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를 위한 글쓰기 수업 4강

주제 :: 친구

by 전대표

2024년 3월부터 12월까지 울산 북구 보건소 내에 위치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강의한 자료를 정리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 글은 4강 수업 내용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덩달아 기분도 아주 좋아지는 아침입니다. 여러분 얼굴을 보니 더 기분이 좋아지네요.


지난주에는 저희가 <가족>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가족이라는 건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가족은 가장 많이 상처를 주기도 하고, 가장 많이 행복을 주기도 하는 존재다, 그게 가족이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가족보다 더 친할 수도 있고, 때로는 가족만큼, 혹은 가족보다 위안이나 위로가 되기도 하는 존재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친구>입니다. <친구>에 대해서 우리가 글을 써볼 겁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친구(2001년에 개봉한 대한민국 영화. 정우성, 유오성 주연) 라는 영화가 나왔어요. 혹시 보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작품성만 두고 봤을 때 참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스토리도 아주 잘 짜여졌고, 재미 있습니다. 꽤 크게 흥행한 영화에요.(2001년 당시 역대 한국관객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바 있다.) “친구야, 잘 있었나!” 이런 대사도 나옵니다. 고등학생이라는 나이는 한참 멋을 부릴 시기잖아요. 남들보다 좀 더 강해보이고 싶고, 남한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나이에 나왔던 영화이기 때문에 아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요.


Out of sight, Out of mind.


저희가 영어수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영어문장을 한 번 적어봤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라는 뜻입니다. 사촌에 육촌에 팔촌과 같은 가족관계 말고 부부, 부모-자식, 형제, 남매와 같은 가족은 눈에서 멀어지더라도 마음에서는 크게 멀어지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Blood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 연락이라고는 안하고 지내다가 어른이 돼서 간만에 보면 어색하고 뻘쭘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라는 게 있지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이 계시는데요, 아들이 그렇게 문제가 많았답니다. 요즘 소위 말하는 ’일진‘에 ’꼴통‘이었지요. 학교 다니면서 담배도 피우고, 패싸움도 하러 다니고, 그런 친구였답니다. 10대 시절에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면서 돌아다니다가 눈 떠보니 20대가 된 거에요.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꼴통 10대가 20대가 되었는데 뭐가 달라집니까? 대학도 못가고, 여전히 술 마시고, 이성친구도 만나고, 10대 때랑 별반 다를 것 없이 문제나 일으키면서 하루하루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길거리에서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학생들을 본 겁니다. 그 학생들을 보면서 ’왜 나는 저렇게 정상적으로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니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불쑥 들더래요. 자신의 10대 시절을 되돌아보면 늘 담배나 태우고, 패싸움이나 하고 지냈는데, '왜 나는 저렇게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지?' 하는 생각이 하나 마음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도 달라지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라는 겁니다.


이후에 이 친구가 대학도 가고, 공부도 하고, 직장도 들어갔어요. 지금 결혼도 해서 애도 낳고 잘 살고 있는데, 그 아버지가 이 아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자식은 남이 아니라 핏줄이더라, 부모로서 끊어낼 수 없는 관계더라.” 그런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그게 진짜 가족의 모습인 거지요.


반대로 친구라는 건 참 재밌어요. 아주 가까운 친구라고 할지라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질 수도 있는 게 친구입니다. 그게 가족과 친구의 차이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 친구라고 하는 것의 첫 번째 특징인 셈이지요. 요즘이야 세상이 좋아져서 지구 어디에 있던지간에 휴대폰으로 24시간 연락이 되긴 하지만요.


친구의 두 번째 특징은 '근묵자흑 근주자적近墨者黑 近朱者赤’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입니다. 친구 뿐만 아니라 가족도 마찬가지지만, 가족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보니 친구와는 조금 차이가 있겠죠.

