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를 위한 글쓰기 수업 5강

주제 :: 생각

by 전대표

2024년 3월부터 12월까지 울산 북구 보건소 내에 위치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강의한 자료를 정리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 글은 5강 수업 내용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반갑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매시간 강의를 진행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참석하신 우리 선생님들의 반응에 늘 감탄하곤 합니다. 여러분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제가 책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심리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Psychology,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재직하던 윌리엄 제임스가 집필한 책으로 1890년에 출판되었다.]]라는 책인데요. 이 책을 쓰신 분이 지금으로부터 약 170년 전에 살았던 분입니다. 160~170년 전에 살았던 분인데,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라는 분이거든요.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인체 해부학을 강의하던 분이었습니다. 그 분이 쓴 책입니다. 3권짜리인데 내용이 엄청 어렵습니다. 심리학이라는 학문은 ‘사람의 마음은 이렇고, 이렇게 흘러간다’ 하고 이야기해주는 학문인데, 심리학에 관련한 저서 치고는 꽤 오래 전에 쓰여진 책이기도 하고, 굉장히 심도 있는 해부학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보니 너무 어렵더라고요. 다만 저는 이런 어려운 책을 읽는 것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편이라서 어려워도 어려운 대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희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텐데요, 오늘의 주제는 바로 생각Think입니다.


저는 목요일 아침마다 고전 독서 모임에 참석합니다. 아침 6시부터 모임을 시작하는데요, 아침 5시 반에 차를 타고 출발하면 5시 50분쯤 모임 장소에 도착합니다. 그 시간이 되면 모임을 인도하시는 분이 벌써 나오셔서 강의자료와 간단한 다과를 준비해두고 계십니다. 그러다 아침 6시가 되면 10명 정도 되는 분들이 모이는데, 그때부터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고전을 읽으면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전국에 10개가 넘는 모임이 형성되어 있는데, 진행하고 있는 도서와 진도에 관련한 시차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동소이합니다. 모두 진지하게 고전을 대하고, 새벽 공부의 엄숙함을 사랑하는 분들이라서 감사한 마음으로 배우고 익히는 경험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하루는 모임에서 함께 공부하시는 분이 집 근처에 위치한 대학교의 평생교육원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강의를 참석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강의에서 강사가 매 시간마다 글쓰기에 관련된 주제를 정해주는데, 하루는 칠판에 <밭>을 쓰더랍니다. 그리고는 “오늘은 저희가 <밭>을 주제로 글을 한번 써보겠습니다. 시도 좋고, 단편소설도 좋고, 수필도 좋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한 번 써보시면 좋겠습니다.”하고 이야기를 하더래요.


karsten-wurth-UbGYPMbMYP8-unsplash.jpg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른 마음의 밭을 가지고 있다. unsplash

이분은 젊은 시절에 남편이 돌아가셔서 일찌감치 과부가 되신 분이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다 보니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습니까? 혼자 아들, 딸을 키워서 대학 교육도 다 시키고, 장가도 보내고 시집도 보내고 나니 어느덧 60이 훌쩍 넘은 거에요. 진짜 인생은 60부터 시작이라고 하지요? 마침 집 마당에 작은 밭이 하나 있다고 해요. 시쳇말로 ‘손바닥만한 텃밭’인 셈이지요. 그 때부터 그 밭에 고추도 심고, 쑥도 심고, 상추도 심고, 뭐 그러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는 겁니다.


이분이 그 손바닥만한 텃밭에서 가만히 호미질도 하고 상추도 캐고 나물도 캐는 동안 이런 저런 생각을 하신다고 해요.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얼굴도 생각나고, 혼자서 아들, 딸 키우면서 어려웠던 시간들도 생각나고, 무슨 지렁이가 이렇게 크냐, 이런 생각도 하고. 그렇다 보니 쓸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는 겁니다. 이분에게는 <밭>을 주제로 수필을 쓰거나 단편 소설을 쓰거나 시를 쓴다는 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닌 겁니다. 밭을 일구는 동안 혼자 생각하고 느꼈던 모든 감정의 흐름을 글로 정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아주 쉽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던 셈이지요.


