개로 어느 기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공공기관을 감사하고 평가하는 기관이었는데, 소속된 연구원들이 어찌나 훌륭하게 일을 했는지 국무총리실에서 전국의 모든 공공기관을 감사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줄 테니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으로 들어오라는 제안도 받았다고 해요. 대단한 조건이었지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된 기회였습니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무렵 또 다른 지인이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기관에 속해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투자 대비 효율성을 따져봤을 때 사업이 더 좋은 듯 하니 투자를 해보시라, 하고 제안한 것입니다. 그때 제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 조직 생활이 나을까, 아니면 사업이 나을까 하고요. 한참 고민하다가 '그래, 남자는 사업이지. 사업을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기관을 퇴사하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불과 몇 달도 지나지 않아서 엄청나게 고생을 했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너무 힘들어서 별별 생각이 다 들곤 했습니다.


그때 제가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그냥 기관에서 일하면서 훗날을 도모하면 되는데 왜 그랬나, 그냥 거기에서 일을 배우면서 면 더 좋은 기회가 많이 생겼을 텐데, 하면서 엄청나게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돌이킬 수 없는 거죠. 기회를 제안한 건 지인이었지만, 퇴사하고 사업을 하기로 선택한 것은 제 몫이었으니까요. 무려 1년이 넘는 시간을 지옥과 같은 암흑기 속에서 보냈습니다. 지금도 힘들게 사업을 영위했던 지난 1년의 시간을 생각하면 손사래를 칩니다. 그만큼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제가 또 다른 의미에서 깨달은 게 하나 있었습니다. 어떤 걸 깨달았냐면 '기회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는 깨달음이었어요.


'그 기관에서 조직 생활을 경험한 것은 나에게 아주 좋은 기회였다. 분명히 좋은 기회였다. 근데 거기에서 나와서 사업을 시작하고, 그 사업으로 엄청나게 어려운 실패를 겪은 것도 또 다른 의미에서 아주 좋은 기회였다.'


이 생각이 어느 순간 마음에 쏙 들어오는 거예요.

우리가 흔히 기회라고 하면 로또 하나 샀는데 당첨이 돼서 떵떵거리는 부자가 되는 것이라던지, 무슨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마침 생각지도 못한 사회적인 충격과 변화로 인한 파장으로 말미암아 -이를테면 코로나라던지, 광우병 사태라던지 하는 것들 말이죠.- 난데없이 대단한 기회가 열리는 것을 기회의 일반적인 측면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기회라는 건 꼭 그런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때로는 실패의 경험들, 포기한 경험들, 잘못하고 실수한 경험들, 그런 것들도 어쩌면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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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인생을 원합니다.

적절한 나이에 초중고 졸업하고,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사업을 잘 키워서 승승장구하기도 하고, 결혼해서 아기 낳고 살다가 나중에 손자 손녀 예쁘게 잘 크는 모습 보면서 노후 보내다가 마지막에 “나 간다, 안녕” 하고 세상을 떠나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망하는 인생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인생의 모습이지요.

이런 분들이 있으면 이런 분들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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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이런 모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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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척도라고나 할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회적 기준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의 표준 Standard이 되어줄 수는 있습니다. 공교육이라는 것이 그렇고, 법이라는 것도 그렇고, 일반적으로 표준이 되어주는 기준을 따라 인생의 모양을 만들어 가다 보면 큰 문제가 없기도 하거니와,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딱히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야 누구나 겪는 것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늙어가면서 조금씩 익어간다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거든요.


반면에 이런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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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반대로 흘러가지요? 이렇게 가는 사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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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들은 처음에 집이 엄청나게 부자인 경우였겠지요. 좋은 집, 기사 딸린 좋은 차, 사립학교 등등 주변 사람들이 얻지 못하는 멋진 경험을 하다가 사업의 어려움이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렇게 몰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재밌죠?


반면에 이런 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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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이런 곡선의 인생을 사는 분들을 많이 만나봤습니다. 이 분들은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어느 시점이 되면,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무엇인가를 이 사람들은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 시점이 모두 다릅니다. 누구는 10대 때, 누구는 20대 때, 누구는 30대 때 깨닫습니다. 그 시점은 모두 다른데, 하여간 그 시점에서 뭔가를 깨닫게 돼요.


“맞아! 이거였어!”

“그래! 이렇게 하는 거였어!”

“좋아! 이제 방향을 잡았어!”