이게 무슨 뜻이냐면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지고, 붉은 인주印朱를 가까이 하면 붉어진다’라는 뜻입니다. 옛날에는 벼루를 먹으로 갈아서 붓으로 글씨를 썼잖아요. 그런 묵을 가까이 알면 검어진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도장 있지요? 도장을 먼저 빨간 인주에 콕콕 찍어서 색을 묻힌 다음에 도장 찍어야 되는 곳에 찍잖아요. 요즘은 지문으로도 하고 싸인으로도 합니다만, 좌우지간 그런 인주를 가까이 하면 붉어진다라는 뜻이거든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고사성어故事成語입니다.

pierre-bamin-_HymxEhaKjQ-unsplash.jpg 근묵자흑, 근주자적. unsplash

언젠가 제가 아시는 분을 통해서 어느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어요. ‘젊은 사람이 싹싹하고 열심히 사니까 나중에 뭐가 되도 되겠다 싶어서 초대하고 싶다’면서 그 모임에 초대를 하신 거에요.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분들이 참석하는 모임이었는데요, 제가 40대에 접어들었는데도 모임에 참석하신 분들에 비하면 ‘젊은 사람’ 축에 드는 그런 모임이었습니다. 거기에 참석한 여자분이 한 분 계셨어요. 나이가 70세 정도는 되어 보이는 할머니였는데, 저는 아직 젊고 초면이니까 먼저 명함을 드리고 제 소개를 했지요. 연세도 있으신데 이런저런 덕담도 듣고 인생 사는 지혜도 배우고 싶다,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저한테 명함을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나중에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엔가, 찾아 뵙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상 이야기, 사업 이야기, 딱히 특별할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는 그런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어요. 헤어지면서 제가 “오늘 빈손으로 와서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제가 조그마한 빵이라도 하나 만들어서 오겠습니다.”하고 인사를 드리고 집에 왔어요. 개인적으로 참 만족스러운 만남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근데 몇 일 뒤에 이 모임을 소개해주셨던 분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그리고는 하신다는 말씀이 “전 작가님, 혹시 얼마 전에 그 아무개 만났습니까?” 하시는 거에요. 저는 별 생각도 없이 “예, 너무 좋은 시간 보내고 왔습니다. 밥도 얻어 먹고요.” 하고 이야기를 드렸지요. 그러니까 다짜고짜 “그 사람을 왜 만나고 왔어요?” 하시는 거에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분이 그렇게 다른 사람의 험담을 잘한다는 거에요. 모임에서는 사람 좋은 척 행동하지만, 뒤에서는 그렇게 야비하게 행동을 한다는 겁니다. 저한테는 “전 선생을 알게 돼서 너무 좋다, 자주 보자.” 하고 이야기했는데, 정작 저를 그 모임에 소개해주신 분한테는 저에 대해서 엄청나게 악담을 하더래요. “젊은 사람이 빈손으로 와서는 먹을 것만 얻어먹고 가더라, 나한테서 뭐 빼먹을거 없나 보려고 일부러 온 것 같다.”부터 시작해서 별별 소리를 다 하더라는 겁니다. 이 모임을 소개해주신 분이 나중에 저한테 전화하셔서 “두 번 다시 그 사람 만나지 마세요. 내가 미리 이야기한다는 걸 깜박했네요.”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들이 제 마음에 상처가 되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안 만나면 그만이니까요. 저 싫다는 사람을 굳이 만날 필요는 없잖아요. 다만, 좋은 친구를 사귄다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경험이었습니다.


napendra-singh-zCv9L2tyt6g-unsplash.jpg 시간은 계속해서 앞으로 흐른다. unsplash


지금 보고 계시는 건 시계입니다. 시간을 나타내주는 도구죠. 시간은 계속해서 앞으로 흘러갑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어요. 타임 머신이니 뭐니 이런 얘기가 예전부터 나왔지만 지나간 시간은 절대 돌이킬 수 없어요.

그런 시간과는 조금 다른 표현으로 비전Vision이라고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비전Vision.


‘개인이나 조직이 미래에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나 꿈, 혹은 단순한 목표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상적 상태’가 비전이 갖고 있는 의미입니다. 시간과 비전이라고 하는 이 두 가지 단어를 놓고 굉장히 많은 의견들이 있어요. 특히 친구 관계에서 이 시간과 비전이 굉장히 많이 쓰입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분의 강의를 들으면서 엄청나게 놀라운 사실을 하나 깨달은 게 있는데요, 그 분이 시간과 비전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해주신 문장이 제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패거리다.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친구다.