근데 다른 분들은 그렇지 않았나 보더라고요. 그 때 참석하신 분들의 나이대는 모두 다르지만, 대개 본인과 비슷한 연배의 분들이었다고 해요. 평생교육원에서 글쓰기 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신 분들이었으니, 기본적으로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는 분들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모르긴 해도 다들 대학물 정도는 드신 분들이었겠지요. 직장에서 아주 높은 위치에 있는 분도 있고, 사업을 크게 하는 분도 계시고, 남들이 우러러 보는 좋은 대학에서 석사니 박사니 공부하신 분도 계시고요. 근데도 이 분들은 <밭>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게 너무 어려운 겁니다.

<밭>이라는 주제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거 아니냐,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더래요. 다른 주제를 갖고 글쓰기를 해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더라는 겁니다. <손>, <발>, <바나나>, <원숭이>, <남편>, <아내>, <가족> 등등 어떤 주제를 갖다 놓더라도 쓰지를 못하는 거에요, 그야말로 글쓰기 그 자체를 어려워하더라는 겁니다.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어서,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이렇다 할 주제로 써보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평소에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쓸 게 없더라는 거지요. 반면에 본인은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계속 가지다 보니까 쓸 게 엄청나게 많다고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제가 고전을 공부하고 있으니 고전에 대해 잠깐 말씀을 드릴 건데요. 흔히 이야기하는 고전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고전古典 : 오랜 시대를 거치며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가치를 인정받아 전범典範을 이룬 작품. 일반적으로 ‘고전古典’이라고 하면 고전 서적을 의미한다. (출처 : 위키백과&나무위키)


그러니까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면서 가치를 인정 받은 책, 혹은 작품이라는 거지요. 어떤 작품이 고전이 되고 고전의 반열에 오른다, 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습니다만, 일반적으로 ‘현재를 기점으로 출간된 지 200년 이상 된 작품 중에서 변함 없이 사람들에게 전해져내려오는 것’을 고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고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었는데요. 이런 고전을 공부하는 모임에서 늘 느끼는 거지만, 고전에는 변하지 않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화려한 면모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몇천 년이나 된 이런 고전을 보면 화려한 게 전혀 없어요. 화려한 게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읽다 보면 “이런 책이 어떻게 몇 천 년씩이나 이어져 내려왔지? 어떻게 사람들을 통해서, 글과 말을 통해서 전해져 내려왔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오래된 고전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주문같은 말만 구구절절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쉽고 재미있어요. 소설형태의 책도 있고, 에세이 형태의 책도 있고, 짧은 생각을 정리해서 모은 단상 형태의 책도 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이 기록한 어떤 책(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그냥 잘 정리한 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재밌죠. 그렇다 보니 딱히 뭐 대단한 건 없는데 왜 이렇게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 오는 걸까, 하면서 읽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을 계속 계속 파내려가다 보면, 한가지 결론으로 생각이 귀결됩니다. 그게 무엇이냐면 “이 고전들은 모두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모두 나, 그러니까 ‘인간으로서의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정확하게 보이더라는 겁니다. 그때부터 이 책을 읽는 게 너무너무 재밌는 거에요.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변변않.jpg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강민호 저. google


강민호라는 분이 쓴 책의 제목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이 책을 읽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없어도 괜찮습니다. 제가 설명을 드리면 되니까요.

여러분들이 강의를 듣고, 또 제가 강의를 하는 이곳은 정신건강복지센터입니다. 공공기관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삼성이나 현대 같은 회사는 아니죠. 삼성, 현대, 기아,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과 같은 곳이 소위 말하는 회사이겠지요. 이 분은 그런 회사를 마케팅하고 브랜딩하는 분입니다.


마케팅, 브랜딩.


많이 들어서 익숙한 단어이긴 하지만, 막상 설명하라면 잘 모르죠. “마케팅? 브랜딩? 어떻게 설명하지?” 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구요. 제 분야는 아니니까요. 다만 쉽게 설명을 드리자면, 마케팅은 ‘이 회사는 정말 좋은 곳이고 제품도 정말 좋은데,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회사를 좋아하게 하고, 이 회사에서 나온 제품을 좋아하게 되고, 이 회사에 대해 충성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마케팅의 기본입니다. 그러니까 이 분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조직이든, 기업이든 결국은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니까요.