남들이 볼 때는 뭔지 모르는 그 무엇, 그것을 깨닫는 순간이 이 사람들에게는 있습니다. 이 분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집이 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근데 이분들은 뭔가를 깨달아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엔가 보이지 않는 틀機을 발견하고, 뭔가를 깨닫고, 그때부터는 그 틀을 일정하게 유지會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는 경제적인 면이든, 지적인 면이든 급속도로 올라가기 성장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기회를 잡은 사람들의 퀀텀 리프 Quantum leaf, 즉 초격차적 변화인 것입니다.

저도 이런 순간이 찾아온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지난 강의 때 제가 '나도 공부란 걸 한 번 해보고 싶다, 나도 대학이란 곳을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고등학교 1학년 때 했었다는 이야기를 드렸는데요. 그와 비슷한 경험을 20대 때 한 적이 있습니다. 퀀텀리프의 순간이었지요.

혹시 래프팅 아십니까? 강에서 급류를 따라 배 타고 내려오는 거 있잖아요. 군대에서 제대하고 난 이후에 래프팅 가이드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여름에 일을 하다 보니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에도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데, 손님들이랑 같이 비 맞으면서 래프팅을 하고 나면 아주 시원하고 개운해요. 그렇게 같이 래프팅을 하고 나면 손님들이랑 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러 가는 거예요. 손님들이랑 놀고, 밥 먹고, 술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서 시원하게 샤워하고, 선풍기 바람 틀어놓고 늘어지게 낮잠 자고. 여름 한 철을 그렇게 사는 거예요. 젊은 20대였으니까 가능했던 거지요.


하루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장대비를 맞아가면서 손님들이랑 배 타고 온 뒤에 막걸리를 마시고 놀았는데, 너무 신나게 놀다 보니까 제가 엄청 취한 거예요. 같이 술 마시던 선배들이 저를 보고 “이놈은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 얘 차 태워서 숙소에 보내!” 하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후배들이 저를 차에 태워서 숙소에 겨우겨우 데려다 놨습니다. 안 그래도 주량이 약한데 막걸리를 대접에 부어서 마셨으니 정신이나 제대로 차렸겠습니까?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상태에서 대충 씻고 나와서는 그대로 뻗어 버렸습니다.

정신없이 자고 일어났는데 시간이 밤 10 시인 거예요. 그때부터 너무 배가 고픈 겁니다. 밥도 제대로 안 먹고 술에 취해서 잤으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 거예요. 눈도 제대로 못 뜬 채로 뭐 먹을 거 없나, 하고 봤는데 다행히 컵라면을 사놓은 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트기로 뜨거운 물을 끓여서 컵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요즘 말로 ‘해장라면’이었던 셈이지요.


한참 라면을 먹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바로 앞에 전신 거울이 하나 있었어요. 거기에 컵라면을 먹고 있는 제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근데 거기에 제가 아닌 제가 있는 거예요. 마음속에서 제가 생각했습니다.

“뭐야, 저 사람? 저 사람은 정체가 뭐지?”

나는 분명히 20대의 젊은 청년이고, 군대도 무사히 제대했으니까 정말 인생을 멋지게 한 번 살아보겠다는 기대감과 자신감을 갖고 제대했는데,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은 그게 아닌 거예요. 무슨 폐인 같은 사람 하나가 쭈그리고 앉아서 컵라면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겁니다. 그 눈빛을 제가 본 거예요.


제가 그날 이후로 술을 끊었습니다. 물론 쉽게 된 건 아니었어요. 친구들 모임, 선후배들 모임이 있으면 빠질 수 없으니 한 잔씩 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제가 술을 마신 횟수만을 따져보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술은 입에 대지 않습니다. 제 인생에 수많은 전환점들이 있었는데, 그때가 제 인생에 큰 변화를 이끌어낸 순간들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teo-do-rio-EUO7L470LXk-unsplash.jpg 24살 어느 무렵부터 지금까지,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말씀드릴까 하는데요. 언젠가 검사 임용을 앞두고 있는 분이 술을 마시고 취해서 행인과 시비가 붙었다고 합니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지요. 경찰이 출동할 정도면 얼마나 분위기가 험악했겠습니까? 근데 경찰을 보고 이 분이 “너네 내가 누군지 알아?” 하면서 출동한 경찰의 머리를 두어 대 때렸답니다.