허구헌날 술이나 마시러 다니고, PC방이나 돌아다니고, 음탕한 이야기나 엉뚱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라 패거리라는 겁니다. 패거리는 그냥 시간만 공유하는 사람인 거에요. 노는 시간, 술 마시는 시간, 정치인 탓하는 시간, 나라 욕하는 시간, 대통령 욕하는 시간, 그런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죠. SNS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랑 싸워서 이긴 걸 자랑하는 재미로 시간 때우면서 사는 사람들이 패거리라는 거에요. 근데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또 삶의 긍정적인 의미를 자꾸 던져주고, 내가 달라지고 변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채찍질도 해주는 사람들, “야, 너 왜 그렇게 했어? 그거 잘못됐어! 그래, 그렇게 하는 건 잘했어. 잘 안됐어? 괜찮아, 한번 더 해봐. 자꾸 도전해봐야 돼.” 하고 나에게 계속해서 긍정적인 힘을 줄 수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비전을 공유하는 진짜 친구인 겁니다.

제가 이 사실을 몇 년 전에 알고 난 그때부터 제 친구관계를 조금 분석해봤어요. ‘이 사람이 진짜 친구인가? 이 사람은 그냥 알고 지내는 그냥 패거리인가? 이 사람은 내가 친구로 생각하고 믿어도 되는 사람인가? 아니면 단지 시간만 공유하는 사람이고, 내 시간을 투자했을 때 결국 남는 게 없는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굉장히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는데요. 그때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실패하지 않으려고요. 또 실패를 하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 이런 말도 있죠. 혹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이런 말도 있어요. 그런 말들이 제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지낼 수 있도록 많은 용기를 주었습니다.


debby-hudson-asviIGR3CPE-unsplash.jpg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unsplash


근데 그렇게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얻어진 것들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진짜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은 나를 패거리로 만드는 책인가, 아니면 진짜 친구를 분별할 수 있는 마인드를 만들어주는 책인가’ 하는 분별력이 생겼다는 겁니다. 그런 분별력이 책을 보면서 조금 생긴 것 같아요.


• 이 책 좋긴 한데, 아직은 안 읽어도 되는 책이야.

• 이 책은 평생 들고 다니면서 읽어야 돼.

• 이건 내가 읽을 만한 책은 아니고, 아무개한테 추천할 만한 책이야.

• 이건 아직 읽기 어려워. 다른 것 먼저 보고 난 뒤에 읽어야 이해가 되겠어.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다 보니까 그런 분별력이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집에 있는 책들을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 책을 쓴 사람은 100년 전에 죽었고, 저 책을 쓴 사람은 500년 전에 죽었고, 저 책을 쓴 사람은 30년 전에 죽었지. 이 책을 쓴 사람은 2천 년 전에 죽었는데 모두 나를 위해 존재하고 있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서재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다 보면 큰 감동을 느껴요.


주변을 둘러보면 친구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술 마시러 가자, PC방 가자, 어디 놀러 가자, 이런 친구들이랑 시간을 공유하다 보니까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을 당하더라구요. 사실 친구라기보다는 아니라 패거리인 셈이지요. 오직 쾌락만을 위해 존재하는 그런 사람들 말고, 나한테 크고 작은 영향력을 주는 좋은 친구들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그런 친구들은 대개 책에 있더라구요. 그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아주 편안해져요. 자존감도 엄청나게 올라가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그런 보이지 않는 친구들, 활자화되어 있는 책이라는 친구들을 통해 나의 내면의 그릇이 만들어지고 나니까, 그 때부터는 나와 사고思考의 흐름이 같은 사람들이 제 주변에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거에요.