이 분이 쓴 책 중에 아까 말씀드린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의 핵심 중 하나가 ‘마케팅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케팅Marketing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변하지 않는 본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 마케팅이라는 겁니다. 마케팅이라는 건 본질에 우선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해요. 그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조금 어려운 내용도 있긴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SNS하시는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SNS의 장점이 많지만, 저는 주로 사색하는 시간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잘 사용하진 않습니다. 인스타그램은 가족 사진이나 올리고, 한번씩 좋은 책 소개하는 정도로 사용하고 있구요. 이런 강의나 저서 집필 컨설팅, 대필 컨설팅도 제가 하는 일들 중 하나인데 주로 소개를 통해서 일이 들어오기 때문에 SNS는 잘 안하게 되더라구요.

좌우지간 SNS가 요즘은 누구나 다 사용하는 소셜 플랫폼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대세를 끌고 있는 인스타그램을 만든 사람은 케빈 시스트롬Kevin York Systrom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페이스북(現 Meta platforms)을 만든 사람은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라는 사람이구요. 그 외에 SNS는 아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서점이라는 타이틀로 시작해서 지금은 미래를 창조하는 기업으로 알려진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Jeff Bezos, 그리고 전기 자동차를 만드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Elon Reeve Musk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그러니까 세계에 존재하는 슈퍼리치 62명의 재산이, 전 세계 인구를 100명으로 나눴을 때, 하위에 존재하는 50명이랑 맞먹는다고 합니다. 62명이 갖고 있는 부의 크기가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랑 비슷하다는 거에요. 전 세계 인구가 70억 명 정도 된다고 하니까, 슈퍼리치 한 명이 약 5천만 명 정도의 일을 한다는 거지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5천만 명이 1년 동안 할 일을 한 명이 1년 안에 해내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에 관련해서 언젠가 책에서 본 내용을 잠깐 말씀드릴까 합니다. 앞서 언급한 슈퍼리치의 일화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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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사람이 있다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 혼자 꼼지락꼼지락거리면서 뭔가를 만들고, 혼자 중얼중얼거린답니다. 이 사람이 최초의 슈퍼리치입니다. 그럼 이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너 뭐해? 같이 하자!”하면서 따라온답니다. 그 뒤를 이어서 예닐곱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어? 뭐야? 같이 하자!”하면서 따라온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이 사람들이 하고 있는 그 ‘뭔가’가 활성화가 되고, 당연하고 보편적인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요. 그때서야 비로소 ‘당연시되어 있는 이것’을 나머지 90명이 따라간다고 합니다. 전문용어로 1:9:90의 법칙이라고 하는데요. 한 명의 사람은 Contents creator, 즉 뭔가를 창작하고 창조해내는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나머지 9명의 사람은 Contributors, 참여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머지 90%의 사람은 Lurkers, 관조자 혹은 관찰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냥 “쟤네 뭐하고 있는고?”하고 바라만 보는 사람들이라는 거지요. 주로 SNS에서 사용되는 의미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SNS에서 주로 사용되는 의미이지만, 조직에서도 이런 이론이 있습니다. Span of Control이라는 이론인데요. 일반적으로 한 명의 사람이 관리하고 리드할 수 있는 인원의 수가 10명 안팎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 10명의 사람들이 하위 10명을 또 관리하고, 그 하위의 10명이 또 10명을 관리하는 식으로 조직이 이루어져 있다는 거지요. 직원이 아주 많은 대기업이라고 할지라도 회장과 사장 한 명이 모든 직원을 일일이 관리할 수 없습니다. 조직을 나누어서 관리를 하는데, 그렇게 되니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은 일만 명이라고 할지라도 방향을 잡고 통제하는 인원은 10명 안팎이라는 거지요. 실제로는 1명의 리더가 존재하구요.


근데 이 10명의 사람들은 확실히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Contents creator도 그렇고, 조직을 이끄는 사람들은 생각을 아주 깊이 하는 능력이 발달되어 있습니다. 이 10명의 사람들은 모두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익숙한데, 바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을 한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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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려운 얘기니까 다른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 라는 뜻을 가진 말이지요. 원효대사가 해골물 먹은 사건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는데요. 제가 언젠가 문득 궁금해져서 인터넷에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 해골물 때문에 장티푸스에 걸릴 수도 있나요?