경찰 입장에서 술 마시고 시비 붙은 사람이 검사인지 검투사인지 알 게 뭡니까? 그리고 출동한 경찰 입장에서는 초면인 사람이잖아요. 당연히 누군지 모르죠. 게다가 일반적인 사람은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고요. 경찰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할 일을 하는 건데 갑자기 술 취한 사람한테 머리를 맞았으니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검사 임용이 될 정도면 대단히 똑똑하죠. 공부도 많이 했고요. 대단히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근데 그렇게 술을 먹고 나니까 평소 하지 않는 희한한 행동을 하더라는 거예요.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너 누구 라인이야!”

결국 검사 임용이 취소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어요. 아시는 분이 계실 줄 압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평소에 아무리 조용하고 착한 사람일지라도, 술에 취하면 엉뚱한 소리를 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평소에 하지 않는 별의별 소리를 다 하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 보니 저는, 당연히, 음주운전 같은 건 하지 않습니다. 술을 안 마시니까요.


살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저도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한 가지가 바로 음주운전이에요. 저는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게 잘못된 행동이라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기보다는, 음주운전을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 나는 안 걸리겠지,라고 생각하는 그런 식의 관념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음주운전은 어떤 면에서 눈을 감은 채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 누가 눈을 감고 운전합니까?

살다 보면 누구나 결정적인 상황을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때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분명히 큰 문제를 한번 만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정확하게 깨달은 것이 그때였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인생이 굉장히 큰 폭으로 성장을 했던 것 같아요.


실패를 통해 만난 또 다른 기회에 대해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작년 이맘때 제가 차를 팔았습니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할 때였는데, 자금이 막혀서 어쩔 수 없이 차를 팔았어요. 차를 팔고 나니까 차가 없잖아요. 어디 갈 때면 차를 타고 다니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는데, 돈이 없어서 차를 파니까 버스를 타고 다녀야 되잖아요. 차를 판 그날,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엉엉 울었습니다. 엄청나게 펑펑 울었거든요.

저는 제 나이 마흔 정도 되면 엄청나게 부자가 되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대학 교수도 하고, 건실한 사업체도 운영하고, 그럴 줄 알았어요. 마흔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죠. 근데 저는 안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은 다 되는데, 저는 안 되는 거예요. 사업이 실패하고, 쫄딱 망하고, 그래서 차까지 팔게 되고요. 심지어 아내가 임신 7개월 차에 접어들었을 때에는 수입이 없었어요. 일이 잘 안 풀리던 때였거든요. 뽈록하게 튀어나온 아내의 배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어요. 근데 지나고 보니까 그때도 제 인생은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었던 거예요.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기회의 시간이었던 셈이지요.

인생에 굴곡이란 있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 굴곡이라는 것이 결코 실패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라는 걸 정확하게 안다면, 시련의 시간들은 모두 내가 한 단계 성장하고 자라나기 위한 기회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차를 팔았던 그날, 마음이 너무 아프고 속상한 와중에 이런 생각이 문득 드는 거예요.

“전준우! 너 그런 실패 경험하는 거, 굉장히 좋은 거야. 너 지금 어려움 겪는 거, 굉장히 좋은 거야. 소설가라면, 작가라면 응당 겪어야 하는 과정을 겪고 있는 거야. 작가는 부침을 많이 겪어야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거야. 그래야 마음 깊이 한이 서린 글도 쓸 수 있어. 이런 어려움 많이 만나봐야 되는 거야. 괜찮아!”

제 마음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굉장히 좋은 기회야. 지금부터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해. 책을 쓰고 강의를 준비하는 거야. 거기에만 집중해!”

그런 마음이 제 마음에 드는 겁니다.

samuel-arkwright-H7xzQGMFJmI-unsplash.jpg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다. 그 시련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자력을 갖는다.

그때 제가 차를 팔지 않았더라면 그냥 타고 다녔겠죠. 늘 타고 다니던 차니까 그냥 평상시처럼 살았을 겁니다. 아무 문제 없이, 아무 걱정 없이. 그런데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차를 팔고 난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 어떻게 해야 이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지?

· 어떻게 하면 이 실패에서 벗어날 수 있지?


그때부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면서 시간표를 꼼꼼하게 짜기 시작했습니다.


· 4시 50분 기상 후 스트레칭

· 사색과 독서 1시간

· 운동하기 1시간

· 아들 깨워서 씻기고 밥 먹이기

· 아들 데려다 주기

· 1시간 글쓰기

· 1시간 미팅하기

· 일일업무


하루 24시간을 30분마다 나누어서 일정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흐트러지는 시간이 없이 시간표대로 움직이면서 하루하루를 기록해 나가는 거죠. 요즘은 하는 일도 많아지고 모임에 참석하는 것들도 있어서 30분 단위로 움직이거나 하진 않지만, 그때 어려움을 겪었던 시간들을 통해 이전보다 한 단계 성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되십니까?