여기 계신 선생님들도 집에 가면 책이 한 두권 정도는 있으실텐데요. 그 책을 가만히 보면서 생각해 보세요. “이 책을 쓴 사람, 그리고 이 책은 나한테 그저 책으로서의 가치만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인생을 살아갈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진짜 친구로서의 가치를 줄까?” 하고요. 책도 일종의 상품이기 때문에, 내용보다는 표지만 예쁜 책들도 많습니다. 그럴 수 있잖아요. 내용이야 어찌되었건 표지라도 이쁘면 마음에 끌리는 게 사실이니까요. 진지하게 책을 읽고, 공부하다 보면 여러분들이 보는 책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지게 될 겁니다.


요즘 많이 회자되고 있는 표현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 주변 사람들 5명의 연봉 평균이 나의 평균 연봉이다.


오늘 나와 통화하고, 오늘 같이 밥을 먹고, 오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오늘 함께 일을 했던 사람의 평균 연봉이 곧 나의 연봉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의 연봉이 3천만 원 정도 된다고 해볼게요. B라는 사람도 3천만 원을 법니다. C라는 사람이 3200만 원을 벌고, D가 3천만 원을 벌고, E는 좀 낮춰서 2,800만 원을 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럼 나의 평균 연봉은 대략 3천만 원+,-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근데 A는 1억을 벌고 B는 2억을 벌고, C는 3억을 벌고 D는 4억을 벌고, E는 5억을 벌면 어떨까요? 편차가 말도 안되게 크긴 하지만, 단순히 평균만 따져서 계산해본다면 내 연봉도 5억 정도는 된다는 겁니다. 신기하죠.


근데 여기에는 약간의 함정이 있습니다. 어떤 함정이 있냐면, 속물俗物이 될 수 있다는 게 함정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만, 단순히 돈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나요? 그건 아니죠.

요즘 들어 친하게 지내는 어떤 사람이 불법적인 일을 해서 1년에 10억을 벌었다고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회악으로 많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불법사이트니 뭐니 해서 1년에 10억을 벌었어요. 또 어떤 친구는 자칫하면 교도소에서 평생 살아야 될 지도 모르는 불법적인 사업을 내서 1년에 50억씩 돈을 벌었어요. 그럼 제 평균 연봉은 30억이 되는 겁니다. 그렇죠? 반면에 그들이 나의 진짜 친구들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질 겁니다. 그러니까 ‘친구들 5명의 평균’을 이야기할 때 어떤 평균값Average을 적용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내 주변 사람들 5명의 연봉 평균이 나의 평균 연봉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내 주변 사람들 5명의


• 지적 능력의 평균

• 리더십 능력의 평균

• 사회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능력의 평균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평균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무래도 어감이 좀 다르겠죠.


duy-pham-Cecb0_8Hx-o-unsplash.jpg 친구 5명의 수준이 나의 미래의 모습이다. unsplash


그래서 저는 항상 제 곁에 책을 두고 읽었던 것 같아요. 그냥 좋은 습관이었던 거죠. 내 옆에 책을 두고 읽지 않았을 때는 저도 계속해서 엉뚱한 생각에 빠지고,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하는 게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틈만 나면 집중적으로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다 보니까 만나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도 계속 컴퓨터 게임을 했다거나, 이상한 취미를 가지거나 그랬겠죠.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될수도 있고, 나쁜 친구를 만나게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제가 종종 참석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근데 그 모임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나이가 다 달라요. 저는 이제 갓 마흔인데 어떤 분은 60대입니다. 어떤 분은 70대이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50대입니다. 또 어떤 분은 30대 중반인 분도 계세요. 비전을 공유하고 올바른 사고思考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 분들은 모두 제 친구들입니다. 물론 제가 그분들한테 “어이, 친구야! 반갑다!” 이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죠. 아무개 대표님, 아무개 선생님, 아무개 사장님, 하고 부르죠. 직책과 위치에 따라 적절한 호칭을 사용합니다. 반면에 친구로서 이분들을 대하다 보면 굉장히 얻어지는 게 많습니다.