웃기죠?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누군가 아주 과학적으로 풀이를 해서 진지하게 ‘해골물 속에 있는 물은 고여 있는 물인데 썩지 않았기 때문에 장티푸스에는 안 걸렸을 겁니다.’ 하고 답변을 달아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원효대사가 청나라로 유학을 가려고 길을 떠났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서 동굴에서 하루 묵었다는 이야기 다들 알고 계시죠? 거기에서 하루 묵었는데, 동굴 안이 먼지도 많고 건조하다 보니 잠을 자는데 잠결에 목이 말랐나 봐요. 젊은 사람이 먼 길을 유학 가는데 물 한통 안 떠가고 뭐했나 싶긴 한데, 여튼 목이 말라서 깼다고 하죠. 동굴에 뭐 없나, 하고 둘러보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하필 그 자리에 물이 고여 있는 물통이 하나 있는 거에요. 이게 뭐야! 웬 물이지! 하면서 마시는데, 하필 잠결에 목이 말라서 마시다 보니 물이 너무 달고 시원한 겁니다. 그렇게 물을 잘 마시고, 다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웬 해골에 물이 담겨져 있는 걸 본 겁니다. 갑자기 막 토가 나려고 하고, 속된 말로 ‘멘붕’이 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그때 이 양반이 깨달았다는 거죠. 결국 모든 것들은 마음먹기에 달려있구나, 하는 것을요. 내가 처한 위치가 어디이던지 간에 배울 마음을 갖고 배운다면 뭐라도 배울 수 있고 뭐라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청나라에 가서 유학을 하지 않더라도 되지 않겠나, 여기에서도 충분히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지 않겠나, 하고 생각했다고 하죠. 결국 유학을 가지 않고 엄청나게 많은 업적을 이룬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이게 원효대사 해골물에 관련한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 유학을 가는 게 아무에게나 허락된 건 아니었겠습니다만, 좌우지간 당시엔 이 사람도 그저 평범한 젊은이였을 것입니다. 특별한 게 아니었다는 거지요. 지금이야 원효대사의 해골물이니 뭐니 하고 역사에 널리 알려진 인물로 남아 있지만, 그렇게 역사적 인물로 남을 수 있었던 결과의 원인은, 그저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하고 생각 하나가 달라진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까 제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변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네, 의식주가 있지요. 너무 멋진 의견입니다. 누구나 옷을 입어야 되고, 먹어야 되고, 잠을 자야 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의식주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죠. 또 뭐가 있을까요? 원소! 원자! 아니, 너무 수준이 높은 거 아닙니까? 제가 강의를 해야 할 게 아니고 앉아 계시는 선생님들이 강의를 하셔야 될 것 같은데요. 너무 수준 높은 단어들이 나왔습니다. 지난번에는 민주주의의 발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는데, 확실히 배우신 분들이라 그런지 굉장한 내용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게 어떤 게 있을까요? 해sun, 맞습니다.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자연Nature, 좋습니다. 이런 것들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직업병이 있는 과학자들은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도 합니다. “50억 년, 100억 년 뒤에는 태양이 사라질 거 아니야? 지구도 사라지는 때가 오겠지. 그럼 그것도 어차피 사라지는 거 아니야? 태양이 뜨고 달이 뜨고 그런 것도 언젠가 빅뱅처럼 폭발하게 되면 사라질 거 아니야. 그럼 그건 변하는 거잖아.” 뭐 이런 식의 이야기들 말입니다. 논점을 흐리는 그런 식의 대화 말고, 우리는 문학을 통해 심리학적으로 접근해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더 넓어지고 나아지는 과정을 배우는 거니까 좀 쉽게 생각해보자구요. 과학적으로 뭐 어쩌고 어쩌고 이런 거 말구요. 우리가 과학과 천문학을 배우거나, 복잡한 수학 계산을 배우는 건 아니니까요.