제가 여러분보다 똑똑해서, 여러분보다 잘나서 성장한 게 아닙니다. 저는 다만 실패를 겪었고, 그 실패를 통해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생긴 겁니다.

· 내가 지금 술을 끊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 내가 지금 차를 팔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 내가 이런 실패를 겪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평범하게 살았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답은 나온 겁니다. 내가 겪은 실패들은 바로 기회로 연결되는 통로였다는 것이지요. 그때부터는 칼을 갈듯이 마음의 관리를 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실패의 경험들조차도 잘 넘어갔던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크로노스, 카이노스라는 신은 인간이 만든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입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가상의 인물이라는 건데, 그런 신화일지라도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는 건 있기 마련이죠. 앞머리가 길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카이로스 신이 기회의 신이라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라는 것은 분명히 정의롭고 정당한 것이다,라는 식의 변함없는 진리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분명히 삶에서 기회라는 게 있었을 겁니다.


“기회? 그때 그 경험? 나는 내 인생에 찾아온 실패였다고 생각하는데?”

“내 인생에 찾아온 어려움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희망이라고? 기회였다고?”


그렇다면 그건 여러분 인생에 찾아온 아주 놀라운 기회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사업에 실패해서 신용불량자가 되었다고 해요. 신용불량자 아십니까? 신용불량자는 신용카드도 못 만들어요. 통장이나 만들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은행에서 돈도 안 빌려주죠. 신용이 안 좋은 사람한테 누가 믿고 돈을 빌려주겠습니까? 지인한테는 빌릴 수 있겠지만 은행에서는 절대 안 빌려주죠. 여하튼 이분이 신용불량자가 돼서, 몇 억이나 되는 빚을 졌대요. 빛이 몇 억이면 사람이 어떻게 삽니까? 정말 말 그대로, 죽지 못해서 사는 거예요. 평생 빚만 갚다가 죽을 인생인 겁니다. 안타까운 인생이죠.


그런데 이 분은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용불량자가 된 그 순간부터 모든 인간관계를 다 끊기 시작한 겁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그때부터 “어떻게 빚을 갚을까? 어떻게 재기할까? 어떻게 다시 성공할까?” 그 고민을 쉼 없이 하면서 사업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많던 수 억 원의 빚을 다 갚고, 연 매출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재벌처럼 떵떵거리는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아파트에 살고, 좋은 차도 살 수 있고, 돈 때문에 공부도 제대로 못한 아이들을 먼 외국으로 유학까지 보낼 수 있는 정도의 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분에게 실패는 기회였습니까, 아니었습니까? 당연히 기회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겠죠.


· 왜 내가 신용불량자가 돼서 이런 어려움을 겪어야 돼?

· 왜 내 인생은 이렇게 힘들어야 돼?

· 왜 나는 이렇게 고통받아야 돼?


땅을 치고 눈물을 흘리면서 고통스러워했을 겁니다.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게 기회였다는 걸 안 겁니다. 카이로스의 신이 지나가는 그 순간, 앞머리를 강하게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엔 그 어려움이 카이로스의 신, 즉 기회인 줄 몰랐겠지만요.


저도 제가 수많은 기회 가운데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강의 시간에 말씀을 드렸던 것 같은데 최근에 가까운 분들이랑 역사에 관련된 원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같이 원고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분들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총 5명의 저자가 책을 집필하는데, 4분이 박사학위를 가진 역사학자입니다. 그중에 세 분은 대학에서 교수 겸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시고, 한 분은 관련 논문을 교정교열하는 일을 하면서 정출연(정부출연연구기관의 약자로, 정부 출연금으로 운영되는 연구기관을 의미한다. 한국개발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이 있다.)의 연구원으로도 활동 중이십니다. 그야말로 똑똑하고 대단한 분들이죠. 나이도 저보다 연배 이상 많은 분들이십니다. 저는 지방대 학사를 졸업한 사람이거든요. 수학 시험을 4점 맞은 사람입니다. 수학 시험에서 4점 맞은 사람이 무슨 역사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전혀 관심이 없어요. 잘 알지도 못하고요.


그런데 저의 똑똑함이나 어리석음은 별로 상관이 없었나 봅니다. 이전에 함께 공저를 진행했던 박사님에게서 먼저 연락이 온 겁니다.

“전 작가님, 같이 원고 한 번 써보시겠습니까?”

“어떤 겁니까?”

“역사에 대한 책입니다.”