살다 보면, 친구라고 하는 것이 ‘나이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생각의 수준이 같은 사람’이 친구가 된다는 걸 알게 되는 시점이 옵니다. 저보다 10살, 20살이 어린데도 저보다 훨씬 수준 높은 친구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혹시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25살입니다.”


근데 생각하는 게 40대, 50대처럼 느껴지는 거에요. 나이는 아주 어린데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는 공감능력이나 상황 파악능력이 아주 뛰어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월등히 뛰어난 사람들이 있는 거에요. 아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형, 동생 하는 사이지만 아주 친한 동생이에요. 저는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항상 이 친구에게 물어봅니다.


“형이 있잖아, 이거 이렇게 하려고 하거든. 괜찮을까?”


그러면 대답은 둘 중 하나입니다.


“형, 그거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그거 좋네요. 한번 해봐요.”


이런 식으로요. 생각을 아주 깊고 주밀하게 하는 친구라서, 이 친구가 시키는 대로 했을 때 피해를 입거나 손해를 입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좋은 친구가 되는 경우죠. 반면에 이런 분도 있습니다.


“혹시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65살입니다.”


근데 생각하는 게 17살 여고생 같아요. 농담이 아니라,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생각이랑 마음은 전혀 자라지 않았는데 육체만 노쇠한 거죠. 말 그대로 머리에 든 건 하나도 없는데 나이만 먹은 거에요. 배울 점이라고는 ‘나는 절대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절대 이렇게 나이들지 말아야지.’하는 걸 깨닫게 해주는 정도밖에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세상에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친구라는 것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시간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인 겁니다.


art-lasovsky-8XddFc6NkBY-unsplash.jpg 만년필의 촉은 주인의 필체를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unsplash


조금 다르게 얘기하면 또 다른 어떤 존재가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가 여러분들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죠. 저는 늘 글을 쓰다 보니까 조금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친구도 있어요. 원고지라던지, 책이라던지, 만년필이라던지 하는 게 저에게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만년필을 하나 들고 왔는데요. 아끼는 펜이라서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려고 갖고 나왔습니다.


만년필은 글씨를 쓰는 게 아주 편합니다. 일반 볼펜보다 훨씬 잉크가 잘 나오고, 또 종이에 펜을 가져다 대는 즉시 잉크가 흘러나오기 때문에 술술 쓸 수 있는 게 만연필입니다. 일반 볼펜이랑은 다른 멋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분들 중에는 연필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저는 만년필이 더 편하고 좋습니다.

저의 첫 책이 출간되었을 때, 그때도 경제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첫 책이 출간되서 인세를 받았어요. 결혼한 가장이 그런 인세 받으면 뭐하겠습니까? 저는 술 사고 과자 사고 하는 데 그런 돈을 쓰지는 않아요. 대출금도 내고, 세금도 내고, 뭐 그렇게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아내한테 물었지요.


“글 쓰기 할 때 만년필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한 자루 사도 되지?”