일반적으로, 그러니까 누구나 수긍하고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해 봤을 때 우리가 진리라고 하는 것들은 아까 말씀해 주신 의식주, 원소, 원자, 해와 달, 자연, 이런 것들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도 있습니다. ‘화상을 입거나 사고로 장애인이 되거나 피부 조직이 변하면 육체도 변하는 거 아니야?’ 그런 식의 대화 말고, 보편적으로 나이가 들면 주름도 생기고 얼굴 형태도 조금은 변하긴 하지만, 누구나 태어날 때 그 얼굴 그대로 나이가 들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소위 말하는 진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있잖아요. 살면서 절대 변하지 않는 것, 사물의 특성상 불변성을 가진 어떤 것, 즉 진리에 속하는 것들이 있는 반면에, 인간의 생각과 마음은 우리가 어떻게 변화를 유추하고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겁니다. 적절한 자극, 적절한 노력, 변화를 향한 갈망 등을 통해 달라지고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 또한 진리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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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굉장히 공부를 못하는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공부를 굉장히 못했어요. 혹시 학교 다닐 때 수학 시험에서 4점 맞아보신 적 있습니까? 100점 만점에서 4점이요. 10점은 한 분 계시네요. 저보다 나은 분이 여기 앉아 계시는군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시험에서 4점을 받은 적이 있어요. 객관식 문제가 25개라고 하면 한 문제당 점수가 4점인 셈이지요. 그 중에 24개가 틀리고 한 개만 맞춘 것이죠. 당시 전교생이 228명이었는데, 제가 221등을 했습니다. 제 밑에 7명도 4점이거나 0점이거나 그랬을 겁니다.


고등학생 때 있었던 일입니다. 같은 반에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이 친구는 저보다 공부를 더 못하는 친구였거든요. 그 친구가 하루는 꿈을 꿨는데 너무 좋은 꿈을 꿨대요. 하필 그 날이 전국 수능 모의고사가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400점 세대인데요, 당시 수능시험에서 380점이나 390점 정도 나오면 서울대에 갈 수 있었고, 350~380점 정도 나오면 서울의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때는 저희 모두 고등학생이었고, 지금처럼 로또도 없으니까 그냥 ‘좋은 꿈 꿨으니 모의고사에서 점수도 좀 나오려나’생각했대요. 그래서 내심 조금은 기대를 하면서 모의고사를 쳤는데, 0점을 맞았다는 겁니다.

웃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거 정말 대단한 능력입니다. 수능에서 400점 만점 맞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매년 수능시험 만점자가 언론에서 인터뷰도 하고 무슨 대학 무슨 학과에 들어갔다고 나오곤 하는데, 모든 문제를 알고 풀었기 때문에 만점을 맞았다는 뜻이잖아요. 모의고사 0점은 모든 문제를 다 알기 때문에 답을 피해가거나, 수백개의 질문을 모두 다 틀려야만 받을 수 있는 게 0점입니다. 그러니까 수능 모의고사 0점 받는 게 로또 1등 당첨되는 것보다 훨씬 더 확률이 높은 거에요. 주관식은 모두 빈칸으로 제출한다손 치더라도, 5지선다 객관식 시험의 특성상 한 번호로만 찍어도 절대 0점이란 게 나올 수 없거든요. 더 웃긴 건, 당시 전국에 모의고사 시험을 본 수험생이 36만 명 정도 있었는데, 이 친구는 등수로 33만 등 정도를 한 겁니다. 빵점 맞은 친구들이 전국에 4만 명 정도 있었다는 이야기잖아요. 그야말로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마다 나름의 사연은 있었을 거에요. 모의고사 자체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아서 시험을 백지로 제출한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고, 가정사와 개인사로 인해 시험 자체를 치르지 못한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고요. 가정이 어려워서 그 날에도 일을 해야 했던 친구들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나처럼 평범하게만 살 수 있겠습니까? 저마다 사정이란 게 있기 마련이지요. 좌우지간 좋은 꿈을 꾸고 모의고사 0점을 받은 그 친구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졸업할 때까지 이슈로 남아있었습니다.


좀 웃긴 이야기로 빠졌지만, 저의 경험을 통해서 생각과 마음이라는 걸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왜 해야 되는지 몰랐습니다.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공부해서 딱히 뭐 달라지는 게 있겠나, 그런 생각도 들었구요.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가을에,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나도 좀 달라지고 싶다.

- 나도 공부라는 걸 한번 해보고 싶다.


그 생각을 하고 난 뒤, 그 다음부터는 늘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어요.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애들도 다 저랑 비슷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수학 시험에서 8점 받고 12점 받는 친구들이요. 선생님이 수업하시는데 계속 졸고, 농구공을 손가락 끝에 올려놓고 돌리듯이 책에 구멍 뚫어서 연필로 빙빙 돌리는 친구들이 가득한 학교였습니다. 그걸 보고도 선생님은 말 안 해요. 말해봤자 싸움밖에 안 나니까요.


- 왜요? 선생님이 뭔데요?


그런 시대였고, 그런 학생들이 가득한 학교였어요.