사회적인 위치로 보나, 인생의 연륜으로 보나 저보다 훨씬 앞서 나가고, 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단한 분들이 역사의 ㅇ자도 모르는 저 같은 사람에게 책을 같이 써보자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가까운 지인에게 물어봤습니다. 여차여차한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냐고요.

그 친구의 반응이 무척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형, 그거 굉장히 좋은 기회야. 몰라도 괜찮아. 형이 배울 수 있는 기회니까 반드시 한다고 해. 그래서 많이 깨지고, 많이 배워. 할 수 있어.”

그 친구의 말에 용기를 얻어서 300개가 넘는 논문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읽고, 관련된 책을 30권 넘게 빌려와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마음에서도 “내가 깊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구나.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반드시 이건 기회가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hanna-morris-Eu_jjK6Z67Q-unsplash.jpg 손을 내밀어라, 기회가 다가올테니.

지금 여기 앉아 계시는 여러분들의 이유가 제각각일 줄 압니다. 누구는 몸이 안 좋아서, 누구는 마음이 힘들어서, 누구는 또 다른 이유로 이 자리에 오셨을 줄 압니다. 이유야 무엇이든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탄 사람들인 것이지요. 단,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인생은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 왜 내 인생이 여기서 이렇게 멈춰야 돼?

· 왜 나만 이런 곳에서 교육을 받아야 돼?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여러분은 여기에 머무르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하지만


· 저 사람 말이 100% 믿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 사람 말처럼 지금이 진짜 내 인생의 기회라면, 오늘의 경험을 전환점으로 삼아서 뭐라도 도전해 봐야겠다.


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반드시 비약적인 발전, 즉 퀀텀 리프 Quantum Leap 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들이 나중에 저처럼 강의를 할 수도 있고요, 교육을 나가서 누군가를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에 여러분들을 교육하러 온 것도 저에게 기회가 되지만,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들도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기회라는 것은 늘 좋은 성과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나쁜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도 기회일 수 있습니다. 지금 나쁜 결과를 가져온 것도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은, 기회의 신이 들고 있는 저울, 즉 공평성의 법칙이 성립됨을 의미합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정당해야 합니다.

· 저 사람은 잘 사는데 내 인생은 왜 이래?


이건 기회가 아니죠. 저 사람이 저렇게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는 나름대로의 문제가 있는 겁니다. 혹은 앞으로 어떤 문제가 찾아올 수도 있는 겁니다. 신이 아닌 바에야 인간의 삶 속에 발생하는 수많은 일들, 즉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에 대해 어느 누구도 함부로 입을 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회의 신은 참 멋진 존재 아닙니까?


제가 언젠가 인터넷에서 발견한 시를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제목이 <다행>입니다. 유정화라는 분이 쓴 시입니다.


다행(多幸)


가난한 셋방살이

돈 벌러 나간 부모 대신

옥상에 빨래를 널던 남매에게

집주인이 건넨 초코파이 한 박스


성적보다 안부를 물어주던 선생님

터무니없는 꿈도 함께 꿔주던 친구들

낯선 도시 길을 알려준 타인들

유독 힘겹던 하루 누군가 비워둔 자리

차창 밖으로 비처럼 쏟아지던 노을


나는 불행 중 수많은 다행으로 자랐다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언젠가 서울에 강의가 있어서 갔다가 지하철 역에서 읽은 시였습니다. 너무 감동을 받아서 제가 얼마나 눈시울을 붉혔는지 모릅니다.


“나는 불행 중 수많은 다행으로 자랐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이토록 잘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기회를 너무나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어려움, 외로움, 슬픔. 그런 문제와 불행이 있을 때마다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는 사람들, 또 도와주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풍요로움을 느끼곤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곁에는 부모님도 계시고, 친구도 있고, 나를 이끌어준 훌륭한 선생님이나 주변 동료들, 또 은사님들이 계시죠. 그런 분들이 우리에게 행운이고 진짜 기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는 많은 기회가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다행으로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함께하신 겁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다행이 있을 겁니다. 무사히 오늘 수업에 참석한 것도 여러분들이 사고가 나지 않았고, 여러분들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오신 거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거나, 천재지변이 있었더라면 저도 오늘 강의에 못 왔겠죠. 혹은 집안에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문제가 생겼더라면 역시 오늘 강의에 올 수 없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 불행이 저에게 없었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을 만나러 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것 역시 저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늘은 기회라는 단어를 갖고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글, 훌륭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기보다 여러분의 마음에 떠오르는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차분한 마음으로 써보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좋은 시간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