제가 번 돈인데 아내가 사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3만원 남짓 주고 샀던 기억이 납니다. 비싼 건 아니에요.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소위 말하는 가성비 좋은 싸구려 만년필입니다. 근데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펜이에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가볍고, 편리하고, 필기감이 아주 좋거든요. 그리고 (만년필 특성상 고장날 일은 거의 없지만) 비싼 게 아니기 때문에 쓰다가 고장 나면 버려도 큰 부담이 없고요. 조금 추상적인 면에서의 친구로서, 저는 이 만년필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리고 몇 년 전 제 생일 때 아내가 선물해준 만년필도 있습니다. 10만원 정도 주고 구입했는데, 만년필 치곤 비싼 축에 드는 건 아닙니다. 어쨌거나 그것도 제가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그렇게 만년필 두 자루로 쓴 책이 5권이 넘어요.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글씨를 쓰는 부분을 촉이라고 하는데요, 연필로 말하자면 연필심이 되겠죠. 만년필로 오랫동안 글씨를 쓰다 보면 주인의 필체를 닮아서 촉이 깎여져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옛말에 ‘물방울이 떨어져서 바위를 뚫는다(수적천석, 水滴穿石. 채근담에 나오는 고사성어)’ 그런 말도 있지만, 만년필로 글자 몇 자 쓴다고 해서 쇠鐵로 된 촉이 언제 그렇게 깎여나가겠습니까? 다만, 그런 표현들이 만년필을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적잖은 영향력을 미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처럼 만년필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고요. 아까 말씀드린 책이라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리고 양복이나 구두, 넥타이, 셔츠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제가 여러분들 앞에서 강의를 할 때, 그리고 주변분들을 대할 때 편하게 대하기 위해서 편하게 옷을 입고 다닙니다. 운동화도 잘 신고 다니고요. 청바지를 입고 강의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근데 20대, 30대 때는 양복이 제 친구였습니다. 1년 365일 중에서 거짓말 좀 보태서 360일은 양복을 입고 다녔어요. 항상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반짝반짝 잘 닦여진 구두를 신고 돌아다녔습니다. 슈퍼마켓에 뭐 사러 나갈 때도 양복바지에 셔츠를 걸치고 나갔어요. 그런 태도 덕분에 어느 누구도 저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제가 나이도 많고, 사회적으로 많은 경험과 경력이 쌓이고, 덕망도 있고, 누가 보더라도 인정받을 만한 위치에 있다면 청바지든 반바지든 괜찮습니다. 저 사람은 뭔가 자유로운 사람이구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구나, 하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근데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이루어놓은 사람도 아니고, 직업도 변변찮은 사람인데, 누가 보더라도 중요한 자리에 후줄근한 차림으로 나타난다면 어떨까요? 모르긴 해도 그런 옷차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만한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정상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저렇게 행동할 수는 없다, 저 사람은 기본 예의도 없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할 거에요. 사람은 단순하거든요. 그래서 항상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다녔던 거에요. 지금은 예전과 달리 편하게 입고 다니는 편입니다. 저자로서, 소설가로서 어디 강의를 갈 때는 조금 편하게 입고 가려고 노력해요.

그런 자리에서는 딱딱한 양복에 넥타이보다는 편하게 입고 가는 것이 분위기를 더 편안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래서 저에게는 비전을 갖춘 동반자로서의 친구도 의미가 있었지만, 조금 추상적인 의미에서 양복, 넥타이, 만년필, 책, 원고지, 이런 것들이 저의 좋은 친구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늘 같이 다니는 친구였던 셈이죠. 그래서 밖에 나갈 때는 항상 챙기는 게 휴대폰, 성경, 지갑, 차키, 책 2권, 이렇게 5가지입니다.

marcos-paulo-prado-tcyW6Im5Uug-unsplash.jpg 일기장도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unsplash

예전에 제가 읽었던 책이 하나 있는데요. 제목이 <사장의 길(서광원著, 흐름출판)>입니다.

그 책을 쓰신 작가님이 기자출신(서광원 작가는 경향신문에서 기자, 중앙일보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경영전문기자로 활동한 바 있다. 현재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으로 재직중이다.)이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들이 겪는 어려움과 애로사항을 정리한 책인데, 아주 잘 쓴 책이에요.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그 책에 보면 어느 회사 오너의 따님 이야기가 나와요. 딸이 아버지를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게 있었답니다. 크든 작든 기업의 오너이면 얼마나 대단합니까? 딸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성공도 하셨고, 늘 깔끔하게 양복 입고 다니시고, 그렇다 보니 아버지 덕분에 좋은 차도 많이 타보고, 좋은 집에도 살아보는 거지요. 그렇게 어릴 때부터 자기를 풍족하게 해주는 분이 아버지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식들이 성공한 아버지를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도 아버지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드는 거겠죠.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당신의 서재에서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어느 서랍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 따님도 무슨 사정이 있는가보다, 하고 생각했었겠죠. 그러다 하루는 아버지가 안 계실 때 서재에 들어갔다가 호기심이 생겨서 그 서랍을 열어본 거에요. 무슨 대단한 게 있는가 싶었는데, 그런 건 없고 노트만 한 권 달랑 있더랍니다. 이게 뭐지, 하고 펼쳐보니까 아버지 일기장이었던 거예요.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궁금한데 한 번 읽어볼까,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일기장을 딱 펼쳤는데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오더라는 겁니다.