어떤 녀석은 수업을 잘 듣는 척하면서 계속 뭘 먹어요.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서 입에 넣고, 입을 가리고는 기침하듯이 콜록콜록하면서 계속 먹습니다. 쥐포도 먹고, 초콜렛도 먹고요. 얼굴은 칠판을 바라보는데 손은 밑으로 내려놓고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놈들도 있고요.

선생님들도 속으로는 답답하셨겠죠. “야 이놈의 자식들아. 너희들 커서 뭐가 되려고 이렇게 살고 있냐!”하고 생각하셨겠죠. 근데 아무 말도 안해요. 고등학생이니까 머리도 굵어졌겠다, 잔소리라도 한 마디 하면 그 다음부터는 복도에서 마주쳐도 아예 인사를 안하는데, 그런 애들한테 무슨 잔소리를 하고 싶겠습니까? 그냥 포기하는 게 속이 편한데요.


근데, 그랬던 놈들 중에 한 놈이,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 하면 뱁새눈으로 째려보고 입으로 들리지도 않게 중얼중얼 저주를 퍼붓는 놈들 중에 한 놈이, 어느날부터엔가 맨 앞에 앉아서 계속 자기 나름대로 공부를 하는 걸 선생님들이 보시는 거에요.

“야, 저 녀석이 공부를 하려는갑다”, 하고 생각했는데 성적표를 받아 보면 8점이에요. “어? 뭐지? 아냐, 저 녀석 달라졌어, 믿어봐야지.” 그리고 다음번 시험에서 성적표를 받아보면 16점이에요. 20점 만점이 아니라 100점 만점에 16점이요.

기초 지식이라는 것, 공부 방법이라는 것이 없다 보니 단기간에 뭔가 달라지진 않더라구요. 성적표를 받아봐도 확 좋아지는 게 없었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저를 보고 “니가 무슨 공부를 하냐?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습니다. 기분은 나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해요. 그들이 보는 저는 그리 대단한 게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제 마음에서는 어떤 변화를 꿈꾸고 있었다는 겁니다. 어떤 변화? 공부 잘하고 싶다, 나도 달라지고 싶다, 하는 변화 말입니다.


- 나도 달라지고 싶다.

- 나도 변하고 싶다.


그 생각이 마음에 쏙 들어오니까, 제 인생에 아주 미세한 변화가 조금씩 생기더라는 겁니다.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학벌도 별로 안 좋고,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학창시절에 정상적으로 교육을 배웠더라면 누구나 알 만한 정경사문에 대해 가끔은 말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이제 40대에 접어든 저에겐 일종의 핸디캡이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세한 변화가 20년간 지속되다 보니 이런 데 와서 강의도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더라는 겁니다.


aaron-burden-Ncn1jiEe-Wc-unsplash.jpg 사랑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unsplash

저는 종교는 없습니다. 다만 철학적인 질문과 현상에 관심이 많다 보니 종교서적도 찾아서 읽곤 하는데요.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생각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요한복음13:2)


여기 앉아계시는 여러분들 중에 종교가 있는 분도 계시고, 없는 분도 계시겠지만, 부처님의 일화는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원래 왕자였는데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진리를 깨달았다, 하는 일화 말입니다. 자세히는 몰라도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슷한 예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셨을 겁니다.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하는 내용이지요. 근데 그 십자가로 끌려가서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과 원인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성경을 읽지 않으면 모르거든요. 그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실제적인 문제들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히시게 된 원인은 당시의 법적 문제, 사회적 문제, 종교지도자들의 교만, 예수님의 이적을 통한 권위 실추 등등 다양한 원인들이 맞물려서 발생되었습니다. 웬 젊은 놈이 하나 나와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하면서 죽은 사람도 살리고, 바다 위를 걷고, 뭐 그런 이적들을 행하는데 딱히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빼짝 말라서 볼품도 없고, 어두운 산에서 밤새 기도하고, 뭐 그랬을 거 아니에요? 그렇다 보니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 눈에는 어떻게든 빨리 처리해야되는 부류의 사람이었겠지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데, 실제의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가롯 유다라고 하는 제자로부터 배신을 당한 것이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게 된 것은 모두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수많은 이적을 보고, 능력을 경험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어떤 생각이 하나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 예수 따라다녀봤자 부자 안되네.

- 3일 내내 굶고, 벼 이삭이나 잘라 먹고. 굶어 죽겠네.

- 빵 5개에 물고기 2개로 뭐? 5천명을 먹이라고? 지금 장난하나?


뭐 그런 생각들이 늘 가롯 유다의 마음에 가득한 겁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생각이 점점 날카로워지더니, 하나의 결심으로 굳어버립니다.


- 그냥 팔아버리자. 괜찮아.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부자가 되었나? 그렇다고 밥을 잘 먹여주나? 늘 잔소리나 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나 하는데. 에이, 모르겠다. 까짓것 팔아버리고 나는 내 살 길을 찾아가야겠다.


그렇게 결심한 가롯 유다는 얼마간의 돈Thirty pieces of silver을 받고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Chief priests에게 예수님을 팔아버립니다.

근데 이 사람이 양심이 있었나 보더라고요. 이후에 예수님을 넘겼던 사람들한테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대요.

-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못된 것 같다. 이건 아닌 것 같다. 예수님 풀어줘라. 당신들한테 받은 거, 이거 내가 돌려줄게. 그 사람 풀어줘라.


아주 사정사정을 했습니다. 근데 이 사람들이 안 듣는 거에요. 당시의 Chief Priests, 즉 대제사장들은 굉장히 권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해보자면 3-4선 국회의원, 장관, 총리, 부장검사, 부장판사 정도의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게 되실 겁니다. 그 사람들이 가롯 유다에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 야, 니가 팔았잖아! 니가 알아서 책임져! 우리한테 왜 그래?


이 사람이 받은 돈이 있잖아요. 요즘 시세로 치면 한 500만 원 될까요? 그 돈을 휙 던져버리고 가서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렸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팔아버린 가롯 유다, 그리고 그런 가롯 유다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이야기가 성경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eva-blue-2yc0Jofvezo-unsplash.jpg 가롯유다는 용서와 회개보다 자살을 선택했다. unsplash


생각이라는 건 무서운 것입니다. 생각은 마음과 행동에 직접적으로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 나도 공부하고 싶어!

- 나도 달라지고 싶어!


이 마음이 들면요. 이 마음이 행동으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나도 달라지고 싶다,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와서 강의도 듣게 되고, 수업도 듣고, 뭔가 생각도 하고, 글도 쓰고 그러시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도 갑자기 맨 앞자리에 앉은 게 아니었습니다. 뒷자리 구석에 앉아서 몰래 과자나 먹고 인근 여고 여학생들이랑 문자나 주고 받는 게 더 재밌는데 굳이 맨 앞자리에 뭐하러 앉겠어요? 수학 8점 맞는 애가요. 근데 저는 너무 달라지고 싶었습니다. 변화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맨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게 된 겁니다. 나도 한 번 달라져보자, 나도 공부라는 걸 한 번 해보자, 하구요.


하루는 무슨 문제를 푸는데, 너무 안 풀리니까 선생님이 수업하다가 말고 물어요.


- 니, 뭐 안 되나?

- 예, 이거 모르겠어요.


선생님이 딱 보니까 아주 기초적인 거예요.


- 알았어, 잠깐만. 내가 이거 끝나고 해줄게.


하시던 말씀 다 끝내고 다시 묻습니다.


- 준우야, 아까 그거 몇 번 문제였지?

- 3번 문제입니다.

- 그래. 그거는 있잖아, 이렇게 이렇게 하는거야. 알겠어?

- 어, 아니요.

- 어디가 막혀? 아, 거기? 오케이.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알겠지?

- 어, 아니요.

- 다시 해줄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이젠 알겠지?

- 어, 아니요.


이걸 몇일을 반복했는데, 한 일주일 그 고생을 하니까 조금 알겠더라고요. 그 이후에도 수학은 별로 못 했습니다만,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는 학창 시절의 기억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0년 9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 나도 좀 달라지고 싶다.

- 나도 공부한 걸 한번 해보고 싶다.

- 나도 대학에 가고 싶다.

- 누가 날 봤을 때 ‘저 친구 진짜 괜찮은 친구야. 믿을 만한 친구야.’ 나도 이런 이야기 한번 들어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어느 순간 들고 난 이후로,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학창시절엔 국영수사과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 소위 말하는 SKY가는 것이 대부분 친구들의 목표였을 겁니다. 근데 나이가 들면서 공부라는 게 조금 달라지더라고요. 공부라는 것의 개념이 ‘국영수사과를 잘하는 것’에서 ‘지혜롭고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으로 바뀌는 겁니다.