오늘도 외로웠다.


이 문장을 딸이 보고 알게 된 거에요. 아버지에게는 친구가 없었다는 걸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이고 명망 있는 분인데,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는 일기장이었던 겁니다. 딸이 보는 아버지는 성공한 아버지, 기업가, 직원들의 인사를 받는 사람, 자신으로 하여금 기업가의 꿈을 꾸게 한 사람, 경제적인 풍족감을 선물해준 사람, 그런 것들이었겠죠. 그런데 일기장에는 이 문장이 써 있더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동안 아버지를 향해 가졌던 일말의 두려운 마음, 나도 아버지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 나도 아버지처럼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다 사라지고 아버지를 향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외로우셨구나.’ 그걸 알게 된 거에요.


담배나 뻑뻑 태우면서 할 수 있는 뒷담화, 술자리에서나 할 수 있는 시시한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를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 즉 조직의 우두머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만이 통하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압니다. 깊은 곳에 숨겨진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대화는 자식이나 아내와 나누기 어렵거든요. 정말 좋은 친구가 아니면 그런 대화는 잘 하지 않습니다. 근데 주변을 둘러봐도 모두 경쟁자 뿐인 거에요. 그러니까 아버지의 유일한 친구는 일기장이었던 거지요. 너무 마음에 남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힘든 일이 생기면 항상 글을 씁니다. 아내랑 싸워도 글을 씁니다. 그냥 친구한테 하듯이 쓰는 거에요.


오늘은 아내랑 싸워서 기분이 너무 안 좋다.

이러저러해서 짜증도 나고 싫다.


그런 시시콜콜한 내용들도 일기장이나 메모장에 쓰는 겁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다 보면 뭔가 마음이 좀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항상 들어주기만 하는 친구라는 점에서, 일기장이나 노트는 그야말로 좋은 친구에요.


예순이 훨씬 넘으신 어느 지인에게서 들은 말인데요. 하루는 “젊은 사람들이 시골로 귀농했다가 다시 도시로 나가는 이유는 어른이 없어서 그렇다.” 하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이 분도 소위 어른이라고 할 만한 나이가 되어 보니까 자기가 정말 어른이 되었는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랍니다. 사람들이 봤을 때 “이분은 진짜 어른이다. 내가 뭔가 배울 수 있을 만한 어른이다.”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자기를 발견하게 되더라는 거에요. 자기 자신이 봐도 “나는 어른이라고 불릴 만한 자격이 없어.”하고 생각이 드는데, 젊은 사람들이 봤을 때 자기 모습이 어떻겠느냐는 거예요. 아무리 둘러봐도 “저분은 진짜 배울 만한 어른이야. 저분한테 내가 뭔가 도움도 청해 보고, 자문도 구하고, 꾸지람도 듣고 해야지. 충분히 그럴 만한 분이야.” 라고 생각될 만한 어른들이 주변에 하나도 없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탈선하고 하는 이유가 제대로 된 어른들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 나라도 제대로 된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의미에서 이런저런 모임도 나가고, 일도 배우려고 하고, 나름의 노력을 하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굉장히 인상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 앞에 서서 강의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딱 두 가지입니다. 본 기관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온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제가 그 요청에 응한 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여러분들보다 똑똑해서, 여러분들보다 잘생겨서, 여러분보다 많이 배우고 잘나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여러분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저는 머리가 굉장히 나쁜 사람입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도 못했고, 별볼일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고, 좋은 생각을 하다 보니 조금씩 조금씩 나아졌던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저도 여러분들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이번 시간은 좋은 친구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오랫동안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나 어떤 존재들, 여러분들에게 위안을 주고, 또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존재에 대한 글을 써보시길 바랍니다. 물론 우리가 앞서 나눴던 훌륭한 친구들, 인생 선배나 좋은 후배들에 대한 글도 좋습니다. 좋은 친구가 되고자 하는데 나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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