학교 다닐 땐 주요 과목만 잘하면 그만이었겠지만, 세상은 국영수사과 잘한다고 해서 대단히 인정해주지는 않습니다. 올바른 인간관계, 리더십, 일을 지혜롭게 처리해나가는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등 다양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세상입니다. 소위 말하는 일머리도 자꾸 하다 보면 좋아지고 괜찮아지는 것이지,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국영수사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배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나이가 들수록, 10대 시절에 생각을 한 번 바꾸어 본 것이 인생에서 굉장히 크고 놀라운 것들을 많이 얻게 해준다는 것을 점점 더 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바뀌니까 습관도 많이 달라졌어요.

저는 결혼하기 전부터 항상 아내한테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 만약에 우리가 원룸에서 살게 되면, 원룸 전체를 서재로 만들거야.

nick-hillier-IEkMMvdZFc0-unsplash.jpg 서재에서 나의 내면을 만들었다. unsplash


신혼부부가 돈이 어디 있어요? 원룸부터 시작하는 거지요. 그렇게 원룸에 살게 되면 원룸 전체를 서재로 만들 거라고 선전포고를 놓았습니다. 원룸 전체를 그냥 책으로 둘러쌀 거라고 엄포를 놓은 거에요. 근데 부모님과 주변 분들의 도움을 좀 얻어서 투룸에서 살게 된다면? “하나는 안 방, 하나는 서재로 만들거야.”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애기가 태어나면 하나는 서재, 하나는 안방 겸 애기방. 단순하죠? 애가 둘이 태어나면 하나는 안방 겸 애기 둘 방, 하나는 서재. 항상 그 얘기를 했어요.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건 비슷비슷합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롭고, 힘들고 하는 차이는 있지만, 일하고,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동소이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변수라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경제적 풍요로움은 대단한 편리함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때로는 내적 풍요로움을 선물해주기도 하지만, 변수라는 복병을 생각해봤을 때 경제적인 성공만이 인생의 성공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데 딱히 이견은 없으시리라 생각됩니다.


내적인 안정과 풍요로움은 경제적인 안정과 풍요로움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경제적 안정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내적인 안정과 풍요로움의 측면에서 생각해 봤을 때 내가 상대방보다 앞서가느냐, 뒤처지느냐의 차이는 내가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에서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서재입니다. 서재는 항상 공부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거든요. 결혼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아내의 귀에서 피가 나도록 이야기했던 것이 서재를 만드는 부분이었습니다.


지금도 저희 집에는 서재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인데요. 강의자료를 만들고, 사업을 구상하고, 생각의 변곡점을 만드는 모든 일들이 서재에서 이루어집니다. 서재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하고, 책을 읽고, 일기를 씁니다. 내면의 깊이를 더하는 데 서재만큼 좋은 곳이 없어요. 날씨가 좋거나 분위기 좋은 날, 빗소리가 듣기 좋은 날에는 인근 카페에 가서 공부도 하고 글도 쓰지만, 깊은 밤 서재에서 혼자 사색하고 공부할 때는 너무너무 큰 즐거움과 행복을 느낍니다. 그 곳에서 모든 긍정적인 생각의 발현점을 이끌어냅니다.

이야기가 꽤 길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생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볼 겁니다. 앞서 언급드렸던 만큼, 저에게 ’생각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저는 할 이야기가 굉장히 많습니다. ’생각Think‘이라는 단어만 두고도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위한 생각]이라는 책도 있는 것처럼, 저 역시 생각을 위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기 때문에 생각 하나만 가지고도 장문의 글을 쓸 수 있어요. 제가 여러분보다 나아서 그런 게 절대 아니라, 다만 생각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는 걸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도 달라지고 싶다, 나도 공부를 한번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했었고, 이후로도 '어떻게 하면 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하며 평생을 고민해왔으니 얼마나 적을거리가 많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생각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글을 적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무슨 과학적인 논문, 어려운 이야기, 철학적인 이야기를 적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도 저 사람처럼 나아지고 싶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아지고 싶다' 하는 식의 이야기를 적는 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피곤하시면 조금씩 적어보세요. 쉬엄쉬엄 적어보시면서 여러분의 마음도 돌아보고, 생각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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